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김재웅] 승승장구하던 메르세데스-벤츠에 급제동이 걸렸다. 배출가스 조작사건에 휘말린 것이다. 독일 자동차사들의 담합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벤츠는 도덕적으로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전망이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벤츠는 최근 독일과 한국 등 국가에서 일부 모델에 대한 자발적 리콜을 발표했다.

리콜 대상은 OM642와 OM651 디젤엔진을 탑재한 차량으로, S350d와 구형 E220d 등 인기 모델이 다수 포함됐다. 독일에서만 약 300만대, 국내에서는 11만대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작년에 출시된 벤츠 GLE350d가 바로 OM642엔진을 장착한 모델이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제공

벤츠가 이같은 대규모의 리콜을 결정한 이유는, 독일에서 배출가스 조작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벤츠는 독일에서 현지 검찰에 배출가스 조작 소프트웨어를 장착한 차량을 판매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만약 배출가스를 조작한 것으로 확인된다면, 벤츠는 막대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문제 차량에 대한 인증 취소는 물론이고, 최대 500억원의 과징금까지 물어야 한다. 판매량 최고기록을 경신하며 내수 수입차 역사를 새로 쓰던 신화도 물거품이 된다.

벤츠는 강력하게 부정하고 나섰다. 배출가스 조작을 한 사실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리콜 역시 결함을 시정하기 위해서가 아닌, 배출가스 조작 논란으로 혼란스러울 고객을 위해 실 주행시 배출가스를 줄이는 내용일 뿐이라고 벤츠는 설명했다.

실제로 국내에서는 벤츠가 배출가스를 조작한 차량을 판매했을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 환경부가 지난 디젤게이트 직후 모든 수입차에 대해 배출가스 조작 여부를 조사한 결과 정상임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환경부는 올 초 유럽에서 르노와 피아트크라이슬러 등에 대한 배출가스 조작 의혹이 나왔을 당시에도, 국내에 들어온 차종에서는 조작 사실이 없음을 분명히 확인했다고 밝힌바 있다.

따라서 환경부가 이제와 벤츠의 배출가스 조작 사실을 확인한다면, 당시 주장을 번복하는 것이다. 스스로 배출가스 조작 검증 능력이 없음을 자인하는 셈이다. 당시 배출가스 조작을 확인했다며 인증을 취소했던 닛산 캐시카이에 대해서도 재검증이 필요하다. 신차 인증을 미루며 정밀 조사를 이유로 들었던 것 역시 비판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벤츠가 국내 출시 차량에 대해서만 배출가스 조작 기능을 뺐을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도 벤츠가 내수 시장에서 입을 피해는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디젤게이트로 전 세계에서 판매량이 급감했던 폭스바겐도, 가솔린 차량이 중심이었던 중국에서만큼은 성장을 멈추지 않았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벤츠의 배출가스 조작 의혹이 독일차 브랜드의 담합 의혹으로 번지는 것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우려를 내보인다.

지난 21일 (현지시간) 독일 언론인 슈피겔은 벤츠가 소속된 자동차 그룹인 다임러와 폭스바겐그룹, BMW그룹 등이 1990년대 중반부터 기술 개발 전략, 부품 규격, 가격 등에 대해 담합해왔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슈피겔은 폭스바겐이 독일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출한 자백서에 이 같은 내용이 담겨있었다고 밝혔다.

슈피겔 보도에 따르면 독일 3사는 자동차 개발뿐 아니라 엔진, 브레이크, 변속기 등 거의 모든 부분에 대해 합의를 거쳤다. 200명 이상의 직원과 실무그룹 60개가 나선 대규모 독점 시도다.

특히 이 과정에서 3사가 배출가스 저감을 위한 소형 탱크를 너무 작은 크기로 합의한 것은, 배출가스 조작 사건의 씨앗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배출가스를 충분히 줄일 수 없었던 탓에 조작을 감행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일단 해당 업체들은 반박할 가치도 없다며 부정하고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독일과 EU에서는 이런 반독점 행위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실제로 독일 3사의 담합 증거도 속속 나오고 있다. 슈피겔이 발견했던 폭스바겐의 문건에 앞서, 다임러도 담합 사실을 자백한 정황을 독일 NDR,WDR 방송과 일간지 쥐트도이체차이퉁 등 매체들이 확인한 것이다.

24일(현지시간) 이들 매체가 꾸린 공동 탐사보도팀은 다임러가 폭스바겐에 앞서 이 같은 내용을 정부에 실토했다고 보도했다. 폭스바겐이 자백서를 낸 2015년 7월 이전이다. 막대한 과징금을 면제받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만약 반독점 행위가 최종 확인된다면 독일 3사는 연 매출액의 최대 10%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받게 된다. 2016년 매출을 기준으로 하면 약500억유로(약 65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 패러다임이 전기차로 급변하는 상황. 독일 자동차가 자칫 글로벌 시장 주도권을 뺏길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도덕성에 타격을 입는다고 자동차 판매량이 크게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하지만 시장의 패러다임이 전기차로 바뀌는 상황에서, 회사의 힘을 법적 문제 해결에 낭비하고 이미지 타격까지 받는다면 실제로 입는 피해는 훨씬 클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재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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