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점 투쟁이 본격적으로 가속화 되고 있다.

유통 대기업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당위성을 앞세우고 사활을 건 쟁탈전에 들어갔다.

7월 15년 만에 서울시내에 면세점이 추가 허용되고 정부는 서울시내 3곳 신규 면세점 중 2곳은 대기업에, 1곳은 중소기업 몫으로 정했다. 관세청은 6월1일까지 신청을 받아 7월 중 사업자를 선정한다. 유통 대기업들은 면세점을 통해 불황을 탈출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대기업들은 대놓고 한판 승부를 펼칠 기세다.

10여일 전만해도 물 밑 작업을 하던 유통 공룡들이 이제 발톱을 드러냈다. 업계의 분위기가 갑자기 달라진 이유는 호텔신라-현대아이파크 때문이다. 최근 호텔신라와 현대아이파크는 공동 출자한 'HDC신라면세점㈜'을 설립하고 용산 아이파크몰을 사업지로 선정했다. 여기에 조용한 움직임을 보이던 롯데가 발끈 했다. 입찰을 준비하던 신세계·현대백화점은 불시에 카운터펀치를 맞았다. 말을 아끼고 있지만 갤러리아도 표정은 굳어있다.

▲한자리는 'HDC신라면세점㈜'이 가져갔다.

업계에서는 호텔신라와 아이파크는 공동 출자한 'HDC신라면세점㈜'에 이미 대기업 쿼터 2장 중 한 장은 넘어갔다고 판단하고 있다. 아이파크몰의 4개 층에 국내 최대 규모 면세점을 열고 호텔신라의 노하우가 접목되면 입지와 기술적인 부분에서 충분히 앞서나갈 수 있다는 전망이다. 게다가 총알(현금)도 충분하다. 무엇보다 변수가 될 정치적인 판단에서도 유리하다. 서울시내에서 상대적으로 발전이 저조했던 용산구에 아이파크몰이 위치하기 때문이다.

현대아이파크는 경쟁력 있는 장소는 보유했으나 면세점은 처음이라 노하우가 없었다. 호텔신라는 롯데백화점과 함께 면세점 업계에서 과점을 형성하고 있어 추가 매장 확보가 어려운 입장이었다. 양사 모두 'HDC신라면세점㈜'이라는 새로운 회사를 통해 돌파구를 찾았다는 평가다.

업게 관계자 A는 "우리 입장에서는 꼼수고 반칙이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이런 발상을 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 역시 이건희 회장을 가장 닮았다는 이부진 사장답다"고 혀를 내둘렀다.

▲롯데 너는 안 돼!

면세점 두 곳 중 한자리가 'HDC신라면세점㈜'에게 넘어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면서 결국 나머지 한자리를 놓고 4~5개 사가 끝없는 투쟁을 하게 됐다.

롯데백화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롯데는 면세점 업계의 최대 공룡이다. 가장 많은 면세점을 보유했다. 서울에만 3곳의 면세점을 운영하고 있다. 면세점의 갑이다. 독점 논란 때문에 이전까지는 조용히 눈치만 봤다. 하지만 호텔신라의 움직임에 고무됐다. 이 참에 한 곳을 더 차지해 서울에서 4곳을 운영하고야 말겠다는 야심을 드러냈다. 롯데측은 "6월 서울 시내 면세점 쟁탈전에서 떨어진 대형 유통업체들이 올해 12월 있을 2개의 서울 면세점 사업권에 나설 것이 분명하다. 소공동점과 잠실점 수성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며 쟁탈전에 나서는 당위성을 설명했다. 하지만 경쟁 상대들은 한 목소리로 말한다. "독점 만은 막아야 한다"

▲현대, 아이파크에 치명타 맞아

현대아이파크와 호텔신라의 어깨동무에 가장 황당한 것은 현대백화점이다. 현대백화점은 현대아이파크가 면세점 업에 뛰어드는 것 자체를 거추장스러워 했다. '양보해라' 하는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현대아이파크가 상의도 없이 호텔신라와 동거를 시작했다. 현대백화점 입장에서는 황당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현대아이파크는 '범현대가'의 구성원이다. 고민은 여기서 시작된다. 현대백화점이 아무리 선을 그어도 현대아이파크와의 관계를 무시할 수 없다. 현대백화점의 적들 역시 이점을 파고들고 있다. "범현대에 면세점을 두 개를 줘선 안 된다." 이미 현대백화점의 적들은 홍보전에 들어갔다.

▲신세계와 호텔신라는 남남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다. 호텔신라가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공정 경쟁도 어렵게 만들어놨기 때문이다. 신세계의 고민은 현대백화점과 닮았다. 신세계 역시 '범삼성가'다. 야심 차게 면세점 사업을 기획했지만 명함도 내밀지 못할 신세가 된 것이다. 신세계 입장에서는 사면초가에 빠진 격이다. 현대백화점보다 상황이 더 나쁘기 때문이다. 신세계의 적들은 벌써 입방아를 찢기 시작했다. "이미 면세점을 가지고 있는 범삼성가에 두 개를 더 밀어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갤러리아 존재감 ‘0’

갤러리아 백화점은 경쟁사인 신세계·현대·롯데백화점에 비해 이렇다 할 움직임은 없다. 한마디로 존재감이 '0'이다. 아직 부지도 선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면세점을 했을 때 충분히 잘할 수 있는 노하우를 갖추고 있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갤러리아가 조용한 것이 더욱더 신경 쓰인다. 현대아이파크처럼 대형 사고를 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갤러리아가 백조처럼 수면 밑에서 활발히 움직이고 있을 것이란 의심도 있다. 실제 한화그룹은 서울시내 요지, 특히 부심지역에 쓸 만한 부동산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통공룡들의 면세점 경쟁은 7월까지 더욱더 치열하게 진행될 전망이다.

 

채준 기자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