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악~ ” “우리 개는 안 물어요, 얼마나 순한데~” 어제 동네 산책로를 걷다가 목격한 광경이다.

목줄을 하지 않은, 정확히 얘기 하자면 개 목에 있어야 할 목줄은 견주에 손에 감겨 있었고, 덩치가 큰 개는 낯선 사람에게 으르렁 거리며 달려드는 상황이었다. 누군가는 그런 개에게 두려움을 느껴 비명에 가까운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 있는데 견주는 자신의 개를 제지하기는커녕 여유롭기만 했다. 마치 자신도 잠시 개에게 해방되어 자유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듯이. 요즘 뉴스도 안보냐는 소리에 심드렁한 얼굴로 마지못해 개에게 목줄을 걸어주는 견주의 모습이 어이없었다.

최시원이 키우던 프렌치불독(벅시)이 한일관 대표 김모씨를 물어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 느슨하기 짝이 없던 애견문화에 일침을 가하는 뉴스들이 연일 봇물 터지듯 보도되고 있다. 아직 사망에 대한 정확한 인과관계가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지만 최시원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곱지 않다. 자신이 키우고 있는 개가 이웃을 물었는데도 그는 버젓이 개의 생일파티를 해주고 이를 기념하기라도 하듯 SNS에 사진을 올리는 무개념 행태를 보였다. 주변 사람들이 맹견이라고 피할 만큼 사람을 자주 물었던 전과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벅시에게 목줄이나 입마개는 해주지 않았다. 개에게 부여한 자유가 사람들에게는 공포가 된다는 사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벅시에게 상해를 당한 이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다.

몇 년 전부터 미디어를 통해 연예인들이 반려견을 키우는 모습이 자주 등장하면서 애견인이 급격히 증가했다. 개를 키우는 사람이 천만 명을 넘어섰다고 하니 가히 ‘애견공화국’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 같다. 그러나 애견인구 증가에 비례해 ‘애견문화’에 관심을 갖는 견주가 얼마나 될지는 의문스럽다. 애견인들은 최근에 자주 벌어지는 ‘개물림 사고’가 몇몇 몰지각한 사람들 때문에 발생하는 것일 뿐인데 전체 애견인들이 매도당한다고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어제 내가 본 산책로의 모습은 사실 늘 접하는 광경이기에 그리 새로울 것도 없었다. 골목에서, 마트에서, 식당에서조차 가족의 일원으로 개들은 이따금씩 동반된다. 개가 짖어대는 소리에 따가운 눈초리를 보내면 이내 뭐가 잘못이냐는 듯 뻔뻔한 견주들을 볼 때가 많다. 내가 사랑하는 우리 개를 당신은 왜 싫어하느냐는 모습이다. 마치 서로 다른 취향을 동의할 수 없다는 듯이. 개에 대한 애정이 이기심을 만들어내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발생한 ‘도그포비아’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동물에 대한 사랑 그 자체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비상식적인 가치기준이 문제인 것이다. 견주의 부주의로 발생하는 ‘개물림 사고’의 대부분은 인간가치에 대한 몰상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간이 개보다 하위개념일 수 있는가. 애견문화의 시작은 가치정립에 있다. 내가 키우는 개가 사람보다 우위에 설 수 없다는 건 어린아이들도 아는 상식이다. 최시원이 비난을 면치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도그포비아’로 비롯된 ‘애견문화’의 정립을 위한 노력들이 공염불이 아니길 간절히 바란다.

●권상희는 동덕여대 방송연예과와 국민대 대학원 영화방송학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2002년부터 영화 드라마 연극 뮤지컬 방송진행 등 다양한 미디어를 경험했고, 고구려대학 공연예술복지학부 외래교수를 역임한 뒤 문화평론가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사진=최시원 인스타그램 캡처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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