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는 이정철 감독/사진=임민환 기자

[한국스포츠경제 정재호] 이정철(57) IBK기업은행 감독은 호랑이를 연상시키는 ‘맹장’이다. 혹독한 훈련으로 선수들을 조련시키고 때론 고함을 치며 선수들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이런 모습은 경기 중 코트 안이라고 예외는 없다. IBK기업은행이 2010년 창단한 뒤 최근 다섯 시즌 연속 프로배구 V리그 여자부 챔피언 결정전에 올라 3번이나 우승을 차지한 데는 이 감독의 빼어난 지도력이 큰 몫을 했다.

선수들 사이에서 무섭기로 소문난 그런 그도 요즘에는 인상이 조금 너그러워진 편이다. 20일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IBK기업은행 배구단 체육관에서 만난 이 감독은 “내가 뭐가 무서워”라며 “다만 조금 엄할 뿐이다. 잘못 안 했는데 내가 왜 엄하겠는가”라고 웃었다.

“옆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잘하고 있는데 엄할 이유가 있나. 요즘 아이들은 그 연령대의 문화가 있다. 그런 건 100% 다 이해한다”면서도 “배구는 공중에서 이뤄지는 공중전이기 때문에 다른 구기 종목보다 집중력과 팀워크가 더 필요하다. 그래서 항상 성실하고 정성을 들여서 하길 원한다. 쉬운 거부터 착실하게 해놓아야 나중에 힘이 덜 든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배구는 득점의 경기가 아니다. 실점의 경기다. 10게임 중에 7게임은 범실이 좌우한다. 박빙으로 가면 더욱 그렇다”고 덧붙였다. 이 감독의 말에서 그의 속 깊은 지도 철학이 묻어났다.

이 감독은 오프 시즌이라고 쉴 틈이 없다. 대표팀에 차출되고 남은 인원 8명을 데리고 훈련에 들어가 있다. 이날은 다음 달 열리는 국제배구연맹(FIVB) 월드 그랑프리 대회를 위해 7일부터 진천 선수촌에 모여 땀을 흘리고 있는 대표팀을 격려하기 위해 떠나려던 참이었다. 이 감독은 “우리 홍(성진) 감독이 잘하고 있나 보고 선수들도 보러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의 남다른 배구 사랑은 전력 보강의 마지막 퍼즐로 남은 다가올 가을 신인 드래프트 지명 계획에서도 읽을 수 있다. 이 감독은 “올해 졸업생들이 별로 좋지 않고 우리 지명 순서가 거의 꼴찌이겠지만 고등학교 지원 사업의 일부분이라고 여기고 최대한 선수를 충원할 생각이다. 어떨 때는 샐러리 캡(연봉 상한제) 때문에 한 라운드를 거쳐 간다든지 못 뽑는 경우가 있다. 샐러리 캡에 지장만 없다면 기량이 조금 떨어져도 무조건 뽑아줘서 프로 팀이 고교를 지원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이정철 감독/사진=한국배구연맹

디펜딩 챔피언으로 임하는 새 시즌은 아기자기한 배구를 해볼 방침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비시즌 동안 유난히 선수 이동이 많았다. 자유계약선수(FA) 김희진(26)은 붙잡았지만 베테랑 세터 김사니(36)가 은퇴했고 국가대표 공격수 박정아(24)는 한국도로공사와 FA계약을 맺었다. 그 보상 선수로 고예림(23)을 데려오는 한편 FA시장에서 센터 김수지(30)와 세터 염혜선(26)을 얻었다.

이 감독은 “변화와 이동이 유독 많았던 오프 시즌”이라며 “예전보다는 일단 공격 라인에서 확실한 백업 요원이 하나 생기는 것이다. 그 전에는 하나도 없었다. 누가 부진했을 때 대신 들어가서 뛸 수 있는 멤버가 채선아(25ㆍ리베로)뿐이었다. 하나 여유가 생겼고 센터에 김수지가 들어오면서 대각선 자리에 대한 활용 방안을 모색할 수 있게 됐다”고 구상했다.

지난 시즌 리그 득점 4위(742점) 및 공격 성공률 1위(44.29%)에 오른 효녀 외국인 선수 매디슨 리쉘(24ㆍ미국)와 재계약한 것도 전력에 큰 보탬이다. 비교적 작은 신장(184cm)의 핸디캡을 딛고 챔프전 4경기에서 139득점과 공격성공률 44%를 자랑하며 큰 경기에 더욱 강한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휴식 일마다 링거(수액)를 맞는 투혼 끝에 챔프전 최우수선수(MVP)에 올랐던 리쉘이 더욱 업그레이드돼 돌아올 전망이다.

당초 이 감독은 키(184cm)가 아쉽고 소위 ‘몰빵’ 배구가 안 된다는 등 리쉘의 부족한 부분을 언급하며 재계약하지 않을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이에 대해 “아예 정해놓은 건 아니었지만 그게 어떻게 보면 전략적인 부분”이었다고 뒤늦게 털어놓았다. 재계약을 하더라도 당연히 구단은 협상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 감독은 “한 시즌 치르고 잘 적응했다. 한국에서 배구가 늘어 아마 처음으로 메이저급인 월드 그랑프리 미국 대표팀 예비 명단에도 오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경험이 상당히 중요하다. 용병이 최대한 장점을 발휘하려면 서브 리시브도 하고 수비도 가담해야 한다. 리쉘은 그게 된다. 염혜선의 빠른 토스가 리쉘에게도 맞을 것”이라고 했다.

V4를 향한 최대 경쟁자로는 뜻밖에 지난 시즌 최하위였던 도로공사(11승 19패ㆍ승점 33)를 꼽았다. 이 감독은 “목표는 6개 구단이 다 우승일 것”이라면서 “객관적인 선수 구성상은 도로공사가 가장 유리하다. 그들은 올해가 기회다. 박정아가 들어갔고 이바나 네소비치(29ㆍ세르비아)를 뽑았다. 기존의 노련한 선수들과 어우러질 것”이라고 경계했다. 그러면서도 “멤버 가지고 우승 하는 게 아니다. 절대강자가 없으니까 가면 갈수록 재미있을 것 같다. 우리는 피로 누적이 숙제”라고 밝혔다.

용인=정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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