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양지원] “우리 죽지 말고 불행하게 오래오래 살아요. 그리고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또 만나요.” 영화 ‘꿈의 제인’(5월 31일 개봉)에서 제인(구교환)이 자조적인 목소리로 덤덤하게 내뱉는 말이다.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전하는 제인의 응원이다.

구교환은 소외 당한 10대 가출 청소년들을 따뜻하게 보살피는 트렌스젠더 제인 역을 설득력 있는 연기로 소화했다. 제인을 표현하기 위해 파격적인 변신을 감행해야 했다. 실제로 체중을 10kg이상 감량했으며 높은 하이힐에 짙은 화장 역시 필수였다. 이처럼 구교환은 영화에 굉장한 에너지를 쏟아 부었음에도 “힘들지 않았다”고 했다.

“외형적인 것에 대한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했다면 이 역할을 하지 않았겠죠. 시나리오에 제인의 몸 상태와 외형적인 모습이 적혀 있었어요. 이런 제인을 카메라를 통해 스크린에 옮겨야 한다는 마음을 먹은 후부터는 오히려 즐거웠어요. 그 기쁨이 강했기 때문에 다 덮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신체적으로 조금 힘들었을 뿐 어려울 게 없었죠. 지금은 아주 건강한 상태에요. (웃음)“

구교환은 출연 제안을 받은 순간부터 일찌감치 제인 역을 하기로 결정했다. 삶을 대하는 제인의 태도에 강렬하게 끌렸기 때문이다. 제인은 누군가를 함부로 평가하거나 저울질 하지 않는다. 늘 당당한 태도 역시 제인의 매력을 더한다. “항상 유머를 잃지 않잖아요. 그리고 누구도 함부로 위로하지 않는 삶의 태도에 강하게 끌렸어요. 사실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고, 또 함부로 위로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그런 제인에게 위로를 받는 대상이 바로 소현(이민지)이다. 누구보다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하지만 자꾸만 튕겨나가는 소현은 마치 이방인과도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 소현을 유일하게 품어주는 사람이 제인이다.

“여러 감정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동질감이라기보다는 그냥 이 사람이랑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제인의 동물적인 감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불쌍해서 거뒀다’는 이런 개념이 아니라고 이해했어요.”

구교환과 함께 호흡한 이민지는 “실제로도 구교환의 팬”이라고 했다. ‘꿈의 제인’ 출연을 결정한 이유가 구교환이 제인 역을 맡았기 때문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민지는 굉장히 유연한 배우에요. 대사 이외의 제스처나 호흡이 나올 때가 있었어요. 그럴 때마다 유연한 태도로 극의 흐름을 이끌어 갔죠. 실제 이민지의 성격도 굉장히 쾌활하고 유머 감각이 뛰어나서 만화 같은 표정을 잘 짓기도 해요. 이민지가 제 팬이라고 했지만, 제가 더 팬인 것 같아요.”

구교환은 보면 볼수록 궁금해지는 배우이자 감독이다. 엉뚱한 말투와 진중한 성격이 매력을 더했다. 수상경력도 화려하다. ‘꿈의 제인’으로 지난 해 부산영화제에서 올해의 남자배우상을 수상했고, 연출과 주연을 겸한 단편 ‘왜 독립영화 감독들은 DVD를 주지 않는가?’(2013년)로 미쟝센단편영화제 희극지왕 부문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다. 최근에는 김수현 감독의 ‘우리 손자 베스트’로 춘사영화제 남우신인상을 수상했다. 특히 구교환의 출연작들은 저마다 특색이 강한 작품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제가 그런 성향을 가진 건 아니에요. 저를 선택해주시는 감독님들이 제 쓰임을 그렇게 원하시는 것 같아요. 또 제가 그런 인물에 대해 매력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하고요. 호기심이 생기는 인물을 좋아해요. 여태 제가 연기한 캐릭터들은 모두 다 제가 궁금해했던 인물이었어요. 궁금해서, 알고 싶어서 그 캐릭터에 다가가는 것 같아요.”

구교환은 독립영화계에서 영향력을 자랑한다. 이에 반해 TV나 상업 영화에서는 자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아쉬움을 남기기도 한다. 지난 해 방송된 KBS 단막극 ‘아득히 먼 춤’이 첫 지상파 드라마 출연작이다. “제가 저를 그렇게 분리하지는 않아요. 독립영화에만 출연하고 싶어서 출연하는 것도 아니고요. 분명히 제 쓰임이 있는 대중영화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미드도 많고요. (웃음) 매체를 구분 짓는 것은 관객들이 해야 할 몫이죠.”

사진=엣나인필름 제공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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