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양지원] “나도 처음엔 그만그만한 코미디 시나리오인 줄 알았다.”

김현석 감독이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시나리오를 처음 접했을 당시 느낌이다. 당초 제작사 측에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소재로 한 영화로 홍보하지 않았기에 김 감독 역시 관객과 마찬가지로 ‘아이 캔 스피크’를 보편적인 휴먼 코미디 영화로 느꼈다. 하지만 시나리오의 절반가량을 읽었을 때 이야기에 점점 깊게 빠져들었다. 옥분(나문희)의 과거가 밝혀지면서부터다.

‘아이 캔 스피크’는 휴먼 코미디로 포장한 겉과 달리, 속은 굉장히 아픈 이야기를 품고 있는 영화다. CJ문화재단이 주관하고 여성가족부가 후원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75:1의 경쟁률을 뚫고 당선된 시나리오다. 실제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와 고 김군자 할머니의 증언을 계기로 2007년 미 하원이 일본군 위안부 사죄 결의안을 채택했던 것을 모티브로 했다.

아무래도 예민한 소재인만큼 김 감독 역시 연출을 하며 상당한 부담감을 느꼈다. 김 감독은 영화를 준비하면서 제대로 (위안부 역사를) 알고 나니 부담감이 생겼다. 독도와는 또 다른 문제다. 알면 알수록 아픈 역사였다“고 했다.

'아이 캔 스피크'에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옥분 역을 맡은 나문희./사진=리틀빅픽처스 제공

김 감독은 스태프와 함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모여살고 있는 나눔의 집에 방문했다. 이런 저런 핑계로 영화를 준비하고 나서야 방문한 게 마냥 죄스럽다고 했다. “그 전에는 나눔의 집 홈페이지에도 들어가지 않았던 것 같다”며 “영화 속 민재(이제훈)의 입에서 나온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딱 내 심정이었다. 나 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아이 캔 스피크’는 김 감독의 전작 ‘스카우트’와 닮았다. 겉은 코미디 장르지만 1980년대 5월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루며 묵직한 울림을 선사한 영화다. 이 영화 역시 정공법이 아닌 우회하는 방식을 택했다. 김 감독은 “어린 시절 광주에서 자랐다. 정작 광주 사람들은 그 당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대부분 실제로 돌아가셨고, 살아계신 분들도 숨어서 살았다”며 “그만큼 아프다는 거다. 때문에 너무 직설적으로 담아내고 싶지 않았다. ‘아이 캔 스피크’도 마찬가지다. 약간은 우회하는 길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아이 캔 스피크’ 외에도 다양한 위안부 소재 영화들이 점점 더 빠르게 제작되고 있는 추세다.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개봉했으며, ‘허스토리’ ‘환향’ 등이 제작을 준비 중이다. ‘너무 늦기 전에’ 일본군 위안부의 만행을 알리려는 영화계의 활발한 움직임이다. 올해에만 5명의 위안부 할머니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39명 중 생존자는 35명으로 줄었다.

김 감독은 이러한 영화계의 움직임에 대해 “좋은 일인 것 같다. 더구나 2년 전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국민 대부분이 납득을 하지 못하고 있지 않나. 다들 이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10년 동안 퇴보해 온 영화계가 성취를 위해 더 나아갈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사진=리틀빅픽처스 제공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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