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이 바쁜 세상이다. 머리와 가슴이 반응하기 전에 본능적으로 손가락이 먼저 움직이고 있다.

어느새 유행어가 된 ‘팩트체크’, 하지만 사실 확인 여부는 중요치 않다. 기다릴 수 있는 마음의 여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일빠(첫 번째로 달리는 댓글)가 되고 싶다. 빛의 속도로 작성 끝, 댓글에 어떤 반응들을 보일까 무척이나 궁금하다. 찬성 의견이면 기분 업, 비난 대댓글(댓글에 대한 또 다른 댓글)이라도 있을라치면 감정 조절이 안 된다.

“이건 뭐야” 급기야 댓글 전쟁이 시작된다. 상대가 누구인지는 알고 싶지도, 알 필요도 없다. 입에 담지도 못할 말들이 오고 가며 활자는 어느새 상대를 물어뜯기 위한 가장 강력한 무기로 변질되고 만다. 소리 없는 싸움판, 이렇듯 소통창구는 때로 불필요한 감정소모전으로 번지며 영혼에 생채기를 낸다. 이 상처엔 치료법도 없다. 도무지 근절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이른바 ‘악플문화’다. 여기에 익명성은 양심을 묻어버리는 허울 좋은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얼마 전 가인은 자신의 병원진단서까지 SNS에 공개하며 악플러들에게 맞섰다. 건강 악화로 스케줄을 취소했던 것이 임신설로 확산되었고, 추측을 넘어 억측이 난무하는 악플들에 더 이상 참을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매우 적극적인 자세로 ‘팩트체크’를 시켜준 셈이다.

▲ 가인 인스타그램 캡처

항상 좋은 이미지를 보여주어야 하는 연예인으로서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의 병원진단서를 공개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렇게라도 해서 들불처럼 번져가고 있는 잘못된 소문을 바로 잡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악플러들을 향한 그녀의 목소리(메시지)는 몹시 격앙되어 있었지만 당당했다. 악플에 대처하는 자세가 마치 투사(鬪士)같았다.

유명인들의 ‘악플러 고소’ 관련 소식은 단골뉴스가 돼버린지 이미 오래다. ‘댓글문화’의 영향력이 날로 커지고 있는 요즘, 이와 관련된 뉴스역시 새롭게 업그레이드 되는 양상이다. 최근 하리수와 미키정의 이혼소식에 따른 악플들은 저질스러운 막장드라마를 능가하며 두 사람의 아픔을 희화화했다. 남의 아픔이 나의 즐거움이라도 되는 양, 가학적인 악플러들의 무책임함은 끝을 모른다. 이것이야말로 ‘댓글폭행’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악플문화’는 도덕과 양심이 실종된 껍데기뿐인 ‘표현의 자유’ 그 이상일 수 없다.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하에 자행되고 있는 무차별적인 인신공격이 과연 진정한 의미의 ‘표현의 자유’인지 생각해 볼 문제다. ‘댓글’은 소통을 위한 적극적인 행동양식이다. 말 안 되는(무조건적인) 비난이 아닌 ‘말 되는 비판’이 살아있는 곳에서라야 소통은 가능해진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는 속담이 있다. 혹시 지금 여과 없이 써 버린 댓글이 누군가의 생사를 갈라놓을 수 있는 무심코 던진 돌은 아닌지. 손가락을 움직이기 전에 머리와 가슴으로 한 번만 생각해보자. ‘만약 그 댓글이 나를 향하고 있는 것이라면’ 하고 말이다. 그럼에도 악플을 남발할 수 있는가. ‘역지사지’를 기대한다는 것이 유토피아적인 환상이 아니길 바란다. 적극적인 고소와 강력한 처벌이라는 응징의 형태로 ‘악플문화’를 줄여나가기 이전에 그래도 아직은 ‘도덕과 양심’에 기대를 걸고 싶다. 바보 같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것이 사람 사는 세상이니까.

●권상희는 동덕여대 방송연예과와 국민대 대학원 영화방송학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2002년부터 영화 드라마 연극 뮤지컬 방송진행 등 다양한 미디어를 경험했고, 고구려대학 공연예술복지학부 외래교수를 역임한 뒤 문화평론가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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