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열' 리뷰

[한스경제 양지원] 영화 ‘박열’(28일 개봉)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독립군영화와는 다르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대부분의 시대극들은 웃음기 없이 긴장감이 감돌고, 드라마틱한 요소들을 집어넣은 게 특징이다.

그런 점에서 맥락을 달리한다.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밝고, 유쾌하며 아나키스트 박열(이제훈)의 역시 일반적인 독립군 ‘영웅’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철저한 역사적 고증으로 이뤄진 이 영화는 경쾌한 분위기 속 절제의 미학을 추구한다.

‘박열’은 1920년대 일본에서 활동한 아나키스트이자 독립운동가 박열의 청춘을 다룬 작품이다. 이준익 감독은 의도적인 가벼움으로 영화를 풀어낸다. 인력거 기사로 ‘진상’ 일본 손님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돈을 받는 박열의 모습이 그렇다.

심지어 박열이 ‘조선청년’에 쓴 시 ‘개새끼’는 첫 문장이 ‘나는 개새끼로소이다’로 시작한다. 박열의 연인인 가네코 후미코(최희서)는 이 시를 읽고 박열에게 반해 동거를 제안한다. 같은 신념으로 뭉친 두 사람은 불령사의 일원이자 연인으로, 동지로 항일운동을 한다.

하지만 이들은 곧 일생일대의 사건과 마주하게 된다. 1932년 관동대지진 후 퍼진 괴소문으로 6,000여 명의 무고한 조선인들이 학살된다. 사건을 은폐하려 하는 일본 내각은 박열을 대역 사건의 배후로 지목한다. 일본 내각의 속셈을 알고 있는 박열은 황태자 폭탄 암살 계획을 계획했다며 자백하고 일본의 대법원에 서며 정면 돌파한다. 박열과 후미코는 투옥 중에도 결코 지치는 법이 없다. 일본 간수들을 들었다 놨다 하고, 절대 고개를 숙이지도 않는다. 당시 20대 초반의 나이에 불과한 박열과 후미코의 피끓는 청춘, 그리고 투쟁이 돋보인다.

희극적이고 밝은 분위기가 이어지는 ‘박열’은 자극적인 설정을 최소화했다. 잔인한 고문신, 총격신이 없다. 게다가 일본군을 딱히 ‘나쁜 놈’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일본 내각의 허술함과 천황제의 폐해를 조롱하기는 하나 선을 넘지 않는다. ‘반일영화’가 아님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심지어 박열과 후미코의 사건을 담당한 예심판사 다테마스(김준한)는 이들을 만나면서 내면적인 갈등을 겪고 변화하는 캐릭터다.

철저히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시각이 돋보이는 영화다. 그래서일까? 오락적인 재미는 부족하다. 단순히 재미를 추구하기 위해 ‘박열’을 본다면 실망할 수 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액션신이나 화려한 스케일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배우들의 연기는 훌륭하다. 데뷔 이래 파격적인 변신을 시도한 이제훈은 기존의 ‘착한’ 이미지를 과감히 벗어 던진 연기를 보여준다. 최희서 역시 유창한 일본어 실력과 깊이 있는 캐릭터 해석으로 영화의 몰입도를 높인다. 러닝타임 129분. 12세 관람가.

사진=메가박스(주)플러스엠 제공

양지원 기자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