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김재현] #[상담]. 저는 규모가 적지만 안정된 회사를 경영하고 있습니다. 일전에 주거래처인 모 대기업에서 급한 주문이 들어와 이에 대응하기 위해 인근에 있는 금융회사에 100만엔을 이틀간 빌리기 위해 대출을 신청했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대출을 거절당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사업 자금이나 생활 자금을 대출 받아 한 번도 상환을 지체한 적이 없습니다.

[답변]. 금융회사는 귀하의 신용 여력을 판단해 거절한 것이 아니라 이용기간이 너무 단기간이다 보니 전혀 이익이 나지 않기 때문에 대출을 거절한 것입니다. 해당 대출에 적용되는 최고금리는 연 15%입니다. 이를 계산하면 100만엔을 빌려주고 2일 후 상환을 받는다면 수수료 등을 포함한 이자 상한이 800엔 정도입니다. 이 정도로는 대출을 해주고 싶어도 해줄 수가 없습니다.

28일 오후 서울 중구 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일본의 최고금리 규제 완화 동향 세미나'에서 일본 자민당 다이라 마사아키 의원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 한스경제

이미 6년전 최고금리 인하를 시행했던 일본의 사례다. 경제적 취약계층을 위한다는 대부업 최고금리 인하가 화살로 되돌아 온 것이다. 저신용자나 영세상공인에게 자금이용 기회를 박탈하고 불법사채시장으로 내몰고 있다는 것. 이로 인해  ▶경제성장률 마이너스 ▶자영업자 폐업 초래 ▶비정규직 노동자 양산 ▶자살률 증가 ▶불법사금융 이용자 증가 ▶생활 격차 확대 등 갖가지 부작용이 발생했다. 최근 문재인 정부가 대부업 최고금리 인하를 단계적으로 20%까지 인하려는 계획이어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28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일본의 최고금리 규제 완화 동향 세미나'에서 발제자로 나선 도우모토 히로시 도쿄정보대학 교수는 일본의 최고금리 인하 결정은 실패라고 단언했다.  

도우모토 히로시 교수는 "일본 대부업에 대한 고금리 장사와 불법사채업자들의 가혹한 채권추심으로 여론이 악화되면서 경제규제 개혁의 일환으로 대부업법 개정에 나섰다"라며 "불법사채업체들로 인해 다중채무나 자살 등 사회적 현상이 발생하자 금융정책으로 풀려고 했던 것이 잘못된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사회적 문제는 금융정책보다 사회 정책 등으로 펼쳤어야 했다는 견해다. 카운슬링 제도나 저비용의 채무조정 제도와 같은 '출구전략'의 도입으로 접근해야 했음을 강조했다.

도우모토 교수에 따르면, 일본은 2006년 12월 대금업법을 개정했다. 이후 2010년 6월 전면 시행했다. 그 전 일본의 최고금리 규제는 두가지 법률로 지정됐다. 민사법인 이자제한법과 형사법인 출자법이다. 이자제한법은 원금 10만엔 미만은 연 20%, 10만엔 이상 100만엔 미만은 18%, 100만엔 이상은 15%로 규정하고 있다. 출자법은 연 29.2%에서 연 20%로 인하했다.

대법원은 출자법의 최고금리는 무료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후 최고금리는 이자제한법의 상한으로 일원화됐다. 이자제한법은 1954년 제정됐다. 60년 전의 일이다. 

도우모토 교수는 "당시 대졸 초임은 1만2,000엔 정도로 현재 물가상승률로 따지면 20배 정도 격차가 난다"라며 "60년간 방치 돼 있어 기능이 작동되지 않는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중소사업자에 대한 소액 단기 융자를 고려하지 않은 채 '소비자 보호에 반한다'라는 이유로 개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는 "다른 선진국에서는 그 예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대단히 엄격한 규제"라며 "경제적 취약계층에서 돈을 못 빌려 겪는 고통이 새로운 사회문제로 대두됐다"고 말했다.

최고금리 하락으로 자영업자나 중소 영세기업은 대출이 곤란해졌다. 이와 반대로 대기업 직원이나 공무원은 저리로 대출이 가능해져 자금 유통의 격차를 조장했다. 대부업권에서 조차 밀려나게 된 자영업자들은 단기 자금줄이 메마르며 폐업률을 끌어올렸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늘었다.

자영업 실패에 자살률도 증가했으며 불법사금융으로 내몰릴 수 밖에 없는 결과를 낳았다. 이자제한법은 온라인 등을 통한 즉시 심사, 즉시 결제, 신속한 상환을 고려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핀테크 보급을 저해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보면 이자부담 완화라는 명목으로 올해 대부업법과 이자제한법 상의 최고금리를 일원화하고 단계적으로 낮추기로 했다. 3년 내 대부업 최고금리 연 24%까지, 5년 내 20%까지 목표를 세웠다.

전문가들은 일본 대부업 금리 인하 경험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특히 소액 단기 대출 하부시장이 견고하게 잘 돼 있는 일본에서도 부작용이 큰데 한국의 경우는 쓰나미로 밀려 올 수 있다는 우려다. 금리 인하로 인한 저신용자 배제 현상은 한국에서 일본보다 상대적으로 심각하게 나타날 가능성을 꼽았다.

김동원 고려대 초빙교수는 "일본의 대부업 시장은 우리나라 대부업 시장보다 훨씬 잘 짜여진 시장인데 하부시장이 무너지면서 독립된 대부업체들이 은행권으로 흡수돼 단기 소액 대출 시장이 축소됐다는 건 심각한 문제"라며 "대부업권이 무너진다는 것 보다 국민들의 후생 문제가 큰 일"이라고 일갈했다.  

대부업 금리가 인하될수록 인하 혜택을 얻길 바라는 계층은 인하 효과보다 신용 배제로 인한 고통이 더 클 가능성이 높다.

인위적인 최고금리 인하는 오히려 재정부담이 증가할 수 있다는 부정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금융의 혜택이 저 신용 대출자에게 미치지 못하고 이들을 불법대부업체로 내몰며 오히려 고금리를 부담하게 해 빈곤의 악순환을 초래하게 되고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재정이 투입될 수 밖에 없다는 논리다.

이상빈 한양대 교수는 "금리를 조달원가에 대출자의 신용위험이 더해 결정돼야 하는데 최고금리 인하로 불법대부업체 시장이 커지면 공급자인 불법대부업체의 법적위험까지 더해져 금리 결정하게 될 것"이라며 "저금리와 고금리와의 격차는 더욱 더 커질 전망"이라며 중금리가 자리잡지 못한 상황에서 시장금리의 단절현상이 심화됨을 우렸다.

이 교수는 현대 경제학의 기초를 확립한 알프레도 마샬(Alfred Marshall)를 예로 들었다. 경제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뜨거운 가슴과 냉철한 머리가 필요하다.서민의 고통을 덜어 주겠다는 뜨거운 가슴은 이해하나 차가운 머리가 없어 정책 방향을 잘못 삼고 있지 않을지 고민해야 한다. 서민을 정책실험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는 까닭이다.  

김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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