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6억원 묶여 대출 한도 제한…청약제도를 손질해야

[한스경제 최형호]  # 서울 광진구 구의동에 사는 직장인 김모(37)씨는 내 집 마련의 꿈을 위해 몇 년 전부터 주택청약 통장에 가입해 매달 10만원 씩 꼬박 꼬박 붓고 있다. 김씨의 주택청약 점수(가점)는 무주택기간, 청약통장 가입기간을 합해 47점 정도다. 최고치인 84점임을 참작할 때 3~4순위인 점수 분포다.

8·2 부동산 대책으로 가점제 비중이 확대되면서 김씨와 같은 30~40대 층의 내 집 마련이 더욱 까다로워졌다.  

8·2 부동산 대책으로 가점제 비중이 확대되면서 김씨 같은 30~40대 층의 내 집 마련이 더욱 까다로워졌다. 사진제공=연합뉴스.

16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지정한 8.2부동산 대책 내용을 보면 무주택 기간과 부양가족 수 등을 고려해 ‘집이 필요한 순서’대로 분양한다. 김씨가 매달 청약통장에 돈을 넣고 있음에도, 불리한 가점을 받은 이유는 부양가족이 없기 때문.

주택청약 분포도를 보면 김씨의 점수대에 주택청약 가입자가 지나치게 많이 몰려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30~40대가 내집 마련 기준이 높아진 셈이다.

청약 가점은 청약통장 가입 기간, 무주택 기간, 부양가족 수 등을 기준으로 점수를 매기는데 무주택 기간은 1년당 가점 2점(최대 32점), 청약통장 가입 기간은 1년당 가점이 1점(17점)이다.

부양가족은 1명당 가점 5점으로 최대 35점까지 받을 수 있다. 상대적으로 자녀가 없는 젊은 부부나 단독 세대주에 불리한 방식이다.

투기과열지구 전용면적 85㎡ 이하 아파트 청약에선 추첨 없이 100% 가점제가 적용되며 청약 조정대상지역의 전용 85㎡ 이하 아파트는 75%, 전용 85㎡ 초과는 30%를 가점제로 공급해야 한다.

그러나 가점제가 오히려 30~40대에겐 내집마련의 꿈을 날려 버리는 '독'이 돼가고 있는 모습이다.

실제로 16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미혼이거나 무주택 기간이 길지 않은 신혼부부의 경우 내 집 마련 기회는 더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심지어 아이와 부모를 부양한다는 조건의 청약 통장을 만들어도 걸림돌은 존재한다는 것이 업계 시각이다.

김씨가 부양이라는 조건의 가점제를 추가하면 60~70점을 얻을 수 있다. 다만 식구가 많아져서 중대형 아파트에 살 확률이 높아진다.

만약 김씨가 전용 85~135㎡ 규모의 중대형 아파트를 구매한다고 가정할 경우, 6억원에 대출기준을 정한 이번 대책으로 인해 대출규모가 반토막날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이번 대책을 통해 대출 규모와 관계없이 집값이 6억원을 초과한다면 대출한도가 LTV(담보인정비율)·DTI(총부채상환비율)가 40%로 제한된다. 최소 3억원 이상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어야 집을 구매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이유로 부동산 업계는 정부가 무주택 기간과 부양가족 수 등을 고려해 ‘집이 필요한 순서’대로 분양하겠다는 취지와와는 사뭇 다른 흐름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자산 형성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은 30~40대에는 집 사기가 더 힘들어졌을 뿐더러 모아둔 현금이 적어 주택을 마련할 때 은행 대출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며 "여기에 8.2대책으로 대출이 강화돼 이마저도 쉽지 않게 됐다. 미래는 집을 파는 사람은 있어도 살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씨는 “서울 전역이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돼 서울에서 아파트를 산다는 꿈은 이미 접은지 오래”라며 “그나마 조정지구인 경기도 남양주 인근에 집을 알아보고 있는데, 그곳도 투기조정지구로 분류돼 모아둔 현금이 없는 상황에서 은행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대출한도(LTV·DTI)도 강화돼 울상이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고강도 대책 탓에 애꿎은 무주택 젊은층이 피해를 겪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며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투기 잡자고 내놓은 부동산 대책이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 계획까지 차질을 빚게 한다면 문제”라며 “대출 규제를 완화하고 신혼부부 임대주택을 늘리는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장기적으로는, 단순히 가점만으로 주택 공급 우선순위를 정하는 청약제도를 손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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