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양지원] ‘아이 캔 스피크’(21일 개봉)는 영리함이 돋보이는 영화다. 위안부 피해자 소재의 영화들이 대부분 적나라하게 일본의 만행을 들추는데 공을 들인 것과 달리 ‘아이 캔 스피크’는 우회하는 길을 택하며 울림을 더한다. 코미디라는 포장지를 뜯어보면 의외의 슬픔과 감동이 빼곡하게 자리를 차지한다.

영화의 내용은 그리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다. 원리 원칙밖에 모르는 9급 공무원 민재(이제훈)가 구청의 ‘민원 왕’ 옥분(나문희)와 얽히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는다. 두 캐릭터는 갈등과 화해를 겪으며 서로 교감하며 가족과 같은 사이로 발전한다. 일반적인 휴먼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설정이다.

캐릭터들 역시 지극히 평면적이다. 옥분의 주거지인 시장 사람들은 평범하고 인간미가 넘친다. 무슨 일이든 사사건건 참견하는 옥분을 거슬려 한다. 하지만 옥분의 과거와 진심을 안 뒤부터 누구보다 가슴 아파하고 따뜻하게 응원한다.

영화를 연출한 김현석 감독은 이런 평범함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평범함에서 오는 공감과 감동을 극대화함으로써 관객의 몰입도를 높인다. 여기에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민재와 할머니 옥분의 관계에 세대를 뛰어넘은 우정과 교감이라는 설정을 더한다. 공통점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을 것 같은 젊은이와 노인이 서로의 상처를 발견하고 아픔을 치유하는 과정에 공을 들인다. 세대를 뛰어넘은 캐릭터들의 관계는 언제나 의외의 감동과 따뜻함을 선사하기 마련이다.

때문에 후반부에서 드러나는 옥분의 비극적인 과거는 더욱 감동적일 수밖에 없다. 수십 년 동안 위안부 피해자라는 사실을 숨기고 산 옥분은 치매에 걸린 친구 정심(손숙)을 대신해 미국 하원의회 공개 청문회에 참석하기 위해 노력한다. 옥분이 기를 쓰고 민재를 졸라 영어를 배운 이유다. 그 동안 억척스럽게 살아온 듯 하지만, 알고 보면 혼자서 외로운 세월을 버틴 옥분이 청문회에서 또박또박 일본군의 만행을 폭로하는 모습은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영어로 말할 수 있다’는 뜻이 담긴 영화의 제목은 옥분의 청문회 연설에서 진짜 의미를 드러낸다.

옥분의 아픈 과거는 오로지 대사로만 전달된다. 당시 위안부 피해자들이 고통을 화면으로 묘사한 기존의 영화와는 달리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묘사는 찾을 수 없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한 관객의 부담을 덜어줌과 동시에 감동을 극대화한다.

나아가 ‘아이 캔 스피크’는 소통하며 사는 따뜻한 삶을 지향한다. 비록 상투적인 메시지로 보일 수 있으나 영화가 가진 특유의 가슴 먹먹한 따뜻함은 오래도록 긴 여운을 남긴다.

이미 ‘수상한 그녀’(2013년)로 관객의 뜨거운 지지를 얻은 나문희의 연기력은 이번 영화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코믹과 감동의 벽을 허무는 연기가 돋보인다. 이제훈 역시 융통성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사려 깊은 성격의 민재로 분해 관객을 리드한다. 나이를 막론하고 전 연령층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추석 연휴에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이다. 러닝타임 119분. 12세 관람가.

사진=리틀빅픽처스 제공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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