[한국스포츠경제 이현아] 활자로 된 책을 화면으로 읽은 느낌이다. 영화 ‘석조저택 살인사건’은 원작(빌 S. 밸린저 ‘이와 손톱’)의 장르를 큰 각색 없이 충실하고 정직하게 소화했다. 서스펜스 스릴러 소설의 기본 구조를 따라가며 관객들로 하여금 누가 범인인지, 왜 죽였는지를 흥미롭게 추리하도록 돕는다. 시대적 배경을 차치하고 치열한 법정 다툼 등 장르적 매력이 돋보이는 보기 드문 영화다.

해방 후인 1948년 경성의 한 석조저택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잘려 나간 오른손 검지만이 남았을 뿐 시체가 없는 사건으로, 범인은 거부(巨富)로 알려진 남도진(김주혁)이 체포된다. 살해 당한 이는 남도진의 운전수 최승만으로 추정된다.

영화는 재판 일지를 넘기듯 수차례에 걸친 공판과 살해된 최승만과 남도진의 과거를 교차로 엮어간다. 최승만은 왜 죽임을 당할 수 밖에 없었는지, 반대로 남도진은 왜 최승만을 죽이려 했는지를 쫓는다. 둘의 관계가 서서히 밝혀지면서 서스펜스 스릴러의 필수요소인 ‘치정’의 추악함이 드러난다. 남도진이 죽였다, 아니다는 검사와 변호사의 핑퐁 게임 같은 싸움과 함께 그런데 최승만이 과연 최승만일까는 비밀도 조금씩 벗겨진다. 사건을 경찰에 알린 신고자의 존재로 흥분하는 남도진과 죽지 않기 위해 몸싸움을 벌이는 최승만의 모습이 연달아 나오면서 마치 책장을 넘기기 아쉬운 추리소설 급의 재미를 선사한다.

고수는 잘생긴 얼굴로 승부하는 배우가 아님을 이번에도 보여준다. 영화 초반 그 조각 같은 얼굴로 멜로를 연기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목적을 위해 미모를 과감히 버린다. 그럼에도 잘 생겨서 여배우 임화영과의 케미에 가슴이 설렌다.

영화 시작 22분 만에 검은 실루엣으로, 44분 만에 비로소 얼굴을 보인 김주혁은 악인 그 자체다. 항상 상대를 하대하는 저열한 눈빛과 동선을 최소화한 절제된 연기는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한 노력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다만 해방 후의 경성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영화에 제대로 녹아있지 못한 점은 참 아쉽다.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후로 이어지는 경성은 그동안 많은 작품에서 활용돼 왔다. 겉도는 시대 배경은 오히려 연극 세트를 보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준다. 극중 인물 모두 현재의 말투로 연기를 하는 터라 굳이 1940년대를 배경으로 했는지 고개가 갸웃거린다.

영화의 첫 장면이 살인사건 장소인 석조저택을 보여주고, 범인 남도진이 갇힌 벽돌 감옥을 마지막으로 비추는 대비가 묘하다.  15세 이상 관람가, 5월 9일 개봉.

사진=씨네그루 ㈜키다리이엔티 제공

이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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