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이아이피' 리뷰

[한스경제 양지원] 영화 ‘브이아이피’(23일 개봉)는 화려한 캐스팅과 국내에서 다룬 적 없는 ‘기획 귀순’이라는 소재, 남성적 느낌을 물씬 풍긴 느와르 장르로 일찌감치 기대를 모았다. 게다가 전작 ‘신세계’(2013년)로 대박을 터뜨린 박훈정 감독의 신작이라는 점 역시 힘을 보탰다. 하지만 ‘신세계’만큼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기는 무리수일 듯하다.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새로운 느와르의 탄생이다.

‘브이아이피’는 북한에서 기획 귀순한 고위 인사의 아들이자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 김광일(이종석)을 두고 각기 다른 목적을 지닌 세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국정원 요원 박재혁(장동건), 형사 채이도(김명민), 보안성 공작요원 리대범(박희순)은 김광일을 두고 서로 부딪히고 갈등한다. 영화는 김광일을 잡는 과정에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조직 간 벌어지는 암투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의 막을 여는 에필로그부터 수위가 상당하다. 김광일 일당이 북한에서 한 소녀를 두고 잔혹한 범죄 행위를 여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김광일은 여자가 죽을 때 내는 신음소리에 쾌감을 느끼는 사이코패스다.

김광일의 엽기적 살인행각은 한국으로 넘어와도 마찬가지다. 어떤 양심의 가책도 없다. 그저 남들과 다른 취미생활을 즐기는 것처럼 살인하는 것을 태연하게 즐긴다. 하지만 누구도 쉽게 김광일을 건드리지 못한다. 미국 CIA, 국정원, 한국 경찰의 이해와 목적이 서로 다른 탓이다. 조직 간 힘겨루기가 끝나지 않을 때쯤 북에서 넘어온 리대범이 은밀하게 움직이고 영화는 새 국면을 맞는다.

‘브이아이피’는 기획귀순이라는 소재로 기존의 느와르물과 차별을 꾀했다. 여기에 시간을 재배치하는 구성으로 영화적 재미를 더했다. ‘신세계’보다 한 층 깊어진 박 감독의 세계관도 엿볼 수 있다. ‘신세계’가 보편적이었다면 ‘브이아이피’는 작가주의에 가깝다.

이에 반해 영화를 이끌어가는 캐릭터들은 다소 보편적이다. 매사 이성적이고 침착하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기회주의자 국정원 요원, 불 같은 성격의 열혈 한국형사, 비정하고 차분한 보안성 공작요원 등이 그렇다. 때문에 ‘색다른’ 캐릭터를 보는 재미를 찾기는 조금 힘들 듯하다.

문제는 김광일의 살인 행각을 묘사하는 방식이다. 김광일의 비참한 희생양은 죄다 여성이다. 이 여성들은 어떤 저항도 하지 못한 채 김광일 일당에게 무참히 살해당한다. 실컷 농락을 당하다 비참하게 죽음을 맞는다. 늘 여성은 범죄의 희생양이었던 기존의 한국범죄영화와 다르지 않다. 여성들의 비참한 죽음을 묘사하는 방식은 기존의 영화들보다 훨씬 잔인하다. ‘악마를 보았다’ 시나리오를 집필한 박 감독답게 이번에도 여성을 범죄 대상으로 삼고 있다.

배우들의 연기력으로는 딱히 흠잡을 데가 없다. 욕설 연기가 어색한 장동건은 극 후반부 폭발적인 에너지를 보여준다. 열혈 형사로 분한 김명민은 마치 사냥개 같은 캐릭터를 잘 표현해냈고, 이들보다 분량이 적은 박희순 역시 눈빛과 표정으로 스크린을 압도한다.

물론 ‘브이아이피’로 가장 큰 수확을 얻은 이는 이종석이다. 이종석은 기존의 ‘밀크남’ 이미지를 벗고 ‘소년’의 얼굴을 한 사이코패스 김광일을 만들어냈다. 관객의 공분을 자아내는 연기로 기존 이미지에서 완벽히 탈피했다.

‘브이아이피’는 통쾌함을 주는 느와르는 아니다. 기존의 선악 구도나 권선징악의 결말을 쫓지 않는다. 쉽게 바뀌지 않는 사회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영화가 막을 내린 뒤에도 찝찝한 기분이 쉽사리 가시지 않는 이유다. 하지만 박 감독 특유의 비장하고 세련된 미장센과 이야기의 힘은 스크린을 통해 고스란히 전달된다. 누군가는 손을 내저을 영화이고, 누군가는 찬양할 영화다.

사진=워너브라더스코리아 제공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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