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환/사진=KPGA

[한국스포츠경제 정재호] 현실이라고 믿기 힘든 스토리가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의 역사에 새롭게 아로새겨졌다. 같은 선수가 2주 연속으로 연장전을 벌여 188cm 최장신 골퍼 이정환(26ㆍPXG)이 지난주 김승혁(31)에게 당한 패배를 설욕하며 7년간의 무명 설움을 마침내 날려버렸다.

이정환은 18일 충남 현대 더 링스 컨트리클럽 B코스(파72ㆍ7,158야드)에서 열린 KPGA 코리안 투어 ‘카이도 시리즈 2017’ 카이도 골든 V1 오픈(총상금 3억원ㆍ우승상금 6,000만원) 4라운드에서 최종 합계 17언더파 267타를 작성했다.

3타 앞선 단독 선두로 마지막 날에 임한 이정환은 16번 홀(파5)까지 2타 차 1위를 유지해 우승이 유력했다. 그러나 17번 홀(파4)에서 티샷이 해저드에 빠져 보기를 범하며 버디를 잡은 김승혁에게 동타를 허용한 뒤 연장전으로 끌려갔다.

KPGA에 따르면 같은 선수가 2주 연속으로 연장전을 벌이기는 이번이 역대 처음이다. 심리적으로 이정환이 쫓기는 상황이었지만 18번 홀(파4)에서 진행된 연장 승부에서 이정환이 파 세이브에 성공하는 사이 퍼팅이 뛰어난 김승혁은 1m 거리의 파 퍼트를 놓치는 이변이 연출되면서 기나긴 승부에 마침표가 찍혔다.

지난주 데상트 코리아 먼싱 웨어 매치 플레이에서는 김승혁이 연장전 끝에 이정환을 간발의 차로 꺾어 결과적으로 양 선수는 2주간 사이 좋게 1승씩을 나눠가지게 됐다. 신 라이벌전으로 화제를 모은 조연 김승혁이 있었기에 더 빛나고 감격스러운 우승이었다. 경기 후 이정환은 “솔직히 또 지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며 “이겨서 이렇게 말은 하는데 기분은 정말 너무 좋다. 사이 좋게 하나씩 나눠 가진 것 같다. 하늘에서 그렇게 해줬지 않나 생각하고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2007~2008년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인 이정환은 2010년 투어에 입문한 뒤 그 동안 KPGA 최장신 골퍼 정도로만 알려졌다. 지난해 상금 순위가 127위일 만큼 철저한 무명이었다. 무려 7년여 만에 나온 데뷔 첫 우승을 2015년 6월 이태희(33ㆍ러시앤캐시) 이후 2년만의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으로 장식해 기쁨을 두 배로 늘렸다.

티칭 프로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7세 때 골프에 입문한 이정환은 큰 키에서 뿜어져 나오는 장타가 일품이라는 평가다. 2015년 드라이버 샷 평균 비거리가 약 300야드(293.75야드ㆍ269m)에 달했고 올 시즌 역시 276.47야드(253m)를 뿜어내고 있다. 여기에 올해부터 부쩍 좋아진 아이언 샷이 평균 타수를 70타(69.70타)대 밑으로 떨어뜨린 결정적인 원동력이다.

이정환은 이번 대회 전까지 2017시즌 그린 적중률이 82.50%로 전체 1위에 올라있다. 그는 “작년 시즌을 마치고 나서 내 선택은 딱 하나였다. 클럽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었다.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클럽을 바꿨는데 정교한 샷이 나오고 있다. 나와 잘 맞는 것 같다”고 비결을 설명했다.

투어 65경기 만에 거둔 첫 우승의 가장 큰 수확은 자신감이다. 그는 “지금 샷 감이 너무 좋다”면서 “저번 주 연장전을 치르고 힘들어서 스윙을 조금 힘을 안 들이게 바꿔보려고 연구해봤는데 이번 대회에서 잘 통한 것 같다. 잘 된 것 같으니까 다음 대회가 더 기대된다”고 말했다.

2014년 박상현(34ㆍ동아제약) 이후 2개 대회 연속 우승이자 통산 4승에 도전했던 김승혁은 준우승에 만족했고 박은신(27)은 단독 3위(16언더파 272타)로 시즌 최고 성적을 거뒀다. 출전 프로 선수 중에서 최연소인 임성재(19)가 공동 5위(14언더파 274타)로 대회를 마쳤고 자폐성 발달장애 골퍼로 데뷔전을 치른 이승민(20)은 컷 탈락(4오버파)했다.

정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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