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김지호]한국항공우주(KAI)가 11일 돌연 거래정지를 맞으면서 경영정상화를 위한 시험대에 올랐다.

이날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는 KAI에 대해 전 대표이사의 5,000억원대 분식회계 및 횡령·배임 등 혐의 기소설에 대한 조회공시를 요구하면서 거래를 정지시켰다. 이날 서울중앙지검 방위사업수사부(이용일 부장검사)는 하성용 전 대표를 구속기소 했다.

하 전 대표는  KAI가 2013년부터 올해 1분기까지 협력업체에 선급금을 과다 지급하고 자재 출고 시점을 조작하는 등 방식으로 매출 5,358억원, 당기순이익 465억원을 부풀린 회계 분식을 하도록 주도한 혐의(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법 위반 등)를 받는다.

또 검찰은 KAI가 분식 재무제표를 이용해 금융기관에서 6,514억원의 대출을 받고 회사채 6,000억원, 기업어음 1조9,400억원어치를 발행한 것으로 파악하고 하 전 대표 등에게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사기 등 혐의도 적용했다.

하 전 대표 등 경영진은 부풀린 업무 성과를 바탕으로 총 73억원의 상여금 등 급여를 챙긴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도 받는다.

이들은 회사 보유 외화를 매도할 때 환율을 조작하는 방법으로 10억4,000만원을 빼돌려 임의로 쓰고 속칭 상품권깡과 카드깡으로 4억6,000만원의 비자금도 만들어 쓴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로부터 5,000억원 규모 분식회계와 횡령 등 혐의를 받고 있는 하성용 전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사장/사진=연합뉴스

전일 김조원 전 감사원 사무총장을 신임 사장으로 내정하면서 경영정상화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던 투자자들은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 김 전 사무총장은 2005년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역임하고 2015년 더불어민주당 당무감사원장과 문재인 대통령 후보 캠프에도 몸담았던 ‘실세’로 불린다. 전일 KAI 주가가 9.5% 뛴 이유다.

그렇지만 하 전 사장 기소로 하루 만에 KAI는 상장폐지될지도 모르는 운명에 놓였다. 투자자는 갑작스런 거래 정지에 언제나 거래가 재개될지 노심초사하고 있다.

조윤호 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 공시1팀장은 “유가증권 상장규정 시행세칙에 따라 최근 사업연도 말 기준 자기자본 2조원 이상인 상장법인이 전·현직 임직원 횡령·배임이나 분식회계 규모가 자기자본의 2.5%를 넘을 경우 상장폐지 실질심사에 들어가게 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기준 KAI 자기자본은 약 1조5,000억원으로 검찰이 허 전 사장 기소장에 횡령·배임이나 분식회계 규모를 370억원 이상만 넘겨 잡아도 KAI는 상장폐지심사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검찰이 허 전 사장에 5,000억원이 넘는 분식회계와 횡령 혐의를 두고 있어 상장폐지 실질심사에 들어가는 게 불가피한 상황이다.

심사에 들어갔더라도 기회는 남아있다. 거래소는 최대 15일동안 KAI를 상장폐지 여부를 최종 심사하는 기업심사위원회에 넘길지 판단한다.

여기서 검찰 기소장에 적시된 횡령·배임이나 분식회계 규모가 근거가 약하다거나 상장을 유지하는 데 큰 장애가 없다고 판단되면 기업심사위원회로 넘어가지 않을 수 있다. 그렇지 않고 기업심사위원회로 넘어가면 상장폐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된다.

일단 KAI 측은 검찰이 허 전 사장을 기소하더라도 상장이 유지될 걸로 기대하고 있다. 재판에 넘기더라도 전액이 유죄가 되는 게 아닐뿐더러 신임 사장이 내정된 만큼 이제 경영정상화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KAI 관계자는 “잘 해결될 걸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한국항공우주가 대우조선해양처럼 장기간 거래정지에 놓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우조선해양은 5조원 규모 분식회계로 거래가 정지된 후 거래소 기업심사위원회로부터 1년간의 경영개선 기간을 받았다. 검찰의 분식회계 수사에 따라 KAI가 연간 감사보고서의 외부감사 의견이 ‘적정’에서 그 이하로 내려가면 상장폐지 가능성도 있다. 감사의견이 부적정이거나 의견거절, 2년 연속 한정이면 상장폐지 사유가 된다.

유재훈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검찰 분식회계 수사에 따라서도 최악인 상장폐지는 되지 않고 거래소가 대우조선해양처럼 경영개선 기간을 부여할 가능성이 높다”며 “1개월가량 거래정지 후 정상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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