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환골탈태를 외친 은행들이 실리콘밸리에서 선진 디지털을 배우기 위해 열공 중이다. 단편적인 예가 국민은행의 실험조직인 ‘애자일 스쿼드(Agile Squad)’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한 기업에서 벤치마킹한 애자일 스쿼드는 기존 팀별 조직을 핵심 프로젝트 단위로 재편한 프로젝트 팀을 말한다. 이 조직을 통해 모인 5명의 직원들은 ‘국민은행의 모바일 뱅킹 애플리케이션(앱)인 KB스타뱅킹을 두 달 만에 대폭 뜯어고쳤다. 복잡했던 메인 첫 화면의 메뉴를 간소화시키며 고객들의 편리성을 크게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은행들이 첨단 IT 기술의 산실인 실리콘밸리에서 선진 디지털 금융과 벤처금융의 답을 찾고 있다.

국민은행은 지난 3월부터 ‘애자일 스쿼드(Agile Squad)’ 조직을 늘려가고 있다. 차·과장급 5~7명이 한 조직을 이뤄 핵심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현재 미래채널그룹에만 9개의 애자일 스쿼드 조직이 있고 행내 총 14개가 있다. 사진=한스경제DB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은행은 지난 3월부터 ‘기민한(Agile) 팀·유닛(Squad)’이라는 뜻을 가진 애자일 스쿼드 조직을 늘려가고 있다. 기존에는 미래채널그룹을 중심으로 꾸려졌으나 효과가 나자 중소기업금융그룹, 고객전략그룹 등 다른 그룹까지 조직이 확대되는 중이다. 현재 미래채널그룹에만 9개의 애자일 스쿼드 조직이 있고 행내 총 14개가 있다. 차·과장급 5~7명이 한 조직을 이뤄 핵심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금융상품을 만들거나 모바일 플랫폼을 어떻게 개선하면 좋을지 머리를 맞댄다.

애자일 스쿼드는 윤종규 국민은행장이 올해 초 디지털 전략 구상을 위해 실리콘밸리 등을 방문한 이후 만든 실험조직이다. 다국적 금융회사 ING그룹의 스쿼드 조직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알려졌다. ING그룹은 회사를 13개의 부서로 나누고 9명으로 구성된 애자일 스쿼드를 한 부서당 350개씩 구성했다. 최소 단위로 조직을 쪼개고 디지털 전환속도를 높이기 위함이다.

윤 행장은 지난 7월 하반기 정기조회사에서도 “글로벌 기업들은 금융, IT, 제조업의 구분을 떠나서 한결같이 디지털 시대에 적합한 기민한 조직과 창의적인 인재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일부에서 실험적으로 운영해 본 결과,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디지털 신세대들이 이를 훌륭하게 수행해 주고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효과를 내고 있는 만큼 하반기 이 조직은 신탁연금 등 고객 의견 반영이 필요한 분야에서 더욱 확대될 것이라는게 국민은행의 설명이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스쿼드 조직의 리더가 의사결정 주체가 되면서 의사결정 단계가 대폭 줄어들자 업무도 빨라졌다”며 “‘보고를 위한 보고’로 대변되는 관료조직을 벗어던지고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기민한 조직이 은행의 보수적 색채를 걷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은행도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으로부터 얻은 아이디어를 경영에 도입할 예정이다.

기업은행은 이르면 다음 달 벤처기업의 육성을 위해 ‘IBK형 벤처보육체계’를 마련한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의 사업모델을 벤치마킹한 이 체계로 컨설팅센터와 연계한 금융프로그램을 제공해 벤처기업의 생존율을 높일 예정이다.

기업은행에 따르면 실리콘밸리은행은 실리콘밸리에서 30년 업력을 자랑하는 금융사다. 특히 벤처창업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일반 은행들이 하기 어려운 벤처창업금융을 잘 수행해오고 있다. 은행이 대출자이면서 컨설턴트도 되고 멘토도 자청하며, 한편으로는 투자자 역할까지 하는 현장밀착형 금융을 추진하고 있다. 이렇게 벤처창업 분야에서 노하우가 쌓이다보니 ‘벤처창업금융=실리콘밸리은행’이라는 공식까지 생겨났다는 것이 기업은행의 설명이다.

김도진 기업은행장이 이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상당히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들의 노하우를 얻기 위해 실무자를 보내 사업모델을 보고 오도록 했다. 김 행장은 지난 4월 취임 100일 기념 기자간담회에서도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Silicon Valley Bank) 벤치마킹 등 디지털금융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아 나가겠다”고 공언했다.

벤처보육체계를 마련하는 것은 이번 달 초 창립 56주년 기념식에서 김 행장이 밝힌 ‘동반자 금융’의 일환이다. 동반자 금융은 ▲창업기업의 생존율을 높이는 성장 금융 ▲중소기업의 해외 진출을 도와 본격적인 성장을 지원하는 재도약 금융 ▲중소기업의 원활한 구조조정을 돕는 선순환 금융으로 구성됐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중소기업의 지원’이라는 기업은행의 목적과 벤처창업금융에서 두각을 보이는 실리콘밸리은행이 동반자 금융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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