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김서연] “지난 4월부터 IRP 가입 상담 신청서를 고객에게 받았어요. 매월 자동이체 금액을 얼마나 할건지, 가입 예정 날짜는 언제가 될지까지 받아두라는 지시가 있었는데 이 사전마케팅 상담건수가 하반기 평가에 반영된다고 하니 열심히 할 수밖에요.” (A은행 직원)

오는 26일부터 자영업자와 공무원 등도 개인형 퇴직연금(IRP·Individual Retirement Pension)에 가입할 수 있게 되면서 시중은행들의 고객 확보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특히 이 사전영업 과정에서 세제혜택만 강조되고 고객에게 수수료 등에 대한 설명은 제대로 하지 않는 등 벌써부터 불완전판매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고객 확보 경쟁이 치열해 불완전판매가 성행했던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의 전철을 밟게 될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IRP는 가입자가 자기 부담으로 노후소득을 적립해 연금화할 수 있는 퇴직연금제도의 한 종류다. 이 부담금은 연간 최대 700만원의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하는 노후생활자금 저축 계좌에 들어가게 된다. 근로자가 여러 차례 직장을 옮기더라도 퇴직급여를 하나의 개인형퇴직연금으로 받아 연금으로 받을 수 있다.

오는 26일부터 자영업자와 공무원 등도 개인형 퇴직연금(IRP·Individual Retirement Pension)에 가입할 수 있게 된다. 사진=고용노동부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IRP 가입대상 확대에 앞서 국내 주요 은행들은 사전 마케팅 프로모션을 시행하고 사전영업을 하는 등 IRP 시장 선점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 4월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되면서 IRP 가입자 대상이 자영업자, 근속기간 1년 미만 또는 단시간 근로자, 퇴직일시금을 받는 재직 근로자, 공무원, 군인 등으로도 확대된다. 사실상 모든 취업자가 개인형퇴직연금에 가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약 730만명이 IRP 가입 대상자가 되면서 은행들은 일찌감치 영업 직원들을 대상으로 관련 교육을 실시하고 우수 영업점의 사례를 공유하는 등 발 빠르게 대응해왔다.

이렇다보니 이 과정에서 직원들에게 ‘할당량’이 주어지고 일부 영업점에서는 사전 영업을 진행하면서 IRP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잠재고객을 받고 있어 불완전판매 우려가 제기됐다.

A은행의 내부 문서에 따르면 직원 1인당 30명씩 IRP 가망고객을 확보하라는 지시와 함께 영업점을 찾은 공무원 고객을 중심으로 IRP 가입 안내장을 배부하며 연말정산 세액공제 혜택을 집중 홍보하라는 꽤나 구체적인 지시사항이 내려졌다.

사전마케팅 고객에게 IRP 가입 상담 신청서를 받고 가입을 권유한 사례도 나왔다. 매월 자동이체 금액을 얼마를 할건지, 가입 예정 날짜는 언제가 될지까지 받아두고 있었다. 하반기 직원평가 방향을 유치좌수로 잡고 IRP 사전마케팅에 가중치를 부여하는 항목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영업점에서 고객들에게 제공하고 있는 IRP 가입 안내서에 세제혜택만을 강조한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현행 소득세법에 따르면 퇴직연금 본인 추가납입액에 대해 연간 최대 700만원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지만, IRP 가입 이후 발생하는 수수료나 중도해지 시 고객이 받을 수 있는 불이익은 명시되어 있지 않거나 명시돼도 눈에 띄지 않게 적혀있는 수준이다.

18일 은행연합회 퇴직연금 적립금(수익률) 비교 공시에 따르면 국내 6대 은행(신한·국민·우리·KEB하나·농협·기업)의 지난해 기준 평균 IRP 수익률은 은행 예금금리에도 못 미치는 평균 1.2~1.4%로 나타났다. 이런 내용은 자세히 안내되지 않고 세액공제만 집중 홍보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IRP는 보통 가입기간이 10~15년으로 장기거래고객화 하는데 도움이 되고 잠재고객이 700만명을 넘는 만큼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며 “빠른 곳은 4월부터 사전 마케팅에 들어갔는데 ISA 때처럼 금융당국의 제재를 심하게 받을까봐 은행들이 몸을 사리다가도 26일이 가까워지면서 기지개를 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한 은행의 경우에는 ISA 출시 당시 타행 영업점 현장감사 시 적발사례를 공부하며 과당경쟁으로 낙인찍히지 않도록 임직원을 대상으로 교육까지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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