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김서연] 박근혜 정부가 금융개혁의 일환으로 강력하게 추진했던 금융권 성과연봉제가 폐지 수순을 밟을 전망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앞서 후보 시절 성과연봉제 전면 재검토를 강조해왔던데다, 지난 달에는 법원이 근로자의 동의 없는 성과연봉제 시행은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도입에 대한 이사회 의결을 마치고 이미 성과연봉제를 적용하고 있는 금융 공공기관은 혼란스러운 모습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간부급 직원에게만 적용하던 성과연봉제를 비간부직 일반 직원으로 확대하고, 기존에 성과연봉제를 시행하던 곳들은 성과급 격차를 더 벌리는 내용이었다.

▲ 지난해 9월 서울 마포구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금융노조 총파업 집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오는 16일 공공기관운영회를 열고 성과연봉제에 대해 집중 논의한다. 금융권에는 이날 회의에서 성과연봉제 폐지 결정이 내려질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9개 금융 공공기관(산업은행·수출입은행·기업은행·한국주택금융공사·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한국자산관리공사·예금보험공사·한국예탁결제원)은 모두 내년 1월 1일부터는 성과연봉제를 적용한다. 이 중 한국주택금융공사, 한국자산관리공사, 예금보험공사는 올해 1월 1일부터 성과연봉제를 적용해 직원 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오는 하반기에는 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 내년부터는 산업은행·수출입은행·기업은행·한국예탁결제원도 성과연봉제 시행에 들어간다.

이미 성과연봉제를 도입했거나 내년부터 이를 도입할 주요 금융 공공기관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하지만 ‘일단은 정부의 지침을 지켜본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기업은행은 박근혜 정부 시절 노조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다. 기업은행 노조는 지난해 5월 성과연봉제 도입을 경영진이 결정하자 효력정지 가처분 소송을 냈고 현재 2심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노조도 지금 딱히 움직임이 크게 없다”며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 통과되면 자연스럽게 성과연봉제도 정지될테니 결과를 봐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기본골자는 호봉제였기 때문에 (성과연봉제가) 철회되면 호봉제로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산업은행은 애초 이 제도를 도입해 시행 중에 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이번 성과연봉제 이슈는 도입대상의 확대적인 성격이 컸다”며 “철회된다 하더라도 호봉제로 회귀하는 것은 아니고 직원에 대한 평가기준이 좀 더 개별적으로, 임금의 차등 폭이 커지는 정도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수출입은행은 2018년부터 이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수출입은행 관계자는 “아직 도입까지 기한이 남아있어 향후 정부와 금융권의 움직임 추이를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성과연봉제의 폐지로 지금과 같은 단순한 호봉제가 계속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일방적으로 진행된 성과연봉제를 폐지하고, 연공서열이 아닌 업무 성격이나 난이도, 직무 책임성에 따라 임금의 차이를 두는 직무급제 도입을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다.

한 금융 공공기관 관계자는 “새 정부가 들어선 만큼 노조의 반발을 무시하면서 일방적으로 추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성과연봉제) 폐기가 확정되면 업무 성격이나 직무 책임성에 따라 연봉에 차이가 생기는 직무급제가 도입될 것으로 본다”고 조심스럽게 예상했다. 

다른 금융 공공기관 관계자는 “내일 공공기관운영회에서 논의된 것이 가이드라인이 될 것”이라며 “성과연봉제 폐지가 확정되더라도 공공 부문에서의 임금체계 개편에 대한 논의는 한동안 이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성과연봉제 대신 다른 임금체계가 들어서더라도 성과연봉제에 대한 심도깊은 논의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금융권 관계자는 “노사 합의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던 곳이 거의 없는 만큼 (성과연봉제) 폐지가 되더라도 문제점 전반에 대해 따져보는 자리가 있어야 할 것”이라며 “직무급제가 답이라서 성과연봉제가 폐지되는 것이 아니기에 노조와 전반적인 사항에 대해 다시 협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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