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김서연] “점포가 축소돼도 인력 감축은 없다” vs. “점포가 축소되면 인력감축은 피할 수 없다”.

한국씨티은행 대규모 점포 통폐합 계획으로 노조 측과 사측의 기 싸움이 팽팽한 가운데, 노사의 날 선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박진회 한국씨티은행장이 “점포축소로 인한 인력감축은 없다”라고 여러 번 공언했지만 한국씨티은행 노동조합은 “인력감축은 필연적이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갈등 해결에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 박진회 한국씨티은행장. 사진=연합뉴스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 이용섭 부위원장은 최근 박 행장과 면담을 했으며, 이 자리에서 “점포축소로 인한 인력감축은 없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다고 20일 밝혔다.

이 부위원장에 따르면 지난 8일 일자리위원회를 찾아온 박 행장은 ▲지점 축소에 따른 인력감축은 없다는 것 ▲지점 축소로 생기는 여유 인력은 생산성이 낮은 곳에서 생산성이 높은 곳으로 보내서 일하도록 하겠다는 것 ▲노사문제에 대해 앞으로 노조와 협의해 결정하겠다는 것을 약속했다.

박 행장은 지난 15일 서울 중구 소재 더 플라자 호텔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도 “인력 구조조정은 없다”고 못을 박은 적이 있다. 지난 3월 126개 점포 중 101개 점포를 통·폐합 계획을 밝혔을 때부터 인력감축을 둘러싸고 불거져온 문제에 대해 꾸준히 ‘구조조정은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하는 중이다.

하지만 노조는 점포 통·폐합 과정에서 구조조정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씨티은행 노조 관계자는 “사측의 전략 자체가 완성되려면 인력감축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며 “사측이 밝힌 ‘점포 운영계획’은 지난 3월 27일 노조와의 협의 없이 사측이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이어 “이후 이루어진 협상들은 ‘25개 점포만 남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식의 변명으로만 일관하는 내용이었다”고 덧붙였다.

현재 씨티은행은 지점을 통·폐합하는 대신 디지털 기반의 비대면 거래를 강화한다는 ‘차세대 소비자금융 영업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남는 인력은 비대면 상담 채널인 고객가치센터, 고객가치(집중)센터로 재배치할 계획이다. 특히 기존 점포 인력 500여명은 유선을 통해 고객 상담과 영업에 나서야 하는 고객집중센터로 이동하게 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계획에 대해서도 노조는 의문을 품고 있다.

그는 “점포가 폐점되면서 생긴 잉여인력에게 파견직 근로자들이 하고 있는 업무를 실질적으로 주는 것”이라며 “폐점하고 영업점 생활 20~30년한 직원들을 콜센터로 배치를 해서 얼마나 비용절감 효과가 나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사측은 ‘점포폐점·축소’라는 말을 절대 쓰지 않고 ‘점포 운영계획’이라는 말을 쓴다”며 “이 계획은 ‘고객 이탈이 없을 것이다’ ‘고객은 비대면을 통해서 계속 거래를 하고자 할 것이다’라는 가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가정 자체가 잘못됐으니 플랜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노조에 따르면 사측과의 실질적인 협상은 현재 전혀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사측이 이 안건에 대해 노조측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사측은 항상 ‘점포 폐점은 은행의 고유한 경영권이기 때문에 노조와 협상할 대상(안건)이 안 된다’라고 얘기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조는 점포폐점으로 인해 근로자의 근로여건이 악화되고 고용불안정에 시달릴 수 있기 때문에 단순한 경영권만으로는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 브랜단 카니 한국씨티은행 소비자금융그룹 수석부행장. 사진=연합뉴스

일각에서는 ‘한국씨티은행이 폴란드·벨기에 씨티은행 수순을 밟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브랜단 카니(Brendan Carney) 씨티은행 소비자금융그룹장은 전임지인 폴란드에 있었을 때도 대대적으로 지점을 축소시킨 적이 있다. 카니 수석 부행장이 폴란드 씨티은행의 소비자금융 비즈니스 총괄을 맡았던 3년 간 점포 수는 부임 전이었던 2010년 154개에서 2014년 44개까지 대폭 줄었다. 이 과정에서 1,300여명에 이르는 직원들이 짐을 싸야했다.

카니 수석 부행장이 2010년 씨티은행 벨기에에서 소비자금융 비즈니스 책임자를 맡았을 당시, 씨티그룹은 씨티은행 벨기에의 지분 매각을 발표했다. 씨티그룹은 관련 지분을 포함해 벨기에 내 씨티은행의 모든 점포를 일괄 매각한 바 있다.

씨티은행 노조 관계자는 “이 같은 변화를 브랜단 카니 그룹장이 진두지휘했다”며 “지금 한국씨티은행의 사례도 같은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점이 축소되면 인력감축만이 문제가 아니라는 우려도 나왔다. 고객의 이탈 역시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그는 “요즘 타행들도 점포를 줄여나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집 앞, 회사 근처에 은행이 많은데 고객 이탈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실제로 고객 이탈이 지금도 진행 중이다”고 말했다.

노사의 대화의 장은 박 행장이 지난 15일부터 1박2일간 진행된 씨티은행 노조 분회장 노동교육 워크샵에 참석하면서 열렸다. 하지만 양측의 견해 차를 좁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0일에는 박 행장과 송병준 씨티은행 노조위원장 등 노사 양측이 고용청에서 면담을 가졌다. 노사는 지난달 15일 중앙노동위원회 조정이 결렬된 후 중단된 교섭을 21일부터 재개할 예정이다. 교섭에서는 점포 통폐합 문제가 주된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조는 크게 기대를 하지 않는 눈치다.

씨티은행 노조 관계자는 “(박 행장은 노조와 면담할 때) 말은 계속 고용안정을 강조하고 ‘인력감축은 없다’며 몇 번을 얘기해야 하냐고 말하지만 오죽하면 직원들이 믿지를 않냐”며 “직원들에게 신뢰를 전혀 주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런 노조의 말이 사실이라면 박 행장이 20일 일자리위원회 이용섭 부위원장을 찾아 약속한 세 가지는 일자리위원회에 거짓 보고하는 것이 된다. ‘눈 가리고 아웅’ 식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할 전망이다.

김서연 기자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