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 이성봉] 눈이 마주친다. 말을 섞었다. 느낌이 좋다. 찰나의 감정이 일상을 비집고 들어온 순간부터 그의 작은 몸짓이 신경쓰인다. 얼굴을 보니 떨린다. 더 많은 시간 함께 하고 싶다. 누군가는 이게 사랑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그 정도는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의견이 달라지는 이유는 사람마다 사랑을 다르게 정의하기 때문이다. 단 한순간도 사랑을 멈춘 적 없는 인류는 무엇이 사랑인지 아직도 결론 내리지 못했다.

 

사진 = 영화 '시인의 사랑'

"세 사람 사이에 얽힌 감정은 사랑일까"

택기(양익준)는 뚱뚱하고 얼굴도 별로다. 등단 시인이지만 경제적 능력은 커녕 정자가 부족해 번식능력(?)도 허접하다. 그럼에도 아내 강순(전혜진)은 택기를 위해 돈을 벌어오고 밥상을 차린다. 화를 내면 무섭지만 평소엔 생글생글 웃는다. 어느날 강순은 맛있는 도너츠 가게가 생겼다며 게임에 빠진 남편 입에 도너츠를 우겨넣는다. 그 맛에 반한 택기는 곧장 도너츠 가게로 향한다. 그곳에서 도너츠를 먹으며 알바생 세윤(정가람)을 보던 택기는 갑자기 감정이 요동치고 시상(詩想)이 떠오른다.

 

사진 = 영화 '시인의 사랑'

"시인은 슬픈 사람들 대신 울어주는 사람이야"

시인이 되는 방법을 묻는 초등학생에게 택기는 이렇게 말한다. 이 말을 들은 초등학생은 택기에게 또 묻는다. “그러면 시인은 언제 울어요?” 이 질문에는 ‘인간은 누구나 슬프다’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택기는 몇 년 전에 받은 상금 1,000만원 이후 소득이 변변찮다. 아내 강순은 가정을 홀로 이끌어 간다. 능력도 없고 사랑도 주지 않는 택기를 보면 울화통이 터질법하지만 내색하지 않는다. 아니, 사실 강순은 택기가 그 어떤 것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 강순은 택기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 슬프지 않다. 그런데 그런 강순에게 택기는 대신 울어주기는 커녕 슬픔을 안긴다.

"나가지마. 그냥 지내자. 여기에만 있어"

울부짖는 강순을 뿌리치고 택기는 세윤에게 간다. 다른 사람 생각으로 가득찬 남편에게 강순은 뭘해도 좋으니 함께 지내자고 한다. 자존심 세우며 소리치지 않고 가지말라고 붙잡는 강순에게 사랑이 느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평생 뒷바라지해 온 아내를 두고 떠나는 택기에게도 사랑이 보인다.

 

사진 = 영화 '시인의 사랑'

"너 걔랑 자고 싶지?"

택기의 심경 변화는 관객보다 아내가 먼저 알아챈다. 어쩌면 당연하다. 제 3자인 관객은 미묘한 감정을 알아챈 강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택기는 세윤과 함께 있을 때 심장이 두근거리고 시인으로서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 감정이 순간일지라도 놓치고 싶지 않다. 나의 밑바닥까지 사랑해주는 아내가 있지만, 내 사랑은 여깄다. 세윤은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엄마(방은희)와 호흡기를 겨우 숨을 쉬는 아버지와 함께 산다. 그런 세윤을 위해 택기는 무엇이든 도움되는 일을 해주고 싶다. 친구들과 놀며 방황하는 세윤에게 같이 살자고 한다. 영혼까지 팔 준비가 된 사람처럼 보이는 택기를 보며 관객들은 알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힌다.

첫 번째, 택기는 갑자기 동성애자가 된 것일까. 두 번째, 택기는 강순을 사랑한 적이 있을까. 세 번째, 아내에게 무심했던 택기는 세윤에게는 왜 헌신적인가.

관객들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런 의문은 다시 말하면 ‘사랑이 뭘까’라는 질문으로 치환할 수 있다. 사랑이 뭐길래 택기의 행동은 이전과 달라졌을까. 영화는 헌신, 안정, 설렘, 혼란 모두 사랑의 여러 갈래라고 말한다. 택기가 세윤을 대하는 헌신뿐만 아니라 강순의 옆자리를 변함없이 오랜 시간 지켜온 안정감 또한 사랑이라고.

 

사진 = 영화 '시인의 사랑'

택기와 세윤의 사랑은 프랑스 상징주의의 대표적 시인 폴 베를렌과 아르튀르 랭보를 떠오르게 한다. 위대한 시인 베를렌은 천재적인 랭보의 시에 매료되어 처자식을 버리고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다. 랭보는 16살이었다. 당시 금기시 된 둘의 관계가 그저 사랑이었는지,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함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랭보가 베를렌에게 한 말로 두 사람이 함께한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추측할 수 있다.

"당신은 시를 어떻게 쓰는지 알지만, 나는 시를 왜 쓰는지 안다"

베를렌과 랭보의 관계를 영화 ‘시인의 사랑’에 대입해보면, 택기와 세윤처럼 둘 또한 이유와 상황이 어쨌건 남들과 다른 갈래의 사랑이다. 영화를 연출한 김양희 감독은 말했다. “시인 택기는 육체적 관계뿐만 아니라 세윤의 불우한 가정, 감수성에 연민을 느끼게 된다. 사랑 안에 있을 때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를 때도 많다”라고. 결국 영화는 사랑을 한 갈래로 설명할 수 없음을 택기, 강순, 세윤 세 사람 관계를 통해 드러낸다. 이런 이유로 사랑은 ‘이런 것’이라고 결론 내린 사람에게 이 영화는 어렵다. 사랑은 사랑에 빠진 사람들만이 새롭게 정의할 수 있다. 타인의 사랑과 같을 수 없고, 한사람의 사랑일지라도 상대에 따라 새로운 사랑으로 정의해야한다. 시인 랭보는 시 ‘헛소리1’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랑은 다시 발명되어야 한다"

사진 = 영화 '시인의 사랑'

이성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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