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허인혜] 어려운 경제상황 속 실적 압박에 치이고 인력감축 등으로 보험설계사들이 설 땅이 좁아지고 있다. 특히 보험사들이 인력 털어내기를 위해 부당평가를 동원하면서 억울한 지경이다. 신규 보험설계사와 지점장에게 거미발 영업과 인력채용을 주문한 뒤 보험사와 갈등을 빚거나 쓸모 없어지면 부당평가로 해촉(해고)하는 꼼수가 만연해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보험설계사의 불투명한 업무 환경이 재조명되면서 보험설계사들을 무분별하게 위촉·해촉하는 관행이 도마에 올랐다./사진=한국스포츠경제DB

8일 서울 수서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5일 서울 강남구 A보험사에서 전직 지점장인 50대 양씨가 투신해 사망했다. 경찰 조사결과 양씨는 실적 부진을 이유로 지난 8월 말 회사에서 해촉된 것으로 알려졌다.

A보험사 관계자는 “고인과 유가족에 대한 예우를 지키기 위해 사실관계를 구체적으로 확인해줄 수 없음을 양해해달라”며 “자사의 보험설계사 평가 방법도 현재로서는 밝히기 어렵다”고 답했다.

보험설계사는 자영업자로 분류돼 고용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보험사의 상품을 전담으로 판매하므로 일종의 임명인 ‘위촉’ 방식을 쓴다. 해고나 마찬가지인 해촉 권한도 보험사가 전적으로 가진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양씨가 신규 보험설계사를 실적 기준만큼 뽑았는데, 본부장 등 상부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절했다고 한다”며 “지점장 평가점수에는 리쿠르팅(인력채용) 실적이 반영된다. 결국 지점장 평가 점수가 부족해 해촉당한 셈”이라고 말했다.

보험설계사들은 보험업계 전반적으로 퍼져있는 실적강요와 마구잡이식 해촉을 원인으로 꼽았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신규 보험설계사에게 거미발 영업을 요구해 초기계약 건수를 바짝 올린 뒤 방치하다 1년 만에 해촉하고, 지점장에게는 이렇게 쓸 신규 보험설계사를 계속 양산하라고 압박한다”고 꼬집었다.

오세중 보험인권리연대(전 대한보험인협회) 대표는 “보험업법에 따르면 보험설계사는 보험에 대한 중개행위만 하는 것이지 사람을 구하는 직무가 아니다”라며 “지점장도 결국 보험설계사에게 감투를 씌워 앉혀놓는 꼴이다. 보험사들이 정규직 근로자로 채용해 할당할 일을 편법적으로 지점장에게 몰아넣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측과 다투거나 쓸모 없어진 보험설계사를 해촉하는 방법도 각양각색이다.

평가 기준을 달성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사례가 빈번했다. 신규 보험계약 실적을 올려도 사측이나 지점장이 보험계약 승인을 거부하는 식이다.

한 보험사의 설계사는 “‘쓸모 없어 자른다’고 명시하지는 않지만, 실적 쌓기를 방해하거나 과도한 실적을 요구하는 방법으로 등을 떠민다”며 “실적을 올려와도 상부가 거절해 평가 점수에 아예 미달되게 만드는 ‘갑질’이다”고 밝혔다.

부실 고아계약을 미운털이 박힌 보험설계사에 미뤄 실적을 깎는 방법도 쓰였다. 친분이 있는 보험설계사에게 우량 고객을, 사이가 좋지 않은 설계사에게는 부실 계약을 배치해 의도적인 실적 손질을 하는 셈이다.

이밖에 정신상태, 개인적인 다툼 등 상식 밖의 사유로 평가점수를 낮추기도 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개에 물려 크게 다친 아내를 병간호한다며 휴가를 낸 보험설계사에게 ‘정신상태가 미흡하다’는 이유로 태도점수를 엉망으로 줬다는 제보가 있다”며 “업무 외의 일로 지점장과 다툰 뒤 업무 태도가 불량하다며 해촉 대상이 되기도 한다”고 증언했다.

보험설계사들은 노동조합이 설립돼야 무분별한 실적강요와 해촉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오 대표는 “가장 좋은 해결책은 노조다. 금융감독원이나 공정거래위원회에 매번 신고하기 어렵다. 근로자가 아니라 고용노동부에서도 해결해주지 않고, 금융소비자원은 소비자 문제만 처리한다”며 “문재인 정부가 보험설계사 노동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보장을 추진하는 중이다. 노조가 결성돼 집단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보험설계사의 근로 환경이 개선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허인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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