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나란히 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KFA 제공.

[한스경제 박종민] 그야말로 차포 다 빠진 한국 축구다. 대한축구협회(KFA) 기술위원회는 앞서 15일 파주 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에서 회의를 열고 울리 슈틸리케(63ㆍ독일) 감독을 경질했다. 이날 이용수(58) 기술위원장 역시 사퇴했다.

한국 축구는 지난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이후 최대 위기를 맞았다. 한국 축구의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 전망엔 먹구름이 드리웠다.

축구계 인사들에게 한국 축구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물었다. 과거 월드컵에 출전했던 한 정상급 선수는 전화 통화에서 “슈틸리케 감독의 지도력도 문제였지만, 대표팀 선수들에게도 아쉬움이 남는다”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어 그는 “경기에서 튀려고 하는 선수들이 눈에 보이더라”며 “축구는 팀 스포츠다. 감독과 선수 등이 모두 희생하며 하나의 팀이 돼 경기해야 이길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8일 본지와 만난 한 축구계 원로는 한국 축구 상황을 심각하게 진단했다. 1970년대부터 축구 현장을 누빈 그는 “최근 30년 간 한국 축구가 월드컵 예선에서 이렇게 고생한 적이 없었다”며 “슈틸리케 감독, 선수들 모두 책임이 있다”고 날을 세웠다.

그는 “대표팀 선수 자원에도 문제가 있었다. 활용할 만한 선수들이 과거에 비해 많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표팀 간판스타인 손흥민(25ㆍ토트넘)을 두고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선 펄펄 날지만, 이상하게 국가대표팀에선 활약이 좋지 못하다. 상대 공격 진영에서 수비수 1명을 제치는 데도 애를 먹더라. 차라리 이근호(32ㆍ강원FC) 등 일부 선수들이 더 나아 보인다”고 쓴소리했다.

축구계 원로는 차기 감독 후보로 허정무(62)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를 거론했다. 그는 “사실 최선은 아니다. 하지만 마땅한 대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차선의 선택쯤은 될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신태용(47) 감독은 지난 20세 이하(U-20) 월드컵 잉글랜드전에서 후보들을 대거 기용했던 선택에 아쉬움이 남는다. 안방 대회에서 16강에 탈락했다. 결코 잘했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홍명보(48) 전 항저우 그린타운FC 감독에 대해선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실패의 경험이 있다고 했으며 최용수(44) 전 장쑤 쑤닝 감독을 두고는 최근 중국에서 활동해 한국 축구를 접할 시간이 적었다고 설명했다. 황선홍(49) FC서울 감독과 관련해선 “당장 맡고 있는 K리그 팀의 성적도 좋지 못하다”고 했다. 이 원로는 “슈틸리케 감독이 경질된 상황에서 외국인 감독을 들여오는 것도 어렵다”고 전했다.

한준희(47) KBS 축구해설위원은 거시적 관점에서 한국 축구를 걱정했다. 한준희 위원은 슈틸리케 후임 감독의 덕목으로 3가지를 꼽았다. 한준희 위원은 본지와 인터뷰에서 “차기 감독은 선수들의 정신력을 끌어올리고 ‘해보자’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다만 정신력만 내세우는 감독이 아닌 철저한 상대분석과 계획수립으로 단기전을 치를 수 있는 전술적 디테일을 갖춘 사람이 적임자다”며 “중요한 경기에서 평점심을 잃지 않고 경기 상황에 따른 전술 변화를 냉정하게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다”고 강조했다.

한준희 위원은 한국 축구의 당면 과제로 합리성과 소통, 정신 재무장을 언급했다. 그는 “한국 축구가 가장 이로운 방안들을 통해 합리적으로 계획되고 운영돼야 한다. 풀뿌리인 현장부터 축구협회에 이르기까지 합리성의 덕목이 강화돼야 한다”고 했다. 이어 “현장 관계자, 각종 전문가, 언론, 팬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귀울이고, 그러한 목소리가 나는 원인들을 냉정하게 살펴봐야 한다. 시대정신인 ‘소통’은 축구에서도 예외가 될 수 없다”고 방점을 찍었다.

한준희 위원은 “한국 축구는 리그든 국가대표팀이든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안일함에 빠져 있으면 안 된다. 축구계 모든 관계자들의 정신적 재무장도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박종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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