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호화 취임식 뒤 사재 출연, 아쉬웠던 배구협회 처사
[기자의 눈] 호화 취임식 뒤 사재 출연, 아쉬웠던 배구협회 처사
  • 박종민 기자
  • 승인 2017.07.3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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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기 흔드는 오한남 회장./사진=대한배구협회 제공.
협회기 흔드는 오한남 회장./사진=대한배구협회 제공.

 

[한국스포츠경제 박종민] “항공 비즈니스석 가격이 너무 비쌌다. 체코 가는데 1인당 660만 원이 들더라. 재정적으로 애로 사항이 있었다.”

오한남(65) 대한배구협회 신임 회장은 지난 25일 서울 청담동 리베라호텔에서 열린 취임식 전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앞서 배구협회는 8월 세계선수권 아시아예선을 치르기 위해 이란으로 향하는 남자 대표팀 14명 전원의 항공편을 비즈니스석으로 예약했지만, 국제배구연맹(FIVB) 그랑프리 세계여자배구대회 결선 개최지인 체코로 떠나는 여자 대표팀의 경우엔 선수 12명 중 6명만 비즈니스석, 나머지 6명은 이코노미석을 배정해 차별 논란을 일으켰다.

협회 관계자는 전화 통화에서 “좁은 공간에 있으면 불편함이 많은 키 185㎝ 이상 선수들 5명과 무릎 부상이 있는 김해란(33ㆍ흥국생명)의 좌석을 비즈니스석으로 예약하고 다른 선수들은 이코노미석으로 배치했다”고 사정을 털어놨지만, 오 신임 회장의 취임식은 그러한 해명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현장에서 본 취임식 규모는 ‘호화’ 그 자체였다. 리베라호텔 관계자는 본지와 인터뷰에서 취임식이 열린 베르사이유홀의 대관료와 관련해 “오전, 오후를 대관하는 데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880만 원이며 시간이 추가될 경우 금액이 더 붙을 수 있다”고 했다. 대관료에다 만찬 준비, 현수막 제작 등 비용을 더하면 취임식을 여는 데만 1,000만 원을 훨씬 웃도는 돈이 들었을 것이란 분석이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20년 만에 금메달을 딴 여자배구 대표팀 선수들 김치찌개 회식비의 수십 배는 족히 됐을 것이다.

오 신임 회장은 취임 이틀 뒤인 27일 대표팀 활동을 포함, 협회 사업을 안정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사재 2억 원을 출연했다. 그는 배구 발전 재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선 협회 재정 안정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보고, 외부 전문가의 조언을 들어 마케팅 강화와 다양한 수익모델을 창출할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불요불급한 부문의 지출은 억제하고 자금 운용의 투명성을 확보해 외부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주문했다.

당선 당시 공약을 이행하며 배구계 분위기 쇄신을 꾀하려는 행보는 긍정적이다. 다만 앞서 취임식을 더 간소하게 열고 이러한 움직임을 보였다면 그 진정성이 더 크게 느껴질 뻔 했다. 취임식을 반드시 대규모 호텔에서 열라는 법은 없다. 배구계 재정 사정이 열악하다면 취임식도 분위기에 걸맞게 간소하게 열 수 있는 일이다. 더군다나 호화 취임식을 30분 앞두고 연 기자회견에서 “협회가 재정적으로 열악하다”고 한 오 신임 회장의 발언은 돌이켜보면 코미디에 가까운 모순된 상황이었다.

프로배구 V리그 A구단 감독은 본지와 만난 자리에서 “예전엔 대표팀 들어가면 봉사활동 하러 간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대표팀 선수 처우 개선은 물론 부상 방지 등 후방 지원도 필요한 부분이다”며 “매번 헝그리 정신이나 국가대표 선수로서의 자긍심만 강조하는 건 현실을 외면한 처사다”고 귀띔했다.

열악한 지원을 받고 있는 여자배구 대표팀은 그랑프리 세계여자배구대회에서 연일 선전하고 있다. 홍성진(54) 감독이 이끄는 여자배구 대표팀은 30일(한국시간) 체코 오스트라바에서 끝난 2그룹 준결승에서 ‘난적’ 독일을 세트스코어 3-2로 이기며 결승에 올랐다. 협회 수뇌부들이 허례허식을 버리고 선수들의 지원과 재정 안정화에 집중한다면 배구계 전반이 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다. 새롭게 지휘봉을 잡은 오 신임 회장에게 큰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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