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파크' / 사진=한국마사회

[한국스포츠경제 김성환] 1980년대 후반 혜성처럼 등장한 ‘오구리캡’은 일본경마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단번에 바꿔 놓았다. ‘이류혈통’으로 데뷔 당시 크게 주목 받지 못했던 오구리캡은 1990년 은퇴할 때까지 총 32전 22승, 2착 6회라는 놀라운 기록으로 경마를 대중스포츠로 자리매김시켰다. 혈통이 뛰어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대기록을 세우고, 슬럼프를 겪다가 새로운 기수를 만나 재기에 성공하는 등 오구리캡의 성장 스토리에 일본 경마팬들은 울고 웃었다.
일본에 오구리캡이 있다면 한국경마에는 ‘미스터파크’가 있다. 한국경마 최다연승(17연승) 기록을 가진 경주마다. 특히 경주로에서 생을 마감하며 경마 팬들에게 더욱 진한 여운을 남겼다. 지금도 미스터파크의 애틋한 스토리에 가슴 먹먹해지는 이들이 많다.
미스터파크는 2009년 경주마로 데뷔했다. 데뷔전에서 3위를 차지한 미스터파크는 그 해 12월 출전한 두 번째 경주부터 2011년 10월까지 파죽의 17연승을 질주하며 한국경마 최다연승 기록을 세웠다. 18연승 도전 경주에서 아쉽게 2착에 머물렀지만 이후 다시 2연승을 기록하며 경주마로서 총 22전 19승, 2착 1회, 3착 1회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마사회에 따르면 경마에서 17연승이 나올 확률은 8,000조분의 1에 불과하다. 로또 1등 당첨확률 814만분의 1보다 무려 9억6,000만배나 어려운 확률을 미스터파크가 달성한 셈이다.
기록도 기록이지만 미스터파크의 삶 역시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부마 ‘엑톤파크’와 모마 ‘포멀딜’의 자마인 미스터파크는 2007년 봄 제주도에서 태어난 포입마(외국에서 잉태한 암말이 한국에 와서 출산하는 경우)다.
경주마로서 대단한 기록을 세운 미스터파크는 경주마로 데뷔하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었다.
미스터파크는 1세 때 목장주의 친구에게 팔렸다. 그러나 첫인상이 좋지 않았는지 미스터파크를 구매한 사람은 구매를 취소하고 환불을 요구했다. 이후 구매취소 이력 때문에 미스터파크는 수많은 마주들에게 외면당하며 경주마로서 데뷔가 불투명했다.
미스터파크의 진가를 알아본 이는 ‘현대판 백락’으로 불리는 김영관 조교사였다. 백락은 말(馬)을 잘 고르기로 유명했던 중국 춘추시대의 인물이다. 미스터파크의 강한 승부욕이 김 조교사의 마음을 끌었다.
예상대로 미스터파크의 열정과 승부욕은 대단했다. 속력ㆍ지구력ㆍ부담력 등 명마가 갖춰야 할 3대 조건을 고루 갖췄다는 평 속에 미스터파크는 매 경기마다 놀라운 파워로 경쟁마들을 멀찌감치 따돌리며 우승을 차지했다.
마지막 순간은 애틋했다. 2012년 6월 렛츠런파크 부산경남에서 열린 경주에서 4코너를 돌던 미스터파크는 인대파열을 당했다. 치료를 받았지만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했던 탓에 결국 안락사로 생을 마쳤다.
미스터파크의 17연승이라는 불굴의 대기록, 그리고 이 과정에 깃든 이야기를 통해 팬들은 경마를 감동의 스포츠로 기억하게 됐다.

김성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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