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양지원] 얼굴에 흙칠을 하고 수염을 붙여도 특유의 아우라가 뿜어져 나온다. 영화 ‘대립군’(31일 개봉)에서 토우를 연기한 이정재의 이야기다. 극 중 대립군의 수장 캐릭터로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 연기를 펼쳤다. 특히 그 동안 주로 ‘가진 자’를 연기한 이정재가 처음으로 ‘을’의 입장을 대변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남의 군역을 대신 치르던 대립군의 삶은 하루하루가 버티기 힘들다. 토우는 극한 상황 속에서 흔들리는 대립군들의 버팀목임과 동시에 어린 세자 광해(여진구)를 리드한다. 조선판 비정규직 노동자인 ‘을’ 중에서도 가장 극한직업인 셈이다.

“저도 토우처럼 항상 을로 살고 있어요. 한 지인 분이 저한테 항상 하는 말이 있죠. ‘너는 직업군 중에서 가장 약자다’라고요. ‘네가 밥집에 가서 밥 한 번 얻어먹는 것 말고 네게 좋은 게 뭐가 있냐’는 말을 해주세요. 딱히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가장 계급이 낮은 직업군은 맞는 것 같아요.”

이정재의 대표작 중 하나는 ‘관상’이다. 영화에서 이정재는 권력욕이 남다른 수양대군 역을 맡아 강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내가 왕이 될 상이냐?”는 대사는 여러 번 패러디 될 정도였다. 이정재는 ‘관상’에서 쓴 수양대군의 톤과 다르게 연기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고 했다.

“나름대로 최대한 다르게 연기해보려고 했어요. 기존의 수양대군의 톤과 비슷하면 안 되니까요. 수양대군이 상대방을 제압하고 위협하려 했다면 ‘대립군’의 토우는 인솔자의 톤을 쓰려고 했죠.”

토우는 남다른 추진력과 판단력을 가진 인물이다. 진정한 리더의 모습은 광해보다 토우에 더 가깝다. “사실 광해가 토우를 보면서 많이 배우는 거죠. 아버지에게 배우지 못한 여러 가지 것들을 배우고 느끼면서 변화하는 거죠. 광해의 성장에 토우가 큰 도움을 주는 거고요. 반면 국가관이 없던 토우가 광해를 만나면서 ‘우리의 리더가 됐으면 좋겠다’는 작은 희망을 품게 되는 거고요.”

토우와 광해를 연기한 이정재와 여진구는 매 신을 함께한다. 떨어져 있는 장면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실제 나이 차는 어마어마하지만, 여진구가 전혀 어리게 보이지 않았단다.

“생각이 어린 친구가 아니라 더 그랬던 것 같아요. 딱 친한 동료 같았어요. 이해력도 굉장히 높고요. 그 나이답지 않게 아저씨 같은 성격이기도 해요. (웃음) 촬영이 한 3일 없으면 다들 서울로 올라가는데, 안 가더라고요. 매니저랑 함께 그 주변 맛집 탐방을 해요. 원래 유부남 배우들이 집에 잘 안 가는데 진구가 딱 그랬어요. 아저씨 같죠. (웃음)”

20, 30대 당시 이정재는 주로 로맨틱하고 선한 캐릭터를 연기했다. 한 때는 청춘을 대표하는 아이콘이기도 했다. 그런 이정재가 영화 ‘도둑들’ ‘관상’ ‘신세계’ ‘암살’ 등 흥행작들에서 기존의 로맨틱한 모습과는 전혀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며 변신했다. 

“제 나이 캐릭터가 사회적으로 보면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나이의 중심인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시나리오를 쓰시는 작가 입장에서는 제 나이 대 인물들을 안타고니스트(주인공과 대립하는 인물)로 존재해주길 바라는 것 같아요. 선하고 의로운 주인공은 나이를 조금 어리게 설정하죠. 안타고니스트 역할을 많이 하다 보면 제 이미지가 깎이는 게 아닌가에 대한 두려움이 있죠. 하지만 제가 젊었을 때 선하고 의로운 역을 많이 했듯이 이제는 영화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나이가 됐다고 생각해요.”

이정재는 여전히 멋있는 배우를 꿈꾼다. 연기만 봐도 알 수 있다. ‘대립군’에서도 겉모습은 비록 망가졌지만, 칼과 총을 휘두르는 솜씨나 타고난 눈빛 연기가 관객을 압도한다. 

“배우는 기본적으로 매력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늘 멋이 있었으면 하죠. 이번 영화에서도 티 안 나게 멋있어 보이려고 했는데 들켰네요. (웃음) 배우라는 일을 지금까지 하다 보니 계속 욕심이 나요. 동료 배우들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극도 받고요. 다음 작품은 조금 더 제 주변에 있을 법한 사람을 연기해보고 싶어요. 또 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기회가 될 것 같거든요.”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양지원 기자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