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김지호]금융당국이 투자자보호를 지나치게 우선시하면서 금융투자업계와 자본시장의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심지어 적자지만 고성장 기대 기업이 코스닥 시장에 상장할 수 있도록 ‘파격적’으로 허용했다는 상장특례제도 ‘테슬라 요건’조차 지나친 투자자보호로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투자의 기본원칙인 ‘하이리스크 하이리턴(고위험 고수익)’이 지켜질 수 있도록 투자자 보호와의 접점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1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초 도입된 테슬라 요건에 따라 코스닥시장 상장 신청을 한 기업은 단 한곳도 없다. 

거래소에 테슬라 요건 신청을 위한 태핑(접촉) 기업도 전무한 상태다. 사실상 있으나마나한 제도가 된 것이다. 심사 등 상장절차가 3개월 이상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올해 안에 테슬롸 요건을 통한 코스닥 상장사가 나오기는 힘들어졌다.

문호가 이전보다 더 넓어졌음에도 상장 기업이 아직까지 없는 것은 무엇보다 투자자보호를 위해 3개월 내 주가가 공모가의 10% 이상 떨어지면 상장주관사가 공모가의 90% 가격으로 물량을 떠안도록 한 풋백옵션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금융당국은 공모가 고가산정이 우려된다며 금융투자협회 ‘증권 인수업무 등에 관한 규정’에 이 같은 조항을 넣었다.

아무리 주관사가 상장 기업의 성공에 확신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주가가 3개월 동안 공모가의 10% 이상 떨어지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 기술력이나 성장성이 아무리 높다하더라도 적자가 나고 있는 기업의 주가는 더욱 그렇다. 이에 따라 주관사는 공모가를 최대한 낮추려고 하고 상장사는 높은 공모가로 많은 자금을 조달하려는 이해관계가 상충된다.

공도현 거래소 기술기업상장부장은 “제도가 유명무실하다고 제도를 위해 투자자보호를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 같은 조항이 기술력이나 성장성이 뛰어나지만 자금은 부족한 기업의 코스닥 상장을 방해하고 새로운 우량 기술기업의 탄생을 방해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한 정보기술(IT) 비상장사 고위 임원은 “네이버가 세 번이나 도전했지만 코스닥 상장으로 지금과 같은 거대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라며 “풋백옵션 도입으로 가뜩이나 작은 상장주관 수수료를 먹는 주관사들이 모험을 걸 이유가 사라져버렸다”고 강조했다.

조광재 NH투자증권 ECM 본부장은 “현재 기술특례상장제도를 활용하면 적자기업도 얼마든지 상장할 수 있는데, 굳이 풋백옵션 부담을 질 이유가 있겠냐”며 “국내 기업 중 미국 테슬라와 같이 성장성이 예상되는 기업도 그렇게 많지 않은데 주관사가 지분을 떠맡을 만큼 확신을 가지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조 본부장은 “테슬라 요건은 풋백옵션 도입으로 상장하려는 기업과 주관사가 공모가를 두고 갈등을 벌일 여지도 커져 있다”고 덧붙였다.

애초 테슬라 요건 도입 전 위와 같은 풋백옵션 부작용이 예고됐으나 금융당국과 거래소는 이를 그대로 밀어붙였고 결과는 시장의 외면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풋백옵션을 폐기하거나 주관사가 되사들이는 가격을 공모가 90%선보다 더 낮춰 투자자보호와의 접점을 찾을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최근 그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투자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등 가상화폐 역시 관련 펀드 출시의 기대감도 있었지만 시도조차 전무하다. 최근 비트코인 거래소가 해킹 당하는 등 아직 투자 대상으로는 불안정하긴 하지만, 금융당국이 경직된 사고로 금융투자상품을 다루면서 지레짐작으로 관련 상품을 출시할 엄두도 못내고 있다는 것이다.

김경영 금융감독원 사모펀드팀장은 “현재 비트코인 출시를 위해 금감원과 상의하거나 출시를 준비하고 있는 운용사는 단 한곳도 없다”고 잘라말했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가상화폐 관련 기업이 몇 개 없는데다, 과연 확실한 투자대상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 여전한 것이 관련 펀드가 안 나오는 가장 큰 이유”라면서도 “금융당국이 허가를 내줄리 없다는 인식도 운용사가 출시를 아예 포기하는 또 다른 원인”이라고 전했다.

김지호 기자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