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 영화 '꿈의 제인'

[한국스포츠경제 이성봉] "이상과 현실 차이를 느낀 사례를 쓰시오"

한 기업의 자기소개서 질문이다. 기업이 노동력을 위해 사람을 뽑는데 저 질문을 왜 하는 것일까. 이상이나 현실을 명확히 구분하는 사람을 바라는 걸까. 노동력을 발휘하는데 이상과 현실을 고민하는 것이 어떤 도움이 될까. 이 질문을 한 기업은 국내 손꼽히는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현재 소속 아티스트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 질문은 이상과 현실을 구분한 것부터 첫 매듭을 잘못 지은 것이다. 사전적 의미로 '이상'은 생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가장 완전한 상태를 일컫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상과 현실은 언제나 같지 않고 차이가 난다. 이상이 아니라 꿈이라 표현하고, 현실과 선을 긋지 말아야 한다. 당신의 꿈은 무엇이며,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한 계획은 무엇인지 묻는 것이 그나마 더 나은 사람을 뽑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꿈과 현실은 명확하게 구분 짓는 순간부터 이상이고 현실이 된다. 꿈은 그리고 싶은 것이고 현실은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도화지다. 이를 정확히 알고 있는 영화가 있다. 꿈과 현실의 경계를 구분하지 않는 영화 '꿈의 제인'은 조금 복잡하고 혼란스럽지만 그것이 결국 우리의 삶이라 말한다.

가출 청소년 ‘소현(이민지)’은 혼자 남겨지는 것이 두려워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애쓴다. ‘소현’을 받아주던 유일한 사람인 ‘정호’ 오빠마저 떠난다. 생을 마감하려던 ‘소현’은 우연하게 ‘정호(이학주)’를 찾고 있는 ‘제인(구교환)’을 만나 작은 희망을 꿈꾸기 시작한다.

 

▲ 사진 = 영화 '꿈의 제인'

소현은 영화 시작과 동시에 편지를 쓴다. 그러나 그 편지가 누구에게 보내지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안녕하세요.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라고 시작하는 편지는 현재 쓰는 것인지 과거인지 미래인지 알 수 없다. 현재라고 생각했던 편지는 영화가 흘러갈수록 시점을 흐린다. 이 편지는 어쩌면 영화 속 어떤 인물이 아니라 소외된 우리 중 누군가에게 보내는 위로의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소현은 자신이 쓴 편지를 한 구석에 숨긴다. 소현 역을 연기한 배우 이민지는 “그 편지의 수신인이 누구냐”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소현과 비슷한 감정을 가진 사람이 이 편지를 발견해주길 바란다"

 

▲ 사진 = 영화 '꿈의 제인'

 

"특정 색깔과 소품을 신경 써서 보시면 더 재밌다"

두 번 보면 더 재밌을 것이라는 감독은 영화를 이미 관람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영화 속  제인이 있는 세상과 없는 세상은 색감뿐만 아니라 카메라 움직임도 다르다. 색과 의상은 소현의 희망과 욕망이라는 심리상태를 대변한다. 감독은 제인이 있는 세상과 없는 세상으로 명확히 구분될 수 있는 이야기를 반복되는 소품을 통해 논리적 연결하며 이야기의 퍼즐을 맞추는데 힌트를 주려했다. 예를 들어 제인이 없는 공간에서는 불안한 소현의 심리상태를 표현하기 위해 톤이 낮은 계열의 색들을 사용했다. 영화를 한 번만 보면 이야기 흐름을 따라가기 바빠서 소품이나 색을 찾아볼 여유가 없다. 좋은 영화는 두 번보면 더 좋다.

 

▲ 사진 = 영화 '꿈의 제인'

영화에서 ‘제인’은 적은 분량이지만 가장 매력적이고 기억에 깊이 새겨진다. 어쩌면 영화 속에서 가장 완벽한 인간상일지도. 영화 속 등장하는 가출한 아이들의 모임(가출팸)은 아이들을 모아놓고 일을 시킨다. 그 일을 통해 번 돈으로 생활을 한다. 하지만 제인이 만든 가출팸은 "어차피 평생 일할 텐데 벌써부터 뭘 해"라며 가출한 아이들에게 어떠한 일도 시키지 않고 그들의 생활을 지원한다. 제인은 주변 환경의 그림자를 걷어내며 가출한 아이들에게 소소한 꿈을 전파한다. 제인이 만든 보금자리는 이상적이고 완벽에 가깝다. 소외된 아이들을 보듬어주기에 충분해 보인다.

중간중간 툭 내뱉은 대사들은 아날로그 감성처럼 따뜻한 향기를 내뿜기도 한다. 예를 들어, “땅에 떨어진 것은 주운 사람이 임자다” “네가 그런 말을 하면 하늘로 갔다가 돌아오는 거야” 등과 같은 대사는 논리적으로 맞지 않으나 웃음을 나게 만들고 안정적 공간에 관객을 불러들인다. 이 같은 대사에 대해 감독은 본인의 할머니를 생각하며 만든 것이라 밝혔다. 제인이 만들어낸 공간 또한 할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장소로 섭외를 했다고.

 

▲ 사진 = 영화 '꿈의 제인'

 

"이야기 구조로 만든 의도적 혼란스러움"

이 영화의 이야기 구조는 상영이 끝나기 전까지 정리하기 쉽지 않다. 꿈인 줄 알았던 장면은 현실이 되고 현실인 줄 알았던 장면은 꿈이 된다. 시간순으로도 맞지 않다. 영화의 기승전결도 명확하지 않다. 전반부에 소현이 제인과 함께 살게 되는 이야기와 후반부에 병욱(이석형)이 만든 가출팸에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크게 양분할 수 있지만, 이 마저도 정답은 아니다. 후반부에 다시 등장하는 제인을 두 이야기 속에 집어넣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렇게 구조적으로 정리가 잘 안 되는 영화를 이전에 본 적이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2000년작 영화 <메멘토>는 단기 기억상실증의 걸린 주인공의 상태를 관객도 함께 느끼게 한다. 주인공은 금세 사라지는 기억 때문에 모든 것을 기록한다. 중요한 내용은 문신으로 몸에 새긴다. 영화는 시간상 중반부부터 시작해 흑백과 컬러 화면으로 나눠 하나는 시간순, 하나는 역순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나름의 질서는 있지만 익숙하지 않은 이야기 구조로 관객을 혼란스럽게 한다.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그 지점이다. 기억상실증의 혼란스러움과 기록의 맹신이 주는 어리석음을 이야기 구조로 표현한 것이다.

영화 '꿈의 제인'이 주는 혼란스러움, 꿈과 현실의 모호함은 의도적이다. 억지로 질서를 맞추려 할 필요가 없다. 개인마다 다른 감상이 나타나는 것이 감독의 의도이며 모호함을 즐길 수 있다면 이 영화는 더없이 감동적이다. 감독은 어떤 장면이 꿈이고 현실인도 구분하지 않았다. 은연중에 관객은 답을 내리지만, 관객과의 대화에서 감독은 “꿈은 현실의 반대라고 하잖아요”라는 애매한 발언으로 우리를 생각의 갈림길로 재차 내몰았다. 현실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악몽이 될 수 있고, 꿈이라 생각했던 것이 희망적 현실이 될 수도 있다. 감독은 “왜 이렇게 모호하고 불친절하게 만들었는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기승전결과 진짜 혹은 가짜라는 것에 너무 많은 의미부여를 하고 있지 않나"라고 말하며 이렇게 답했다.

"이 이야기는 ‘주인공이 무엇을 이겨내고 꿈꾸는가’에 대한 것이다"

▲ 사진 = 영화 '꿈의 제인'

사회에는 꿈을 이룬 사람들과 꿈을 꾸는 사람들이 뒤섞여 현실에 살고 있다. 명확하게 꿈과 현실의 중앙선을 긋는 것은 시냇물을 보고 바다로 흘러갈지 강에 머무를지 미리 아는 것과 같다. 어디로 가는지보다 중요핚 것은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꿈과 현실 중 어느 곳에 사는지 알 수 없는 제인은 인생은 원래 시시하다고 말한다. 제인은 “태어날 때부터 불행이 시작되고 그 불행이 끊기지 않고 이어지는 기분. 근데 행복은 아주 가끔 드문드문 있을까 말까”라고 삶을 정의한다. 그리고 "불행하게 오래오래 살자"고 말한다. 그렇다. 우리에게 주어진 도화지가 비록 흰색이 아니고 깨끗하지 않아도 우리는 그림을 그려야 하지 않는가. 제인은 이를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시시해지면 끝장이야”

 

▲ 사진 = 영화 '꿈의 제인'

이성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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