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 최지윤] 이하늬는 똑똑한 배우다. 자신의 장점을 누구보다 잘 안다. MBC 종영극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역적)의 장녹수 캐릭터는 매력을 십분 발휘할 기회라고 생각했다. 서울대 국악과 출신으로 한국 문화에 조예가 깊기 때문. 우아한 한복자태는 기본이고 수준급의 가야금 실력을 보유하고 있다. 장녹수 연기는 결코 만만치 않았다. “가채만 보면 도망가고 싶었다”고. 진통제를 맞으며 버텼다. 판소리, 전통무용 등을 배우며 하나하나 공들였다.

“비장의 카드를 꺼냈는데 불만족스러운 부분도 있다. 조금 아껴뒀다가 다른 작품에서 원동력으로 쓰겠다. 만족스러운 부분도 많다. 첫 승무는 발 뒤끝 버선발로 딛는 데 다 들어있다고 하더라. 첫 컷을 발로 시작했다. 말하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해줬다. 김진만 PD와 호흡이 척척 맞았다. 열악한 환경에서 퀄리티 높은 작품을 만들어줘 감사하다.”

이하늬는 제작진이 쉽게 놓칠 수 있는 부분에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황진영 작가 역시 자문을 구했다. 이하늬는 모든 연줄을 동원해 친구 및 선배들에게 ‘한번만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한국음악 및 무용을 보여주는 토대가 될 것 같아 허투루 할 수 없었다. “2% 다르게 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며 “가령(채수빈)이 길동(윤균상)에게 자장가처럼 불러주는 노래도 몇 번씩 레슨을 받고 다듬었다.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었다. 처용무 춤도 탈만 몇 백 만원이다. 장구 춤 하나 춘다고 하면 전 스텝이 가슴을 부여잡았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장구 춤 출 때 쓴 장구는 미스유니버스 대회 때 사용한 것”이라며 “칠을 다시 했다. 10년 만에 장구를 꺼내서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고 덧붙였다.

이하늬는 연기 활동과 가야금 공연을 병행하고 있다. 연기와 노래 및 무용을 함께 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고도의 스킬이 필요했다”고 웃었다. “생방송으로 촬영을 하다 보면 감정라인 따라가기도 바쁘다. 기타나 피아노 연주하면서 노래 부르기 쉽지 않지 않냐.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완전히 체득하지 않으면 힘들다”고 말했다.

장녹수는 기생에서 후궁의 반열에 올라 연산군(김지석)의 마음을 사로잡은 여인이다. 연산에게 인생을 건 녹수는 오랫동안 길동을 잊지 못했다. 길동은 녹수에게 처음으로 예인(藝人)이라 불러준 사내다. 윤균상과 호흡에 대해 “우리 균둥이는 볼을 주물러 터뜨리고 싶을 정도로 착하고 귀엽다”며 “여시 같은 배우들은 뒷모습만 찍힐 때 절대 리액션 해주지 않는다. 녹수가 상처 얘기 하신 신 찍을 때 균둥이가 눈물을 흘리더라. 그 때 무장해제가 됐다. ‘내 몸을 찢어서 혹은 눈알 튀어나와도 리액션 해줄게’ 하는 아낌없는 마음이 들었다”고 고마워했다.

김지석은 가장 호흡이 좋았던 배우로 이하늬를 꼽았다. 이하늬는 부끄러워하며 “내가 오빠한테 물을 떠다 주겠냐. 수발을 들겠냐. 연기할 때 숨을 불어넣으면 오빠가 화답해줬다. 액팅과 리액팅이 오가면서 우정이 싹텄다”고 좋아했다. 그러면서도 “나중에는 많이 안쓰러웠다. 연산군의 눈에서 광기, 맹렬함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애증의 감정이 컸다. U2의 ‘위드 오어 위드아웃 유’(With or Without You)와 어반자카파의 ‘널 사랑하지 않아’가 생각났다. 사랑한다는 거야, 사랑 안 한다는 거야?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열한 살 어린 채수빈도 대견해했다. 자신은 ‘스물네 살 때 뭐했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단다. “수빈이가 내 나이쯤 되면 어마 무시한 여배우가 돼 있을 것”이라고 칭찬했다.

이하늬는 배우 및 스텝들과 호흡이 최고였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사극에 또 출연할 마음이 있냐?”고 묻자 망설였다. 가채가 높아질수록 “드라마를 끝낼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들 정도로 고통이 커졌다. “가채 쓰는 여배우들을 만나면 잘 해줘야 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어떤 여배우는 가채 안 쓰는 조건으로 사극 출연하더라. 몰랐다. 가채 올리다가 쪽진 머리를 하면 날아갈 것 같다. 사극이 주는 매력도 많다. 가장 한국적인 정서인 충성, 의리, 정이 많이 옅어지지 않았냐. 시청자들이 사극을 즐겨 보는 이유인 것 같다. 사극 출연은 가채의 크기와 무게에 따라 고려하는 걸로 하겠다(웃음).”

이하늬는 인터뷰 할 때 매력이 넘쳤다. 질문 하나하나 성심껏 대답하고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알았다. 남자친구 윤계상이 이런 모습에 반하지 않았을까. 엄친딸 이미지가 강한데 대해 “온갖 잘난 척은 다할 것 같지만 평소에는 구멍이 많다. 실제 모습과 비슷한 역을 해보고 싶다. 연기하다 보면 만나겠지 하는데 못 만나고 있다. 내가 하고 싶은 것과 잘할 수 있는 건 다를 수 있다. 도전, 쟁취하는 역은 이제 그만하고 싶다”고 했다.

사진=임민환기자 limm@sporbiz.co.kr

최지윤 기자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