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양지원] 이제훈은 연기에 대한 욕심과 열정이 굉장한 배우다. 욕심 없는 배우가 어디 있겠냐 만은 이제훈의 열정은 결코 일반적이지 않다. TV 화면이나 스크린을 통해서도 에너지가 느껴질 정도니까. 연기를 대하는 열정적인 태도는 영화 ‘박열’(28일 개봉)의 박열과 닮았다. 일제에 뜨겁게 저항하며 삶을 불태운 박열처럼 이제훈 역시 오직 연기 하나를 바라보며 뜨겁게 살았다.

“스크린이나 브라운관에 나오는 배우들의 모습을 늘 동경했다. 실제로 ‘내가 연기를 해 볼까?’든 건 20대 초반이었다. 결코 이른 나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스물 다섯에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배우라는 인생에 목숨을 걸어보자는 다짐을 했다. 그 당시 친구들은 군대를 가거나 취업을 한 상태였는데 나만 고립된 것 같았다. 낙오되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상당히 컸다. 그 때 정말 뜨겁게 살았던 것 같다.”

매 순간 뜨겁게 살고 있는 이제훈은 ‘박열’에서 데뷔 이래 가장 파격적인 변신을 펼쳤다. 덥수룩한 수염에 꾀죄죄한 복장으로 비주얼 변신은 물론, 캐릭터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석으로 완벽히 몰입된 연기를 보여줬다.

“나를 통해 박열이라는 인물이 잘 보이기를 바랐다. 그 어느 작품보다도 연기하는 데 굉장히 신중했고 조심스러웠다. 감정적인 호소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 제 3자의 시선을 가지려 노력했다. 박열이라는 인물이 일본에서 재판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지에 집중했다. 허황된 이상주의처럼 보이지만 절망에 빠진 조선인들에게 희망이 되고자 하는 바람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걸 염두에 두고 연기했다.”

이제훈이 연기한 박열은 간토(관동) 대학살이 벌어진 1923년 일제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리려고 일부러 일본 황태자 암살 계획을 자백하고, 국제사회의 이목이 쏠리도록 목숨을 건 법정 투쟁을 벌였던 조선의 아나키스트다. 일본군에게 굽히는 적이 없으며, 감옥에서도 거침없이 단식투쟁을 이어가기도 한다.

“단식 투쟁을 하면서 얻어맞는 장면을 촬영하며 실제로 맞았다. 간수로 나온 상대 배우에게 ‘실제로 나를 밟아달라’고 부탁했다. 목구멍까지 밥을 쑤셔 넣어달라고, 얼굴을 가감 없이 후려쳐 달라고 했다. 뺨을 맞을 때는 귀를 잘못 맞아 소리가 울리고 어지러웠다. 차마 아프다고 말할 수 없었다. 촬영을 마치고 돌아가는데 헛구역질이 났고 괴로웠다. 솔직히 다신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다. 하지만 그 당시 내겐 꼭 실제로 경험했어야 할 장면이었다.”

‘박열’은 일본의 제국주의와 천황제의 폐해를 비판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배우 입장에서는 일본 관객의 반응을 우려할 법도 하다.

“단순히 시대상을 따온 픽션이 아닌 고증에 입각한 영화다. 이준익 감독이 일본 아사히 신문에 연락을 하고 자료를 취합했다. 우리나라가 일본과 해결하지 못한 점이 있지 않나. 그걸 우리가 외면하지 말자는 생각이었다. 일본 역시 사과할 건 사과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두 나라가 서로에 대해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박열에게는 사랑하는 동지이자 아내 가네코 후미코(최희서)가 있다. 단순한 남녀의 사랑이 아닌 같은 세상을 지향하는 정신적 동반자이기도 하다. 이제훈은 “실제로는 그런 여자를 만나지 못했다”고 했다.

“가네코처럼 신념이 맞는 여자는 아직 보지 못했다. 긍정적이고 유쾌한 사람에게 끌리는 편이다. 삶을 기대하고 꿈을 꾸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단순한 남녀의 케미나 사랑이 아니라 그 이상의 만남을 생각하는 편이다. 아무래도 배우자는 서로 존중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되지 않을까? 서로 배려하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길 바란다. 사랑만으로 평생을 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이제훈은 대중에게 ‘신비주의’가 아닌 ‘소통’을 할 수 있는 배우로 비춰지길 바란다고 했다. 관객을 웃기고, 울리는 배우가 되는 게 이제훈의 소박한 목표다.

“배우라는 껍데기만 보고 날 대하는 게 조심스러울 수 있을 텐데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 사는 얘기를 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영화라는 울타리 안에서 지내다 보니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적어지는 것 같은데 조금 더 적극적인 소통의 장을 만들고 싶다.”

사진=메가박스(주)플러스엠 제공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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