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인 국민은행장 내정자

[한스경제 김서연] KB금융그룹이 윤종규 단일화 체제에서 분리경영으로 전환시키며 전문경영에 시동을 걸었다. 허인(56) 국민은행 영업그룹 부행장의 차기 국민은행장 내정으로 KB금융지주 회장과 행장의 겸임체제 3년 만에 행장직이 분리되면서 윤종규 회장에게는 12개 계열사의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과제가, 허 내정자에게는 리딩뱅크를 굳건히 세우고 지주회장과의 지배구조 안정화를 이루는 등의 과제가 주어졌다. KB노조와의 갈등 해결도 시급하다.

추석 연휴 후 국민은행장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는 전망은 있었지만 인선이 속전속결로 빠르게 진행된 데 대해 금융권에서는 KB금융이 외풍을 차단하기 위해 인사를 서둘렀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윤 회장의 연임으로 행장은 외부에서 수혈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지만 내부 출신을 기용하면서 외풍 우려를 씻어내는 모습을 보였다. 국책은행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간 정치권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KB금융이 이번 인선을 발판삼아 안정적인 지배구조 확립에 첫발을 디뎠다는 평가다.

국민은행 지배회사인 KB금융지주의 상시 지배구조위원회(이하 위원회)는 11일 회의를 열어 차기 국민은행장으로 허인 부행장을 내정했다고 밝혔다. 허 내정자는 국민은행 사외이사 4명으로 구성된 은행장 후보추천위원회(행추위)의 검증과정과 이사회 결의를 거친 뒤 16일 주주총회에서 차기 은행장으로 확정된다.

허 내정자는 윤종규 KB금융 회장의 두 번째 임기 시작일인 11월 21일부터 2년 임기를 시작한다. ‘임기 시작일을 맞춘 것은 책임 경영체제를 확립하기 위한 조치’라고 위원회는 설명했다.

위원회는 허 내정자가 “고객, 시장, 영업 현장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있고 임직원을 응집시킬 수 있는 리더십과 역량을 보유한 강점이 있다”고 선임 배경을 밝혔다. “풍부한 업무 경험을 통해 4차 산업혁명 등 트렌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비전과 변화혁신 리더십을 겸비하고 있다”며 “그룹 최고경영자(CEO)와 호흡을 함께하면서 사업모델 혁신을 통한 리딩뱅크로서의 지위 강화를 견인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도 덧붙였다.

다음 달 차기 은행장으로서 국민은행을 이끌 허 내정자는 지주회장과의 시너지를 통해 지배구조를 안정화시켜야 한다. 리딩뱅크의 위상도 공고히 해야 하는 문제도 남았다. KB노조와의 갈등 해결이라는 무거운 현안도 닥쳐있다.

현재 국민은행장은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이 겸하고 있다. 국내 주요 은행 중 유일하게 지주사 회장이 은행장을 겸직하고 있다. 차기 은행장이 내정됨에 따라 국민은행은 2014년 지주 회장과 은행장의 갈등 속에 촉발된 이른바 ‘KB사태’ 이후 3년여 만에 다시 분리 경영을 하게 됐다. KB사태 당시 지주 회장과 행장의 갈등을 거울삼아 KB금융과 국민은행을 각각 이끌며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 금융권의 관심이 모인다.

KB사태 당시 KB 내 최우선 과제는 지배구조의 안정이었다. 때문에 윤 회장의 취임과 함께 겸직체제가 출범하게 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은행권 현안이 많아지면서 전문 경영을 위해서는 수장을 분리해 경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고, 이에 KB금융은 지난 달 윤 회장의 연임을 사실상 확정한 후 분리 경영에 돌입하기로 했다.

KB금융은 지난해 말부터 리딩뱅크 탈환을 목표로 신한금융지주와 선의의 경쟁을 이어왔다. KB금융은 올해 상반기 1조8,602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려 2008년 지주사 설립 이후 최대 반기 실적을 기록했다. 최대 반기 실적이지만 신한금융에는 뒤지는 성적이다. 신한금융은 올 상반기 1조8,891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냈다.

지주 핵심 계열사인 은행만 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상반기 기준으로 국민은행이 신한은행을 앞섰지만 2분기 실적은 신한은행이 국민은행을 추월했다. 국민은행이 1분기에 신한은행을 앞섰던 것은 일회성 요인이 크기 때문에 엎치락뒤치락하는 리딩뱅크 경쟁에서 확실히 1위를 굳혀야 한다.

최근 고조된 노사갈등 해결도 시급하다. 11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국민은행지부는 성명서를 내고 “회장 선임 절차와 마찬가지로 은행장 선임 역시 제대로 된 기준 없이 치러졌을 것”이라면서 “노동조합이 은행 직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허인 부행장은 그룹대표 총 15명 중 13등이라는 성적을 받았다”고 허 내정자의 은행장 내정 취소를 촉구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허 부행장은 국민은행에서도 얼마 되지 않은 장기신용은행 출신이지만 행내 관계가 비교적 원만하다는 평을 받는다”며 “과거 장기신용은행이 국민은행과 통합되기 전에 노조위원장을 맡은 이력도 있어 이 부분도 (선임에)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근 KB가 겪어온 노사 갈등 해결에 물꼬를 틀 수 있을지 기대가 되는 이유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회장과 행장이 분리되면서 과거 KB사태를 번복하지 않으려면 보조를 잘 맞추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며 "윤 회장이 그룹 전체를 보고 글로벌 사업에 집중하는동안 허 내정자는 올해 연말까진 실적에 초점을 두고 은행 경영에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은행 내 ‘영업통’으로 알려진 허 내정자는 윤 회장 체제에서 은행 전략을 총괄했던 인물이다. 최근에는 리딩뱅크 경쟁자인 신한은행이 오랜 기간 독점했던 경찰공무원 전용 대출 사업권을 따내며 영업력을 증명해 보이기도 했다.

허 내정자는 경남 진주 출신이며 대구고와 서울대 법대와 대학원(석사)을 졸업했다. 1988년 장기신용은행에 입사해 2001년 국민은행과 주택은행 통합 과정에서는 전산통합추진 태스크포스(TF) 기업금융부문 팀장으로 활동했다. 또 대기업부 부장, 여신심사본부 집행본부장, 경영기획그룹대표(CFO) 등을 지내는 등 국민은행의 영업과 경영 일선을 두루 경험했다.

국민은행은 12일 사외이사 4명으로 구성된 은행장 후보추천위원회를 열어 허 내정자에 대한 심층면접 및 검증을 실시한다. 오는 16일 열리는 은행 주주총회에서 허 내정자를 차기 행장으로 최종 확정할 예정이다.

김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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