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리는 불금, 그 시간 tvN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본방사수를 위해 TV앞에 앉아있다. 지식욕구가 놀고자 하는 욕망을 추월한다. 기현상이다. 4050 아재들이 이토록 매력적일 거라고 누가 예상했던가. 인문학과 예능이라는 언뜻 보기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이 어떻게 그려질까 호기심을 갖고 보기 시작했던 게 이제 꽤 중독성을 발휘하고 있다.

슬픈 이야기지만 보통 동네 아저씨로 상징되는 4050 아재들에게 매력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들의 삶의 경험은 때로 듣기 싫은 잔소리가 되어 꼰대문화를 주도하고 있는 세대이고 여기에 지루하고 재미없을 것 같은 인문학, 그리고 웃겨야만 하는 예능, 이 삼박자는 누가 봐도 제대로 된 앙상블을 이루기가 어렵다. 하지만 이는 고정관념에 불과했다. 프로그램 시작부터 ‘알쓸신잡’은 허를 찔렀다. 빵빵 터지는 빅 웃음이 없는데도 큰 재미가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잡학박사 4인의 이야기에 집중과 몰입을 반복한다. 그들이 뿜어내는 지식의 향연에는 경계가 없다. 문학, 사회, 예술, 정치, 경제 등 모든 분야를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방송은 이미 제목부터 ‘알아두면 쓸데없는’ 이라고 시청자들을 무장해제 시킨다. 교육을 통해 지식축적을 강요하지 않는다. 머릿속을 비워두고 귀동냥하듯 흘려 들어도 된다. 그런데 이거 참, 귀 호강 눈 호강하는 느낌이다. 연결 될 것 같지 않은 이야기들이 연결되면서 발휘되는 집중력에 이들이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방송이 다 끝나도록 잊히지가 않는다.

학창시절 선택의 여지없이 모두가 동일하게 떠났던 경주로의 수학여행 이야기부터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까지 과거 추억 소환에서 시작된 대화는 사회문제로까지 확대되면서 이슈를 만든다. 이들에게 추억은 아름답다는 뻔한 이미지로 귀결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여기에도 명확한 근거를 들어 의견을 달리 한다. 하지만 논쟁은 없다. 서로의 견해가 다를 뿐, 마음을 열어 경청하고 질문하고 또 답한다. 이들이 보여주는 소통하는 수다는 그래서 유쾌하다.

불가능하겠지만 학창 시절 ‘알쓸신잡’식의 수업방식으로 공부했다면 어땠을까 싶다. 시험 볼 때까지 잊어버릴까 두려워 달달 외웠던 교과서 내용들, 그 지식들은 대체 어디로 간 걸까? 시험 끝남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증발해버린 ‘알아둬도 쓸데없는’ 얕은 지식들에는 흥미도 재미도, 소통도 존재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시험을 위한 지식 그 이상일 수 없었으니.

‘인문학은 죽었다’는 사망신고가 꽤 오래 전에 내려졌다. 지식의 상아탑이라고 하는 대학에서조차 인문학 관련 학과들은 서서히 축소 또는 폐지 방침을 세우고 있다. 취업에 불필요하다는 게 그 이유다.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하지만 단 4회 방송된 ‘알쓸신잡’을 보고 여전히 인문학은 살아있음을 느낀다. 시청자들의 잠재의식 속에 꿈틀거리는 지식 욕구는 여전히 그것을 필요로 한다. 이제 ‘알아두면 쓸데 있는’이 되어버렸다. 뇌섹남 아재들의 수다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시청자들에게 지식욕구충전소가 되고 있는 ‘알쓸신잡’. 더 나아가 뇌섹남 아재들의 수다가 죽어가고 있는 인문학에 인공호흡기가 되어주길 바래본다.

사진=CJ E&M 제공

●권상희는 동덕여대 방송연예과와 국민대 대학원 영화방송학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2002년부터 영화 드라마 연극 뮤지컬 방송진행 등 다양한 미디어를 경험했고, 고구려대학 공연예술복지학부 외래교수를 역임한 뒤 문화평론가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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