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즈를 취하고 있는 고예림/사진=임민환 기자

[한국스포츠경제 정재호] “나의 부모님은 나를 살아있게 하는 심장이다.”

고예림(23ㆍIBK기업은행)의 왼팔 안쪽에 새긴 문신에는 이런 글귀가 영어로 적혀 있다. 지난 시즌이 끝나고 큰 맘 먹고 한 문신의 내용처럼 그의 일상을 관통하는 행복 키워드의 첫째는 가족이다.

고예림은 한국스포츠경제가 지난 4월 닐슨코리아에 의뢰해 실시한 ‘배구와 행복’ 설문조사에서 ‘팬들을 가장 행복하게 한 선수’와 ‘외모가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선수’ 등 여자부 2개 부문 1위에 올랐다. 지난 주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IBK기업은행 배구단 체육관에서 만난 고예림은 “(1위)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조금씩 실감은 하는데 그걸 보고 인기가 많아졌구나 하고 느꼈다”며 미소를 지었다.

▲ 고예림 프로필

팬들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고예림은 언제 행복을 느낄까. 어린 시절 공부보다는 친구들과 뛰어 놀기를 좋아했다는 그가 배구하기를 참 잘 했다고 생각하는 때는 자신을 보면서 가족들이 뿌듯해하는 순간이다. 1남 1녀 중 막내인 고예림은 “아무래도 가족들이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할 때가 좋다”면서 “엄마나 아빠가 주위 분들과 어울려 딸 자랑한다고 할 때 행복감을 느낀다”고 웃었다. 이어 “평소 가족은 내 전부”라며 “항상 힘들 때마다 가장 많이 격려해주고 용기를 준다. 의지도 가장 많이 한다”고 말했다.

고예림은 2013-2014시즌 여자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2순위로 지명돼 당당히 프로 무대에 뛰어들었다. 그는 “진짜 처음으로 꿈을 이룬 기분이었다. 특히 아버지가 많이 좋아하셨다. 워낙 나를 많이 챙겨주는 아버지는 ‘딸 바보’다. 매일 경기를 와서 보는 등 항상 힘들게 뒷바라지를 해주셨다. 잘하고 있다고, 대견스럽다고 응원을 많이 해주신다”고 감사해 했다.

▲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는 고예림/사진=임민환 기자

몸이 약하고 말랐던 고예림이 배구를 하게 된 것도 학창 시절 야구 선수를 했던 아버지의 영향이었다. 고예림은 “배구부가 없는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4학년 말쯤 배구부가 있던 옆 학교에서 점심시간에 코치님이 와서 반에서 키 큰 애들 두 명 정도를 뽑을 때 이름이 적혔다”고 떠올렸다.

이어 “나중에 집에 가니 코치님이 와 있었고 부모님께 배구를 권유하고 계셨다. 같이 있던 이모는 어릴 적 육상을 했는데 너무 힘들었다며 반대했다. 내가 멍도 잘 들고 말라서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고등학교까지 야구 선수 생활을 했던 아버지의 생각은 달랐다. 몸이 약했던 딸이 운동을 하면 건강해질지도 모른다면서 한 번 해보라고 했던 것이 계기가 돼 5학년 때부터 배구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프로선수이기 때문에 가족과 매일 함께 할 수 없어 가끔 마주하는 소소한 일상이야말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으로 다가온다. 고예림은 “가족이랑 매일 붙어있는 게 아니니까 주말이나 한 번 집에 가 같이 집 밥을 먹으면서 어떻게 지내는지 이야기할 때가 행복한 것 같다. 프로에 오기 전에는 외할머니 댁이 있는 충남 대천 계곡으로 가족여행을 가 고기 구워먹고 놀았던 것도 특별한 추억”이라고 회상했다.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배구는 가족 다음으로 소중한 삶의 행복 요소다. 고예림은 경기장에서 가장 행복할 때를 묻는 질문에 “이기고 있거나 내가 득점할 때도 좋지만 무엇보다 코트 안에서 뛰는 자체가 좋다. 그 두근두근하는 긴장감이 즐겁다”고 눈빛을 반짝였다. 팬들이 환호해줄 때는 아드레날린이 치솟는 느낌이라는 그는 “팬들이 선물을 주신 건 많은데 하나하나 받을 때마다 행복하다. 팬들은 남성분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솔직히 다 기억에 남는다. 그 중 군대에서 거의 매일 편지를 보내주시는 분도 계신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 체육관 앞에 서 있는 고예림/사진=임민환 기자

하루 일과 중에서는 고된 훈련을 마친 뒤 씻고 침대에 누울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고예림은 “가족이 보는 앞에서 배구를 하는 지금은 항상 행복한데, 중ㆍ고등학교 시절 힘들었어도 애들이랑 추억을 많이 만들던 때 역시 기억에 남는다. 지금보다는 훨씬 힘들었는데도 어려서 그런지 스트레스도 별로 안 받고 단순하게 어울려 잘 지냈던 것 같다. 중학교 시절 죽도록 연습하고 치른 평가전에서 한 번 지고 그 다음 경기를 이겼을 때 애들끼리 부둥켜 안았던 환희는 아직도 내 생애 최고의 경기로 남아 있다”고 회상했다.

고예림은 더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배구를 더 잘해야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배구를 더 잘 해 인정받으면 더 행복하지 않을까. 물론 돈도 많이 벌고.(웃음) 배구가 그냥 행복한 것 같다. 매일 붙어 지내는 제일 친한 친구다. 할 때도 행복하고, 하고 나서 얘기할 때도 행복하다. 그것 때문에 행복을 가장 많이 느낄 수 있는 것 같다”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용인=정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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