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벌려고 예술 하는 거 아니잖아.” , “연극해서 돈 벌 생각을 하는 게 말이 돼.”

꼰대 같은 얘기지만 처음 배우라는 직업을 가졌을 때 선배들로부터 자주 들었던 말이었다. 술자리에서 자조적인 위안을 안주 삼아 때론 이런 말들이 푸념으로, 때론 예술에 대한 자긍심으로 해석되기도 했던 그 시절 출연료 언급은 감히 꺼낼 수도 없었다. 열정에 위배되는 행동으로 치부되기 십상이었으니까.

교통비도 채 안 되는 페이를 받았을 때도, 두 달여를 땀 흘리며 연습한 후 공연 직전 제작자가 사라져 무대에 서보지도 못한 뮤지컬 공연에도 하소연할 창구가 존재하지 않았던 때였다. 연극과 뮤지컬을 오가던 그 때, 불합리한 체계와 가난은 떼어내고 싶은 친구 같았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무대를 떠나 관찰자의 입장이 되어서도 변한 것이 없다. 제작비는 갈수록 증가하는데 화려하고 큰 무대는 배우와 스텝들의 임금체불 소식으로 얼룩져 있다(물론 출연료를 선지급 받는 스타는 예외다). 2014년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를 비롯, 악극 ‘불효자는 웁니다’, 창작뮤지컬 ‘레미제라블’, ‘넌센스2’, 그리고 얼마 전 두 차례 공연 취소 소동이 있었던 뮤지컬 ‘햄릿’ 등 모두가 임금체불로 극심한 내홍을 겪었거나 겪고 있다.

무대를 기다리는 관객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연 취소 결정을 내리기까지 그 시간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잘 안다. 일단 무대에 서야 하는 배우의 입장에서 관객과의 약속은 지켜야만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임금 지급을 차일피일 미루는 제작자는 이‘관객과의 약속’을 악용한다. 계약서에 작성한 약속은 나 몰라라 하면서 말이다. 관객에게는 이루 말 할 수 없이 미안한 일이지만 ‘공연취소’는 이에 대항하는 배우와 제작진의 극약처방일 수밖에 없다. 일을 하고 대가를 지불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 당연함이 여전히 열정이란 그럴싸한 이름으로 참아주기를 바라는 구시대적 행태가 존재하는 곳이 안타깝게도 무대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공연을 사랑하는 관객에게로 확대되고 이는 공연계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일이거늘.

뮤지컬 ‘햄릿’. 사진=더길 제공

화려한 무대에서 내려와 땀에 대한 대가를 전쟁 치루 듯 요구해야 하는 현실에 많은 공연 예술인들은 억장이 무너진다. 그런데 임금체불과 관련된 제작자를 노동청에 고소한다고 해도 공연하는 사람은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해줄 수 있는 조치가 없다고 한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법률지원을 받아 개별적으로 소송을 취하기도 하는데 승소한다고 해도 제작자가 줄 돈이 없다며 지급을 미루는 경우도 상당수에 이른다고 하니 이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이 절실히 필요하다.

스타 캐스팅을 앞세워 프리프로덕션 비용(공연 초기에 해당하는 비용)만으로 돌려막기 하듯 공연을 제작하는 썩은 관행은 이제 도려내야 한다. 그리고 상습적인 임금체불 전력이 있는 제작자는 그에 합당한 패널티를 주어야만 한다. 왜 변함없이 계속되는 문제에도 공연계는 적극적으로 해결할 의지를 보이지 않는가. 무대는 빛나고 배우와 스태프는 남루한 현실, 이제라도 그곳에 만연한 거품을 직시해야 할 때다.

얼마 전 대학로에서 보았던 연극 ‘굿모닝 시어터’의 대사가 아프게 와 닿는다. “송강호, 최민식, 오달수는 멋있지만 연극배우로 살지는 말래요”.

●권상희는 동덕여대 방송연예과와 국민대 대학원 영화방송학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2002년부터 영화 드라마 연극 뮤지컬 방송진행 등 다양한 미디어를 경험했고, 고구려대학 공연예술복지학부 외래교수를 역임한 뒤 문화평론가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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