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호철 감독과 대표팀/사진=국제배구연맹

[한국스포츠경제 정재호] 2017 국제배구연맹(FIVB) 월드리그 국제 남자 배구 대회 2그룹 1주차 서울 경기를 앞두고 기자회견장에서 만난 김호철(62) 감독의 표정에는 시름이 깊었다. 내심 전패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는 “전력상 우리가 크게 뒤진다”며 “부상 선수들이 많아 원하는 대로 대표팀을 꾸릴 수 없었다. 현실적으로 한국에서 1승을 거두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다만 김 감독은 “안방에서 하는 경기인 만큼 나머지 선수들을 데리고 최선을 다해서 조직력으로 한번 최선을 다해보겠다. 새로운 선수들이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열정적으로 하고자 하는 의욕은 오히려 좋다. 팀을 조직적으로 운영해서 동양 특유의 배구를 해볼까 구상 중”이라고 출사표를 던졌다.

어렵게 선수들을 진천 선수촌으로 소집해 월드리그를 준비할 때만해도 2그룹 잔류를 낙관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김호철호는 역대 최약체라는 평가도 들었다. 그러나 뚜껑이 열리자 서울 대회에서 2승 1패(체코ㆍ핀란드 승, 슬로베니아 패)를 거뒀다. 이어진 일본 원정에서 1승 2패(터키 승, 일본ㆍ슬로베니아 패)로 주춤했지만 네덜란드에서 진행된 3주차 시리즈에서 다시 2승 1패(체코ㆍ슬로바키아 승ㆍ네덜란드 패)를 따내 9경기 전적 5승 4패의 호성적으로 대회를 마감했다. 한국이 월드리그 예선에서 5승 이상의 성적을 올린 것은 김세진(43ㆍOK저축은행 감독)ㆍ신진식(42ㆍ삼성화재 감독) 쌍포가 활약하던 1995년 이후 22년 만이다. 당초 목표였던 월드리그 2그룹 잔류를 넘어 12개 팀 가운데 승점 12로 6위에 올랐다.

원동력은 세 가지다. 김 감독의 말대로 대회 내내 조직적인 배구가 돋보였고 새로운 선수들에 대한 상대 팀의 대비가 부족했다. 여기에 김 감독의 지도력과 용병술이 더해졌다.

김 감독은 특정 주전 선수들을 정해놓지 않고 상대 팀과 상황에 맞춰 다양하게 선수들을 기용해 효과를 봤다. 파격적으로 세터를 3명(이민규ㆍ노재욱ㆍ황택의)이나 뽑아 적시적소에 잘 쓰기도 했다. 세계적인 명세터 출신인 김 감독은 “세터 3명은 한국 배구의 미래를 위한 포석”이라고 설명했다.

조직력에 기반한 탄탄한 수비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체코 주장인 알렉쉬 홀루베츠는 FIVB 홈페이지와 인터뷰에서 "우리는 정신적으로 이길 준비가 됐었지만 한국이 시작부터 굉장히 잘 했다. 그들의 수비는 ‘어메이징’했다"며 김호철호의 수비력을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뚜렷한 과제도 남겼다. 한일전에서 여실히 드러난 서브 대응력과 국가대표 차출에 대한 선수들의 사명감을 고취시키는 일이다.

이종경(55) 경기대 교수는 “정지석(22ㆍ대한항공)과 이강원(27ㆍKB손해보험)이 잘해줬다”고 수훈갑을 꼽으며 “세터가 안정이 돼 빠른 플레이를 했다. 상대 블로킹이 높더라도 리시브가 잘 되면 양 사이드로 빼주는 공격이 통했다. 국내 배구가 요즘 굉장히 빠른 스피드 배구를 구사하는 추세다. 거기에 대한 적응력이 국제 경기에서도 발휘됐다. 물론 김 감독도 잘했다. 적지적소에 선수들을 투입한 점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졌다”고 평했다.

이 교수는 “다만 이런 점은 있다. 생소한 선수들이 나와 상대가 우리를 잘 몰랐다. B그룹의 다른 나라들 역시 월드리그의 특성상 신인 선수들로 대거 교체돼 잔기술이라든지 테크닉이 떨어졌던 측면이 있었다”면서 악순환이 고질화 돼가는 대표팀 선수 차출 문제에 관해서는 “앞으로 대한배구협회가 힘을 길러 제재 규정을 확실히 시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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