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양지원] “아이 엠 쏘리. 미안하다는 한 마디가 그렇게 어렵습니까?”

위안부 피해자를 소재로 한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속 나옥분(나문희)의 대사다. 나옥분은 일본을 향해 물질적 배상이 아닌 진정성 있는 사과를 요구한다. 실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다르지 않은 입장이다. 하지만 여전히 일본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사과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수십 년 째 현재 진행형으로 남고 있는 위안부 문제에 영화계가 발 벗고 나섰다. 일본의 정식 사과를 요구하며 위안부 소재의 영화를 줄줄이 제작 중이다.

오는 21일 개봉을 앞둔 ‘아이 캔 스피크’는 일본의 만행과 피해 실상을 적나라하게 다루며 정공법을 택한 기존의 위안부 영화와 달리 우회적으로 표현해 감동을 더했다. 구청에 매번 민원을 제기하는 ‘민원 왕’ 할머니 나옥분과 9급 공무원 민재(이제훈), 상극의 두 사람이 영어를 통해 운명적으로 엮이게 되면서 진심이 밝혀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표면적인 틀은 ‘영어 공부’ 같지만 알고 보면 나옥분의 아픈 과거와 진실이 드러나는 위안부 소재의 영화다.

‘아이 캔 스피크’는 2014년 CJ 문화재단 주최의 ‘위안부 피해자 시나리오 공모작’에 당선된 뒤 4년 간 기획 개발 과정을 거쳐 간판을 걸게 됐다. 메가폰을 잡은 김현석 감독은 “독도 문제와 달리 위안부 문제는 알면 알수록 더 아파서 사람들이 외면하는 것 같다”며 “영화 속 등장하는 옥분의 여러 이웃은 바로 위안부 할머니들의 사연을 모르고 사는 우리의 모습이라 생각하고 묘사했다”고 밝혔다. 위안부 문제를 직시하고 나아가 일본의 정식 사과를 요구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제훈 역시 위안부 문제를 회피하고 있는 일본을 향해 “돈을 위한 배상이 아닌 진정성 있는 사과가 있어야 한다”며 소신 있는 생각을 밝혔다.

지난해 개봉해 큰 사랑을 받은 ‘귀향’은 후속편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로 14일 관객을 찾는다. 위안부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한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는 전편에서 다 담지 못한 촬영 장면들과 ‘나눔의 집’에서 제공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 영상을 합쳐 만든 작품이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가슴 아픈 생생한 증언이 오랜 여운을 남긴다.

지난 3월 개봉된 ‘눈길’은 김향기, 김새론이 주연을 맡아 위안부 피해 소녀를 연기했다. 지상파 채널인 KBS1에서 드라마로 먼저 방송된 이 영화는 처참한 상황 속에서도 우정을 지키는 두 소녀의 이야기를 통해 진한 감동을 더했다. 성적, 폭력적인 묘사 없이 따뜻한 시선을 유지해 관객의 극찬을 받기도 했다.

중국계 캐나다인 여성 감독 티파니 슝이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어폴로지’ 역시 위안부 문제를 다뤘다. 다른 영화와 달리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삶을 각색 없이 사실적으로 담아내 주목 받았다.

개봉작 외에도 위안부 문제를 다룬 작품들이 제작 중이다. 김희애, 김해숙이 출연하는 ‘허스토리’는 위안부 재판 실화를 담는다. 일본 정부를 상대로 벌인 많은 법정 투쟁 중에 전무후무하게도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아내어 일본 사법부의 쿠테타로 불린 관부 재판 실화를 담았다. 또 ‘베테랑’ ‘군함도’의 제작사 외유내강 역시 위안부를 소재로 한 영화 ‘환향’을 기획하고 있다. 고현정, 송혜교가 출연 제의를 받은 것이 알려지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올해 개봉된 위안부 영화만 네 편, 제작 중인 영화가 두 편이다. 영화계가 너나 할 것 없이 위안부 소재의 영화를 발 빠르게 만드는 이유는 ‘너무 늦지 않기 위함’이다. 올해만 해도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39명 중 생존자는 35명으로 줄었다. 한 명이라도 더 생존해 있을 때 위안부 문제를 이슈화해 일본의 사과를 받겠다는 영화계의 취지다. 이 같은 의미 있는 움직임이 단순히 관객에게 감동을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일본의 사과를 받을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되길 바라고 있다.

사진=해당 영화 포스터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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