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는 신태용 감독/사진=이호형 기자

[한국스포츠경제 정재호] 신태용(47) 전 20세 이하(U-20) 대표팀 감독은 경상도 특유의 무뚝뚝한 사나이 같지만 얘기를 나눠보면 허물이 없고 꾸밈이 없으며 시원시원한 성격이라는 걸 금세 알 수 있다. 본능적으로 사람을 끄는 카리스마를 지녔고 현역시절 여우라는 별명처럼 굉장히 스마트하다.

신념은 뭐가 됐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다. 화려한 선수 시절부터 K리그 성남과 올림픽 대표팀ㆍU-20 감독을 거치면서 항상 주어진 일에 잠도 안 자고 올인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 심지어는 “시합 하나하나에 목숨을 걸고 준비한다”고 스스로가 표현한다. 그를 지난 13일 경기도 분당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 신태용 프로필

-대회가 잉글랜드의 우승으로 끝났다, 결승전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

“역시 좋은 선수들이었다. 잉글랜드도 베네수엘라도 우리나라에서 멋진 경기를 펼쳐줘 보기 좋았다. 이런 모습은 하루아침에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체계적으로 키워내야 된다는 걸 새삼 느꼈다. 포르투갈도 그렇고 올해는 예전과 달리 각 나라들에게 유독 좋은 선수들을 많이 데려왔다. 탈락했지만 아르헨티나 역시 개개인의 능력이 출중하고 수준 높은 경기를 했다. 전반적으로 미국도 좋았고 멋진 경기들을 해줬다. 우리 시합이 끝나고 정몽규(55ㆍ대한축구협회장) 회장님이 선수들 수고했다고 노고를 치하하는 오찬 자리에서 개인적으로 잉글랜드가 우승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잠비아도 우승 후보로 꼽았던 기억이 난다. 개개인을 보면 잉글랜드는 프리미어리그(EPL)에 출전했던 친구들이다. 대다수가 리저브 팀에서 뛰고 있고 웬만한 선수들이 이적료만 수십억에 달한다.”

-시간이 조금 지난 현재 우리 대표팀을 되돌아본다면

“우루과이와 평가전부터 착실히 준비를 잘했지만 선수들이 본 경기에 들어가서 우루과이전부터 포르투갈전까지 계속 컨디션을 100% 유지해나간다는 자체가 쉽지 않았다. 평가전만큼만 해줬다면 좋았을 텐데 끝까지 끌고 가지 못한 점이 아쉽다. 포르투갈에 졌던 경기 내용보다 훨씬 많은 걸 가지고 있음에도 보여주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잉글랜드 감독은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한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비난의 대상이 된 다양한 선수기용과 전술 시도는 국제적 성장 과정이라는 U-20 본래의 취지에서 보면 이에 충실한 잉글랜드와 비슷했다

“현 시점에서 우리 선수들 가지고 조별리그 통과만 해도 자랑스럽고 잘했다고 생각한다. U-20은 어린 선수들을 키워내고 성장시키기 위해서 만든 대회다. 시합은 이기고 지는 팀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너무 성적에 대해서만 얘기한다. 이승우(19ㆍFC바르셀로나 후배닐A)와 백승호(20ㆍFC바르셀로나 B)를 내서 잉글랜드를 이긴다는 보장이 있나. 이미 16강에 진출했는데 엑기스와 패를 다 보여줘서 한다? 그런 멍청하고 무모한 감독이 있겠나. 지고 싶어서 하는 감독은 세상에 없다. 모든 역량을 다 쏟는다. 우리나라가 세계 톱 레벨이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왜 아껴서 지고 1위 못가서 잡혔느냐는 말이 나오는 것 같은데 못 뛴 선수들 중에 최선을 다하는 아이들에게도 기회를 줘 키워내는 것이 방법이다. 어린 선수들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모습에 박수 쳐주고 싶다. 우리나라에서 하는 대회 준비도 잘했고 4대륙 대회 할 때부터 관심 받으면서 나는 무척 좋았다. 선수들이 예뻐 보이고 고맙게 생각한다.”

▲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는 신태용 감독/사진=이호형 기자

-결과를 떠나 아르헨티나, 잉글랜드, 포르투갈 등 전통의 강호들을 상대하면서 선수들의 기량차가 난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당연히 기량차를 느꼈다. 우리 선수들도 잠재력이 상당히 좋은데 그 잠재력을 표출할 수 있으려면 뭘 해야 할 것이냐를 많이 생각하게 됐다. 무엇보다 선수는 경기를 뛰어야 된다. 유망주에서 그치면 안 된다. 그러려면 소속팀에 돌아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경기를 뛸 수 있도록 노력해야 성장할 수 있다. 순간 실수하는 부분이나 상대보다 다급하게 볼 컨트롤을 하는 등은 평상시 경기력에 못 미치는 부분으로 역시 경기 경험의 차이일 수 있다.”

-당초 8강 이상이 목표였다. 가장 큰 패착은 무엇이었나

“경기가 끝나고 난 다음에 돌이켜보면 상대를 더 급하게 만들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경기는 90분 안에 끝나는 것인데 그걸 염두에 두고 상대 체력이 더 다운될 때까지 조금 더 우리 지역에서 지키면서 골을 안 먹을 수 있도록 만들어갔어야 되지 않나 싶다. 포르투갈이 우리보다 더 강국인데도 더 내려앉은 모습을 보였다. 돌다리도 두드려서 갔던 것이다. 성급함보다는 지공으로 가면서 체력으로 버티고 갔으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겠나. 개인기는 뒤질 수 있지만 체력은 우리 쪽이 유리하다는 부분을 더 깊이 생각 못해 많이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해 상대는 체력적으로 분명히 밀릴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루를 덜 쉬었고 심리적으로 압박 받는 상태였다. 그런 부분을 이용해 빨리 체력을 다운시키고 후반에 승부를 내겠다는 전략이 조금 성급했구나하고 뒤늦게 깨닫는다.”

-지난 올림픽 예선 한일전 결승부터 토너먼트에서 3번째 좌절이다. 필연적으로 토너먼트에 약하다는 지적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앞으로 이런 점들을 어떻게 극복해나갈 것인가

“축구라는 것은 골을 먹을 수도 있고 넣을 수도 있다. 한일전은 당시 골짜기 세대라고 해서 리우 올림픽 티켓만 따도 대성공한 거라고 얘기했다. 국민들이 바랐던 세계 최초 8회 연속 올림픽 티켓 따는 것이 목표였으니까 그걸 이룬 뒤 결승은 하고 싶은 플레이하고 마무리하자고 나갔다. 선수들이 열심히 해주고 분위기가 좋아 이제는 우승의 의미보다는 일본이라는 팀을 한 번 혼내주자고 하다가 역전을 당했다. 내가 더 안정적으로 갔어야 됐는데 그걸 교훈삼아서 배우는 것이다. 온두라스와 올림픽 8강전은 그 좋은 경기를 하고 0-1로 졌다. 한국이라는 팀이 최고는 아니다. 세계 대회 가서 1골 먹는 건 어쩔 수 없다. 어느 감독이나 떨어지고 올라가고 한다. 너무 성적에 연연하고 포커스를 맞추는데 우리는 시합 하나하나에 목숨을 걸고 준비한다.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건 안타깝다.”

▲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는 신태용 감독/사진=이호형 기자

-그런 경험들이 앞으로의 신태용을 어떻게 바꾸는가

“내 몸 안에 축적이 된다. 포르투갈한테 그렇게 지면서 생각했다. 우리보다 훨씬 강한 팀이 더 조심스럽게 내려앉아 경기하는 모습을 봤다. 다시 이런 기회가 온다면 나 또한 돌다리를 두드려서 더 안정적으로 가야 될 부분이 있겠구나하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축구는 90분 안에 마지막에 골을 넣고 이기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많이 느꼈다.”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답답했던 슈틸리케호보다 질 때 지더라도 화끈하게 붙는 신 감독 스타일의 경기가 낫다는 여론도 많다

“일단 먼저 생각하는 것이 공격이다. 축구 팬들은 단 얼마가 됐든 돈을 주고 경기장을 찾아온다. 팬들을 위해 이기려고 하는 것이고 이기지 못하더라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실망하지 않고 돌아갈 수 있게끔 하자는 마인드다. 수비한다고 해서 골을 안 먹는다는 보장은 절대 없다. 수비 지향하다가 골 먹고 지면 어떤 반응이 나오겠나. 한 골 먹어도 공격하고 화끈하게 맞받아치고 골 넣고 지면 팬들이 후회 없이 응원하고 간다. 그런 마인드가 다르다. 어느 것이 좋다라기 보다는 어느 팀이 됐든 맞받아쳐서 선수들 잠재 능력 끄집어내고 좋은 모습 보이자는 게 내 축구 철학이다. 때로는 내려앉을 때 내려앉을 수도 있다. 예전에는 신나게 공격만 했다면 그 동안 경험을 통해 그런 부분이 많이 늘었다는 것이다. 사실 신태용 축구가 수비 조직 훈련은 최고로 많이 한다. 그래서 그나마 안정적으로 갈 수 있다. 훈련량에서 절반 이상은 수비 조직에 할애한다. 일단 수비적으로 안정 시켜놓고 공격을 가져가야지, 수비가 안정돼야 공격도 편하게 할 수 있다.”

-한국 U-20 대표팀이 벤치마킹해야 될 대상이 있다면

“팀들마다 시스템이 다르기 때문에 뭐라 말하기 힘들다. 그들은 유소년 때부터 골든 에이지라며 공을 들이지만 우리는 성적 지상주의가 만연해있다. 선수들은 또래들과 뛸 수 있는 기회가 없다. 대학 선수들은 선배 진학 문제 때문에, 갓 프로에 들어간 선수는 키워내는 방법이 체계화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잉글랜드를 벤치마팅 할 수는 있겠다. 단 보여주는 벤치마킹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 할지는 고민해야 된다.”

[인터뷰는 2편에 계속]

분당=정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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