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양지원] ‘악녀’(8일 개봉)는 김옥빈의 진가가 돋보이는 영화다. 모든 액션을 거리낌없이 직접 소화한 것은 물론이고 다양한 감정 연기까지 표현하며 ‘원톱’ 주연으로서 완벽한 존재감을 과시했다. ‘박쥐’(2009년)에 이어 또 한 편의 인생작이 탄생한 셈이다. 영화의 시작과 끝이 김옥빈의 ‘독무대’로 장식된다.

사실 ‘악녀’는 한국 영화계의 흐름에는 어울리지 않는 영화다. 언제부터였는지도 모를 만큼 철저히 남성 중심적인 충무로에서 여성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장르도 멜로나 드라마가 아닌 액션이며 주인공은 ‘여성 킬러’다.

“시나리오에 액션 신이 정말 많더라고요. 이걸 다 시키는 감독이나 투자사도 대단해 보였어요. 정병길 감독이 참 용기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액션도 액션이지만 한 여성의 성장 과정부터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관계까지 보여주는 영화잖아요. 이걸 다 보여주는 영화가 사실 별로 없어요.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8개월 동안 이 영화에 모든 열정을 쏟아 부었어요.”

평소에도 운동을 즐기는 김옥빈은 액션에 대한 부담감이 없었다고 했다.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할 만한 작품이 없어서 아쉬웠단다.

“왜 이런 영화가 이제야 만들어지나 했죠. 작품을 하는 동안 액션스쿨을 다녔는데, 늘 즐겼어요. 에어컨도 없이 운동하는데도 스트레스 해소가 됐어요. 날마다 실력이 점차 늘어가는 제 모습에 행복했죠. 달력에 크랭크인까지 남은 날짜를 체크하면서 액션을 배웠죠.”

그런 김옥빈에게도 아쉬운 점은 있었다. 자신이 연기한 숙희가 좀 더 ‘쿨한’ 여성이길 바랐다.

“저는 감정에 호소하기보다는 좀 더 담담한 연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숙희가 가진 감정이 어쩐지 소녀 같은 느낌일 때가 있잖아요. 사랑에 마음 아파하면서도 사람을 죽일 때는 강하고요. 사실 지금까지 연기한 캐릭터 중 가장 반대되는 성격이기도 해요. 좀 더 감정을 배제하고 싶었지만, 관객들이 작품을 이해하는 과정에서는 이게 맞는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숙희는 극중 아이 엄마이기도 했다. 실제로는 미혼인데다 아이가 없는 만큼 모성애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그런 감정들을 놓칠까 봐 생각을 많이 했어요. 아이를 낳은 사람들에게 직접 물어보기도 했죠. 아이가 차지한 감정의 중요성을 제가 간과한 것 같았거든요. 그 전까지는 모성애에 대해 한 번도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어요.”

감정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곤두세우며 촬영한 김옥빈은 영화에 대한 책임감이 상당했다. 주로 남성 주인공의 ‘그림자’에 불과했던 여성 캐릭터들이 앞으로는 빛을 볼 수 있길 바랐기 때문이다.

“여자 배우가 할 수 있는 캐릭터가 좀 한정적인 느낌이 들어서 늘 아쉬웠죠.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캐릭터가 창조될 수 있는데 왜 자꾸 복제하는 느낌으로 쓰일까에 대한 아쉬움이 컸어요. 그래서 이를 악물고 ‘악녀’을 촬영한 거죠. 제가 액션을 어설프게 하면 ‘거봐, 여자는 안되잖아’ ‘잘 다치네’라는 말을 들을 테니까요. 이후에는 누군가가 정 감독님처럼 모험을 하지 않을 테고요. 그렇기 때문에 잘 해내야 한다는 생각을 늘 했던 것 같아요.”

김옥빈은 청순하고 여성적인 캐릭터보다는 진취적인 면모를 갖춘 캐릭터에 강한 끌림을 느낀다. 자신의 열정과 에너지를 더 많이 쏟아내고 싶다는 바람이다.

“강렬하고 진취적인 캐릭터에 많이 끌려요. 배우로서 다양하게 활용되고 싶죠. 할리우드에서는 그런 역할들이 많이 있잖아요. ‘미스 슬로운’‘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히든피겨스’ 등 수도 없이 많죠. 한국영화에서도 좀 더 다양한 여성 캐릭터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사진=임민환 기자 limm@sporbiz.co.kr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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