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김지호]분식회계 의혹을 받는 한국항공우주(KAI)가 반기보고서가 나온 이후 오히려 수렁에 빠지고 있다. 애초 반기보고서가 공개됐을 때 삼일회계법인이 ‘적정’ 감사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검토의견’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되면서다. 주가는 널뛰기를 하고 있고, 증권사와 신평사들은 KAI의 ‘불확실성이 여전하다’며 혹평하고 있다.

1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18일 장에서 KAI는 전거래일 대비 0.58% 내린 4만2,60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KAI는 지난 14일 장 마감후 반기보고서를 공개하면서 16일에는 16.12% 급등세로 마감했지만 17일에는 보합세로 다시 주저앉았고 다시 하락세로 돌아선 것이다. 

이처럼 KAI의 주가가 큰 변동성을 보이는 것은 처음 반기보고서가 공개됐을 때 삼일회계법인이 감사의견을 ‘적정’으로 낸 것으로 언론과 투자자들이 오인하면서 일어났다.

삼일회계법인은 KAI 올 상반기에 대해 감사의견을 제시한 바가 없다. 아니, 자본시장법상 제시할 수 없다. 이 점은 KAI 반기보고서에 함께 첨부된 검토보고서에도 “검토는 회계감사기준에 따라 수행되는 감사보다 그 범위가 제한적이므로(중략) 감사의견을 표명하지 아니한다”고 명확히 나와 있다. 

김용상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 공시부장은 “감사의견은 회계연도 말을 기준으로 1년에 한번 3월말(12월 결산법인의 경우)에 나온다”며 “검토(review)는 은행·채권 조회 등 통상적 감사절차가 진행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삼일회계법인 관계자도 “결산완료 후 45일 내에 검토의견을 내야하기 때문에 두 달 이상 걸리는 감사절차와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검토의견은 법률적으로 고의나 중과실이 없으면 외부감사인이 책임을 지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공시된 한국항공우주 반기보고서 캡처

일각에서는 삼일회계법인이 이번 KAI 분기보고서 ‘회계감사인의 명칭 및 감사 또는 검토의견’ 표에서 ‘감사의견’으로 돼 있는 항목을 갑자기 ‘감사(검토)의견’으로 변경해 ‘적정’이라고 적어놓으면서 혼란이 가중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괄호 안에 ‘검토’를 끼워넣으면서 검토의견을 감사의견으로 혼동할 여지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해당 표에서 제18기와 제17기는 감사의견을 의미하지만 올해 상반기인 제19기 반기는 검토의견을 말한다.

실제로 삼일회계법인은 역시 지난 14일 공시된 삼성전자 반기보고서 속 표에서는 ‘감사의견’  항목에 ‘해당사항없음’으로 적혀있다. 감사의견은 반기나 분기보서에서 표시하지 않는다는 걸 나타낸다.

한국항공우주의 과거 분기나 반기보고서 속 표에도 감사(검토)의견이라는 항목을 사용하지 않았고 ‘감사의견’ 항목 아래 내용은 아예 공란으로 비어 있다. 이번만 유난히 감사(검토)의견이라는 항목을 만들어 적정이라고 표시해 자신의 책임을 줄이려는 시도를 했다는 것이다.

반기보고서를 보고 하이투자증권의 김익상 연구원은 이달 16일 ‘적정 감사의견, 분식회계 의혹 해소의 키’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KAI가 ‘적정’ 감사의견을 받으면서 분식회계 이슈가 약화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삼성증권, 신한금융투자 등도 한국항공우주에 대한 보고서에서 ‘감사의견’, ‘감사보고서’ 등의 용어를 사용해 혼란을 더했다.

회계에 대한 지식이 깊지 않은 일반인은 KAI가 당연히 반기보고서 감사의견 적정의견을 받아 분식회계 이슈가 마무리된 것으로 여겼을 것이다.

삼일회계법인 관계자는 “표 속 항목에 ‘감사의견’이나 ‘감사(검토)의견’이나 모두 들어갈 수 있다”며 “최종적 보고서는 회사가 작성한 것”이라고 전했다. 반면 KAI 관계자는 “회계법인의 검토나 감사의견을 회사가 어떻게 작성하냐”며 부인했다.

이유가 어찌됐든 반기보고서가 검토의견에 불과하다는 점이 확인되면서 한양증권은 한국항공우주를 분석 대상 종목에서 아예 제외했다. 대신증권 등은 KAI의 불확실성이 여전함을 경고했다. NICE신용평가는 KAI의 기업신용등급을 AA-로 유지하지만 신용등급 하향 검토 대상에 등재한다고 밝혔다. 한국신용평가도 KAI의 장단기 신용등급을 워치리스트(하향검토) 대상으로 등록했다.

이에 따라 분식회계 의혹이 불거진 기업에 대해서는 회계연도말이 아니라 중간에라도 직권으로 검토가 아닌 감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강제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금융감독원이 정밀감리에 착수했다고는 하지만 이는 외부 감사인인 삼일회계법인에 대한 조사이지 KAI에 대한 조사는 아니기 때문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투자자보호를 위해 회계적으로 문제가 불거진 기업은 회계연도 중간에라도 회계 감사를 받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관련 법 규정이 없고 자칫 기업 경영에 지나친 간섭이 될 수 있다는 점은 풀어야 할 숙제다.

박희춘 금융감독원 회계전문심의위원(부원장보)는 “자본시장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법적으로 회계연도 중간에 기업이 감사를 받도록 할 근거가 없다”며 “영국이나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비용 문제나 기업의 정상적 경영활동을 위해 회계연도가 마무리된 다음에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 등에 따라 감사를 받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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