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커버 장르의 영화"

‘언더커버 장르’는 세계적 흥행에 성공한 홍콩 액션 영화 '무간도'가 원조로 알려져 있다. 홍콩 누아르 영화를 부활시킨 작품이다. 할리우드에서 마틴 스콜세지가 '무간도'를 리메이크한 '디파티드'로 2007 년 제 79 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편집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 이후 비슷한 시놉시스의 영화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영화 팬들은 건달과 경찰을 다루고 스파이로 어느 쪽에 잠입한 이야기는 모두 '무간도'와 비교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신세계'가 개봉했을 때 수많은 언론과 관객들이 '무간도'와 어떤 점이 같고 다른지 갑론을박이 펼쳐지기도.
이제는 ‘드루와~ 드루와’라는 유행어까지 만들어진 흥행작으로 꼽히지만, '신세계'에 대한 여전한 아쉬움은 있다. 다 이야기하자면 길어지니 '불한당' 이야기를 계속하겠다.

▲ 사진 = 영화 '불한당'

교도소 신참 현수(임시완)는 겁 없이 덩치들에게 덤비다 마약밀수 조직의 2 인자이자 교도소 내 권력자인 재호(설경구)의 눈에 띈다. 교도소에 새로 들어온 김성한(허준호)이 조직의 1 인자인 병철(이경영)의 지시로 재호를 처리하려 할 때 현수는 재호를 돕는다. 그러나 곧 현수가 신분을 위장한 잠입 경찰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언더커버 장르’의 시나리오는 신선하게 그려지기 어렵다. 이는 장르적으로 운신의 폭이 좁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변성현 감독은 “스타일로 차별점을 두자”라고 밝히며 이를 인정했다. 건달 조직 속으로 들어간 경찰, 경찰 조직 속으로 들어간 건달. 이 장르가 흥미로운 것은 별다른 사건 없이도 긴장감을 유발한다는 데에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도 함께 비밀을 간직하게 하면서 이야기를 끌고 나가기 때문이다. 이 같은 특징은 지금까지의 ‘언더커버 장르’ 영화가 보편적으로 갖고 있었다. 영화 '불한당'은 이를 살짝 비껴나간다. 영화 중후반에 이어지는 두세 번의 반전은 우리의 초기에 생성한 긴장의 끈을 놓게 만들고, 이후 이야기는 재호와 현수의 멜로물로 전환된다.

 

▲ 사진 = 영화 '불한당'

“'신파극'은 아니다”

멜로물로의 전환이 지겹도록 보아온 ‘신파극’ 성격이 아니라는 점에서 안심하라고 말하고 싶다. 작년에 개봉했던 몇몇 영화들이 흥행은 했지만 결말을 ‘신파극’으로 끝내면서 호불호를 갈랐던 것을 생각하면 '불한당'도 그럴 것이라는 우려를 가질 수 있다. 영화 '덕혜옹주'의 한 장면을 예로 들자면, 일본군이 오두막을 둘러싸고 총을 겨누고 있는 동안에 박해일은 손예진에게 먼저 가라고 말하고 손예진은 같이 가자고 호소한다. 이런 실랑이를 벌이는 멜로 장면을 찍는 동안 일본군은 밖에서 기다려줬다. 당연히 지하로 같이 숨어들어야 마땅한데 박해일은 밖에서 천천히
기다리는 일본군을 혼자 상대하겠다며 울먹이는 손예진을 겨우 보냈다. 그 사이에 영화관에서 나는 잠이 들었다. 이러한 늘어지는 신파는 다른 한국 영화 속에도 많았다.

 

“이 영화의 매력은 '머뭇거리지 않는 것'”

영화 '불한당'의 매력은 ‘머뭇거리지 않는 것’이다. 총을 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죽는다. 이 표현이 잔인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영화의 활력을 더하고 리듬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요소다.
이 요소는 관객들을 흥분시키며 지루하지 않게 한다.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에도 총을 겨눈채 하소연의 장을 열어 눈물을 짜내는 진부한 영화가 아닌 것이다.
그러다 영화 후반에 단 한 차례 머뭇거린다. 그 머뭇거림은 조금 다르다.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영화 내내 그 장면을 위해 달려온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이는 의심과 배신으로 벌어지는 긴장이 주를 이루던 언더커버 영화의 익숙함을 벗어나는 지점이다. 의심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믿음이 만드는 긴장감은 기존의 달리던 도로를 살짝 벗어나는 감독의 스타일이자 매력이다.
이 ‘머뭇거리지 않음’에 대해 한 누리꾼은 “한국의 타란티노”라는 극찬을 했다. 그런데… 거기까지 가진 말자. '펄프픽션' '킬빌' '바스터즈:거친 녀석들' '장고:분노의 추적자'를 연출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가 단순히 머뭇거리지 않고 잔인하기만 한 것은 아니니까. 한 마디 덧붙이자면 타란티노 감독의 매력은 B 급 감성과 장르적 유희다.

 

▲ 사진 = 영화 '불한당'

“한국에 무슨 총이 있어?”

'불한당'은 현실 기반의 영화가 아니다. 첫 장면부터 총이 나온다. 영화의 배경은 한국적인 상황이나 실정에 기대지 않는다. 감독은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스타일’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대표적으로 교도소 장면이 그렇다. 실제로 교도소에 가본 사람 입장에서 그 장면은 전혀 현실성이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내가 범죄자라서 아는 것이 아니고, 전공실습을 교도소와 소년원에서 한 관계로 알고 있다) 범죄자들이 수용된 방 문이 열려 있고 현수(임시완)와 재호(설경구)가 대놓고 서로의 방에 드나드는 것, 교도소 내 '따귀 때리기 대회'등 이러한 장면은 현실에선 불가능하다.
비현실적인 지점은 액션 장면에서도 볼 수 있다. 후반부 최 선장 사무실에서 벌어지는 난투극은 관객들에게 통쾌함을 선사함과 동시 만화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재호의 주먹 한 방에 상대방이 한 바퀴 빙글 돌며 떨어지는 장면과 현수가 거구의 공격에 벽을 뚫고 날아가는 장면은 만화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장면을 통해 감독이 추구하는 것은 신선한 액션 스타일과 오락성이다. 감독은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칸 국제영화제’ 진출은 얻어걸린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영화제를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 대중들에게 사랑받기 위한 상업영화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앞으로도 감독은 영화제를 위한 영화는 만들 생각이 없다고.

 

▲ 사진 = 영화 '불한당'

“제가 지금 웃고 있습니까?”

멜로물로 전환되는 시점에 오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힘은 임시완과 설경구라는 배우 간의 감정선에서 나온다. 위에서 말한 ‘머뭇거림’에 대한 설득력이 연기에 달렸다는 것이다.
설경구의 연기는 딱히 설명할 것이 없을 정도로 뛰어나지만 새롭진 않다. 그러나 임시완의 연기는 배경음악과 대사가 없는 장면에도 분위기를 만들고 관객을 압도한다. 임시완의 연기를 통해 현수가 미소년의 외모지만 내면은 미숙하지 않은 사람임을 명확하게 드러난다.
최 선장은 거래를 제안하러 온 현수(임시완)에게 “딸내미처럼 생긴 애가 농담도 잘하네”라고 말한다. 이때 “제가 지금 웃고 있습니까?”라고 반문하는 현수의 표정과 말투는 캐릭터가 가진 내면의 단단함을 강하게 내비친다. 현수의 외모의 연약함과 최 선장의 거친 외모가 대비를 이루며 이 대사 한마디는 현수를 둘러싼 건달들의 분위기를 압도하고 긴장감을 유발한다. 최 선장과의 만남에서 임시완이 내뿜는 분위기는 영화의 스타일과도 맞아떨어진다. 이 장면(위 사진 참조) 하나만으로도 왜 그가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었는지 알 수 있다.

 

▲ 사진 = 영화 '불한당'

“도구적 캐릭터로 몰입과 감동을 저해”

이 영화에서 아쉬운 점은 현수와 재호의 멜로에 집중한 나머지, 주변 캐릭터들이 평면적으로 그려진다는 점이다. 많은 비중에도 불구하고 김희원과 전혜진이 맡은 캐릭터는 극적인 반전과 두 주인공의 멜로를 위해 도구처럼 이용된다. 김희원은 극의 활력을 불어넣고 전혜진은 반전의 빌미를 제공하지만 입체적이지 못한 캐릭터로 순간 쓰이고 버려진다. 이는 앞서 이야기한 만화적 설정과 함께 관객들을 흥분은 시키지만 몰입시키는 데 장애물을 만들고 감동을 저해한다. 이 때문에 우리는 영화의 결말에 대해 공감하거나 감동받지 못하고 그저 ‘저게 끝이구나’ 정도의 생각에 그친다.

그럼에도 장르적 쾌감은 있으며 상당히 멋있고 재밌다. 최근 변성현 감독의 트위터로 인한 논란은 안타깝지만, 영화에는 아직 임시완이 존재하며 볼거리도 많다.

▲ 사진 = 영화 '불한당'

이성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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