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김지호]경제 분석에 인간 심리 연구결과를 접목한 행동경제학의 권위자 리처드 세일러 미국 시카고 대학 교수 올해 노벨상을 수상하면서 그의 이론을 금융투자업계에 접목할 수 있을지도 관심이 모인다.

실제로 그가 주도하는 풀러&세일러 자산운용의 ‘언디스커버드 매니저스 비헤이비어럴 밸류 펀드’(UBVAX A주)는 지난 2009년 3월 이후로 512% 상승률을 기록한 것으로 전해진다. 같은 기간 뉴욕증시의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500지수가 277% 상승에 그친 데 비해 2배에 가까운 수익률이다. 세일러 교수의 이론을 이용하면 국내 투자자도 높은 투자 수익을 올릴 수 있지 않을까.

◆주식투자 실패 원인은 과도한 자신감

인간을 물질적 동기에 따라 행동하는 합리적인 존재로 여기는 전통 경제학과는 달리, 행동경제학은 불완전하고 불합리적인 존재로 가정한다. 이런 가정에 맞게 그는 주식시장에서 인간이 명확한 확률과 통계가 아니라 과거의 경험치, 주관적 인상 같은 것들에 기반을 두고 경제적 의사결정을 내린다고 보고 있다.

그는 “투자자들의 최대 실수는 과도한 자신감”이라며 “개별종목에 투자하지 말고 시장 흐름에 따라가라”고 강조하고 있다. 또 그는 “대부분의 적극적인 투자자들은 거래수수료를 떼어내고 나면 시장수익률에도 미치지 못한다”거나 “대다수의 펀드매니저들이 거두는 수익률이 벤치마크 수익률보다 낮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는 어찌 보면 최근 글로벌 증시에서 패시브 투자가 급팽창하고 있는 양상과 맥을 같이 한다. 그렇다고 그가 액티브 투자 자체에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그는 “유능한 포트폴리오 매니저를 믿는다”는 말도 했다.

즉 그는 ‘유능한 포트폴리오가 운용하면서 시장 흐름을 따라가는 수수료가 저렴한 펀드’에 대한 투자를 지향하는 걸로 보인다. 한마디로 다 가지겠다는 말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시장 흐름을 따라가는 수수료가 저렴한 펀드는 패시브 펀드고, 유능한 포트폴리오가 운용하면 액티브 펀드인데 말이 안 되는 얘기”라고 말했다.

다르게 생각하면 최근 금융투자업계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액티브와 패시브를 적절히 결합한 투자 상품이 세일러 교수의 투자철학의 반영일 수도 있다. 투자자의 은퇴 시점을 고려해 생애주기별로 자산을 배분해주는 타깃데이트펀드(TDF)나 시가총액 방식이 아닌 특화된 지수를 추종하는 스마트베타 ETF(상장지수펀드) 등이 있다.

안동현 자본시장연구원장은 “세일러 교수는 투자지침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시장의 여러 가지 현상을 인간의 심리를 대입해 설명하는 데 주력하는 인물”이라며 “특히 자기 자신의 능력을 신뢰하고 확신하는 과도한 자신감(Self-confidence)으로 시장의 비합리적 현상을 설명했다”고 말했다.

◆투자보다는 퇴직연금 수익률 올리기에 적합한 ‘넛지’

오히려 그의 이론은 금융투자업계에서 각종 연금이나 투자자보호에 더욱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세일러 교수가 공저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넛지’를 보면 사람들은 애초 ‘지정하지 않았을 때 자동으로 선택되는 조건’이 불합리하더라도 그대로 따르려는 강한 성향을 보인다. 책은 인간 본연의 현상유지편향(타성)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이를 국내 퇴직연금 수익률이 채 연 2%도 되지 않는 현실에 적용하면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국내 퇴직연금 수익률이 낮은 것은 적립금의 90%가량이 원금보장 자산에 쏠려있어서다. 원금보장 자산에 투자하면 수익률이 떨어질 수 있음에도 사람들은 확정기여형 퇴직연금(DC)과 개인형 퇴직연금(IRP)에 적극적인 관심 없이 애초 정해진 투자 틀을 따른다. 사실상 방치되고 있는 모습이다.

미국은 지난 2006년부터 아예 TDF를 티폴트옵션(퇴직연금 가입자의 운용 지시 없이도 금융사가 사전에 결정된 운용 방법으로 투자 상품을 자동으로 선정, 운용하는 제도)으로 지정해 수익률을 끌어올리고 있다. 책에서 언급된 암스테르담 공항 소변기에 붙여진 ‘파리 모양 스티커’ 역할과 비슷하다.

우리나라에서도 개인 연금저축과 퇴직연금에 대한 디폴트옵션 도입을 위한 정부 입법 절차가 진행 중인 상황이다.

나석진 금융투자협회 WM서비스 본부장은 “디폴트옵션이 수익률을 보장해주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전문가가 운용하기 때문에 개인보다는 수익률이 높다는 게 호주나 미국 등 사례에서 알 수 있다”며 “투자자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일종의 제도 개선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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