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 서포터즈들/사진=연합뉴스

[한국스포츠경제 정재호] 국내 프로축구에 이른바 ‘서포터즈 문화’가 생긴 건 1990년대 중반 개인컴퓨터(PC) 통신이 활성화하면서부터라는 것이 정설이다. 유럽식의 축구 문화가 적극 소개된 영향으로 유공축구단(현 제주 유나이티드)을 지지하는 서포터즈 헤르메스가 1995년 최초 탄생했다.

이후 1998 프랑스 월드컵을 거치면서 이들이 붉은 악마의 시초가 됐다. 붉은 악마는 국가대표 서포터즈를 자청하면서 프로축구에도 본격적인 서포터즈 문화를 번성시켰다.

팬이 없는 프로 스포츠는 없다. 그런 측면에서 성장하는 열성 서포터즈 문화는 바람직한 현상이다. K리그에 서포터즈 문화가 정착한 뒤 해를 거듭할수록 이들의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참여 의식이 강한 팬들이 연합체를 구성해 성적 부진부터 구단 안팎의 문제까지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며 축구계의 한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평가다.

그러나 유럽의 경우처럼 부작용도 뒤따른다. 지난해 7월 초 울산 현대와 수원 삼성의 경기가 열린 울산문수구장에서는 수원 서포터즈가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구단 버스를 가로막았고 결국 서정원(47ㆍ수원 삼성) 감독이 직접 내려 사과하고 나서야 사태가 일단락됐다.

앞서 그 해 5월 말에는 인천축구전용구장에서 벌어진 인천 유나이티드와 광주FC의 경기에서도 인천 팬들이 선수단 버스를 막아 당시 김도훈(47ㆍ울산 현대) 감독과 면담한 후에 돌아갔다.

급기야 올해 4월에는 서포터즈들의 불미스러운 행위가 국가대표를 지낸 베테랑 수비수 이정수(37)를 은퇴시키는 사태를 빚기도 했다. K리그 6라운드 광주와 홈 경기(0-0 무승부)를 치른 뒤 이정수는 경기에 출전하지 않았음에도 선수단을 이끌고 팬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나섰다.

관중석에서 야유가 나왔고 부진한 성적에 불만을 품은 일부 극성 팬들이 선수들을 향해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부었다. 심지어 맥주 캔을 투척하거나 손가락 욕설을 날린 이들도 있었다. 이정수는 이 사건에 큰 충격을 받았고 이미 고심하고 있던 은퇴시기를 앞당겼다.

대다수의 축구인들은 서포터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도가 지나쳤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현장에서 만난 일반 팬들도 “이건 아니다”며 과격 행동을 보이는 이들에게 반감을 드러냈다.

2002년 안양 LG에서 프로 데뷔한 이정수는 인천을 거쳐 2006년 수원 유니폼을 입었다. 2007년 부주장을 맡아 리더십을 발휘했고 이후 해외로 나가 일본ㆍ카타르를 거쳐 지난해 8년 만에 수원으로 돌아와 FA컵 우승에 이바지했다. 수원으로 복귀할 때 연봉 삭감과 함께 마흔 살까지 공을 차고 싶다는 뜻을 품은 이정수로선 급작스럽게 정든 유니폼을 벗어야 했다.

이정수 논란은 선수에게 직접 물리적인 해를 가할 수 있던 사건이라는 점에서 경각심을 더했다. 그 동안 비난보다 무서운 건 무관심이라는 인식 때문에 일부 부적절한 행위에 관대했던 면이 있다. 이제는 서포터즈부터가 자성할 시점이다. 너무 성적에 얽매이지 말고 축구 자체를 즐기며 참고 기다려줄 줄도 아는 자세가 요구된다는 지적이다. 그래도 도를 넘은 행동에 대해선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근 유럽에서는 선수단 버스를 가로막은 서포터즈들에게 엄벌을 내린 사례가 있다. 지난해 5월 웨스트햄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 버스를 공격한 서포터즈에게 영구적 입장 금지 처분을 내렸다. 당시 감정이 격해진 팬들은 유리병을 던지며 맨유 버스를 파손하기도 했다.

김대길(51) KBS N 축구 해설위원은 “원칙적으로 구장에서는 폭력 행위가 일어나선 안 된다”며 “유럽에서는 간혹 그런 불상사가 빚어지는데 바람직하지 않다. 팬들은 선수와 홈팀을 응원하지만 패배했다고 무조건 비난하고 어찌 보면 선수 생명을 완전히 끊어놓는 행위들은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원론적인 얘기지만 해서는 안 되는 행동들이 있다. 열렬하게 응원하는 건 좋지만 인터넷상에서 선수들에게 선수생활을 하기 어려운 비난을 해버린다거나 하는 건 사실 언어폭력이다. 그런 것들이 있어선 안 되겠다”고 덧붙였다.

보완책에 대해선 “각 구단 차원에서 올바른 응원 문화 정책을 잘 펴나가야 된다. 사실 팬들이 없이는 K리그 자체의 동력이 사라지는 거니까 일장일단이 있다. 구단 입장에서는 팬이 많아지면 좋기도 하겠지만 그 안에는 다양한 욕구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런 것들을 잘 아울러야 한다. 구단들이 계속 홍보해 나가면서 어떻게 응원 문화를 만들어가자는 식의 노력이 지속돼야 할 문제”라고 제안했다.

정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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