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기억법' 리뷰

[한스경제 양지원]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6일 개봉)은 김영하 작가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영화는 원작보다 한국적인 정서를 더했다. 은퇴한 살인마 병수(설경구)의 부성애를 강조함으로써 관객의 공감도를 높이는 방법을 택했다.

‘살인자의 기억법’을 간략히 요약하자면 알츠하이머에 걸려 기억을 잃어가는 병수가 딸 은희(김설현)를 지키기 위해 펼치는 고군분투다. 병수는 자신의 살인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인물이다. “쓰레기를 청소한다‘고 표현할 정도로 이 세상에 쓸모 없고 악한 사람들을 자신이 처단한다고 믿는다. 마지막 살인을 끝으로 은퇴한 김병수에게 어느 날 수상한 남자가 접근한다. 마치 자신과 딸을 노리는 듯한 그 남자는 바로 경찰 태주(김남길)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알츠하이머를 앓는 병수가 현실과 망상 사이에서 혼란을 느끼게 되는 과정을 긴장감 있게 담아낸다.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를 알 수 없는 혼돈 상태에 빠진 병수의 모습이 극의 몰입감을 더한다.

영화의 묘미는 단연 비주얼이다. 병수가 과거 피해자들을 묻은 음산하고 서늘한 대나무 숲과 설원을 배경으로 공포감을 조성하는 비주얼 효과를 극대화했다. 여기에 캐릭터들의 표정 변화에 주목하는 카메라 클로즈업을 통해 인물 간 긴장감을 표현했다. 눈빛과 표정만으로 서로를 제압하는 병수와 태주의 살벌한 대립관계가 후반부를 책임지는 요소로 작용됐다.

영화는 캐릭터들의 심리를 쫓아가는 데 중점을 뒀다. 병수의 혼란스러운 감정과 누가 진범인지 알 수 없는 연쇄 살인사건, 그리고 병수를 의심하는 은희까지 인물들의 심리에 초점을 맞췄다. 그래서일까. 영화는 ‘느림의 미학’을 추구하는 것처럼 정적이기도 하다. 긴박하고 빠른 스피드를 추구하는 관객이라면 다소 실망할 수 있다. ‘세븐데이즈’ ‘용의자’ 등 주로 스피드 있는 액션을 만든 원신연 감독이 ‘느린 템포’를 택한 것이다.

물론 액션도 있다. 병수와 태주가 은희를 두고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는데 이는 짜릿한 쾌감을 선사함과 동시에 클리셰로 느껴진다. 갈등 관계인 두 남자가 벌이는 치열하고 지독한 몸싸움은 여느 영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병수와 태주의 갈등을 액션으로 표현한 것이 조금 진부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추리 스릴러의 미학도 갖춘 영화다. 병수의 망상과 현실처럼 무엇이 진실인지 추리해가는 과정이 꽤 흥미롭다. 여기에 병수와 동네 경찰 병만(오달수)의 브로맨스, 부성애 등 한국 관객의 입맛에 맞춘 설정으로 원작과 차별점을 뒀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설경구는 캐릭터에 부합하는 연기력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홀쭉해진 몸과 안면 경련까지 일으키며 파격적인 변신을 택했다. 은퇴한 살인마의 초라한 외형과 이와 대조되는 살기를 품은 눈빛을 표현하며 녹슬지 않은 내공을 자랑한다. 김남길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인물 태주를 섬뜩한 얼굴로 표현한다. 설현은 극 초반 다소 튀는 모습을 보이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안정감 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사진='살인자의 기억법' 스틸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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