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민의 시저스킥] '크라머의 유산' 신태용의 창의 축구, 신화를 쏜다
[박종민의 시저스킥] '크라머의 유산' 신태용의 창의 축구, 신화를 쏜다
  • 박종민 기자
  • 승인 2017.05.18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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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태용 U-20 대표팀 감독./사진=KFA 제공.

[한국스포츠경제 박종민] “유럽에선 선수단 버스에서 웃고 대화하면 집중력이 떨어진다고 눈총을 받는다. 하지만 브라질에선 무표정이거나 침묵하면 오히려 자신 없는 선수로 여겨진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호마리우(51), 카를로스 둥가(54), 베베토(53) 등과 함께 브라질의 우승을 이끈 레오나르두 아라우주(48)가 한 말이다. 세계 최강이던 브라질 축구의 핵심은 자유로움 속에서 나오는 ‘창의성’이었다. ‘축구황제’ 펠레(77)가 부르짖던 ‘아름다운 축구’도 결국은 창의적인 축구와 맥을 같이 한다.

어떤 일에서든 ‘창의성’은 대단히 중요하다. 획일화된 것들은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세상이다. 축구 역시 그렇다. 신태용(47) 20세 이하(U-20) 축구대표팀 감독이 전폭적인 신임을 얻고 있는 것도 창의성을 극대화하는 축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이 20일 전주 등 국내 6개 도시에서 화려한 막을 올린다. 결전을 앞둔 신태용호의 분위기는 비장함보다는 ‘설렘’에 가깝다. 신 감독은 선수들의 휴대폰 사용을 금지하지 않았다. 고압적인 느낌의 지시들이 편안한 분위기를 망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한준희(47), 김태륭(34) KBS 축구 해설위원은 “감독, 선수들간 조화가 돋보인다”고 입을 모았다. 그간 취재 현장에서의 기억을 되살려보면 신 감독과 관련한 질문에 선수들 또한 웃음꽃 띤 얼굴로 답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형님 대하듯 한 말투를 한 선수도 있었다. 억압적인 분위기에선 결코 나올 수 없는 발언들이다.

소통을 통한 수평적 리더십은 선수들의 사기와 창의성을 높이고 이는 팀의 전력 상승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신 감독의 축구 철학은 고(故) 데트마르 크라머(독일) 전 한국 올림픽 대표팀 감독으로부터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태용을 비롯해 서정원(47), 김도훈(47), 노정윤(46), 이임생(46), 박건하(46) 등은 1990년대 초반 크라머호의 멤버들이었다.

▲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신태용(위) 감독을 헹가레 하는 선수들./사진=KFA 제공.

크라머 전 감독의 애제자로는 신태용 감독과 서정원 수원 삼성 감독 등이 꼽힌다. 지난 해 12월 FA컵 정상에 오른 후 만난 서정원 감독은 크라머 전 감독에 대해 “실수를 한 선수에게 ‘너 할 수 있어. 계속 슛을 시도하잖아. 언젠가 들어가니깐 걱정하지마’라는 말씀들을 해주셨다. ‘이런 감독님도 있구나’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며 “(신)태용이도 그렇고 모두가 놀랐다. 선수를 굉장히 존중하셨다. 그때 만해도 국내엔 그런 스타일의 감독을 찾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크라머의 태도는 위계질서가 확실하고 다소 위압적이었던 1990년대 한국 축구의 분위기에 180도 반하는 것이었다. 주눅 든 선수를 다독이고 실수하는 선수를 포용하며 자유롭게 소통하는 분위기를 만든 크라머 전 감독은 현재 한국 축구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지도자들에겐 ‘선진 축구’의 멘토 격이었다.

신 감독은 U-20 대표팀을 이끌 적임자다. 발전 가능성이 있는 20세 이하 어린 선수들에겐 ‘창의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개성 있는 선수들을 아우르고 어린 선수들의 잠재력을 끌어내기 위해선 이른바 ‘꼰대 마인드’가 없는 감독이 필요하다. 신 감독은 이승우(19)의 빨간 머리 염색을 두고도 “개성 넘치는 모습이 좋다. 자신의 기량과 모습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을 이해하며 그런 모습은 적극적으로 찬성한다”고 밝혔다. 여태껏 각급 대표팀을 이끈 한국인 감독들 중 이렇게 열려 있는 사고방식의 리더가 있었던가. 한국 축구에 이러한 감독도 한 명쯤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선수들은 거스 히딩크(71) 감독의 주문대로 그라운드에서만큼은 위계질서를 깨고 서로를 격의 없이 불렀다. 수평적 소통이 선수들의 창의성을 높였고, 이는 곧 4강 신화로 이어졌다. 신태용호의 ‘창의 축구’도 이제 빛을 발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