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 이성봉]  짧은 생애를 뒤로하고 세상을 떠난 전설적 예술가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두 편이 개봉했다. '아이 앰 히스 레저' 그리고 '김광석'이다. 한 영화는 한 인간의 내면을 다루고 있고, 한 영화는 한 인간을 둘러싼 외면을 다룬다.

사진 = 영화 '아이 앰 히스 레저'

“히스 레저 알아? 걔있잖아. 영화 ‘다크 나이트’ 조커”

배우 히스 레저(본명 히스클리프 앤드류 레저, Heathcliff Andrew Ledger)가 국내 팬들에게 이름을 알린 영화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시리즈 중 두 번째 '다크 나이트'(2008)다. 이안 감독의 '브로크백 마운틴'(2006)으로 호평받았지만 대중적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다크 나이트' 속 조커 캐릭터는 히스 레저(이하 히스)라는 배우를 전 세계에 알렸다.

히스는 영화 개봉 전 2008년 1월 사망했다. 이후 2009년 제 8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조커 역으로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히스의 사망은 그가 조커 캐릭터에 심취한 나머지 자살했다는 루머와 함께 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키웠다. '다크 나이트'는 개봉 후 10억 달러를 벌어들이며 전 세계 역사상 흥행 기록 3위에 올랐다(이후 아바타, 어벤저스 등에 밀려 10위권 밖으로 벗어났다).

 

사진 = 영화 '아이 앰 히스 레저'

“나에 대한 영화? 지루할 거 같은데”

히스 레저는 자신을 다룬 영화를 만들겠다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그리고 약 10년이 지나고 그의 영화가 개봉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아이 앰 히스 레저'.

영화는 친구와 가족들이 말하는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말한다. 인터뷰가 이어질수록 감동적인 부분은 ‘한결같음’이다. 히스에 대한 평가가 모두 일관성이 있다. “밝고 독특하지만 예술가였다”라는 말이 지루할 정도로 이어진다. 영화는 히스를 둘러싼 사회와 영화계 분위기를 다루지 않는다. 오롯이 인간 히스에 집중한다. 가장 가까운 아버지, 어머니, 형제들, 어린 시절 친구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조커라는 역할에 심취해 자살했다”라는 루머는 “그럴 애가 아니었다”라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증언으로 쉽게 일축된다. 영화 촬영 당시에도“‘컷’ 소리가 나면 역할에서 빠져나와 키득거리며 제작진들과 즐겁게 작업했다”는 이야기는 이를 뒷받침한다.

 

사진 = 영화 '김광석'

두 달 전 또 하나의 실제 인물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김광석'이 개봉했다. 영화를 연출한 이상호 감독(고발뉴스 기자)은 가수 김광석은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라 주장하고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추적한다. 그리고 부인 서해순 씨와 관련된 의문점과 증거들을 제시한다.

이 영화는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며 김광석의 죽음을 둘러싼 루머들을 대중들이 다시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이후 서해순 씨가 저작권 소송 과정에서 딸 서연 양의 2007년 사망을 수년간 친가에 알리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며 경찰이 재수사에 착수했다. 다만 김광석 사망은 타살로 밝혀지더라도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할 수 없다.

(*공소시효 : 어떤 범죄사건이 일정한 기간의 경과로 형벌권이 소멸하는 제도. 2008년 형사소송법 개정 전 살인죄 공소시효는 15년이었다. 이후 2015년 살인죄 공소시효는 폐지됐다. 공소시효가 만료된 사건에는 소급 적용하지 않는다.)

 

사진 = 영화 '아이 앰 히스 레저'

“인간 히스와 가수 김광석”

'아이 앰 히스 레저'와 '김광석'은 영화 속 등장하는 인물들이 부르는 이름부터 다르다. 히스 레저의 가족과 친구들의 인터뷰가 주를 이루는 '아이 앰 히스 레저'는 그를 ‘히스’라고 부른다. '김광석' 속 인물들은 '김광석'이라고 부른다. 가족들은 ‘광석이’라고 부르지만, ‘가수 김광석’의 죽음을 둘러싼 언론, 경찰, 법의학자, 프로파일러 등의 발언으로 구성된 이야기라 그렇다.

두 인물을 다루는 두 영화의 차이는 ‘바닷속’과 ‘바다 위’로 구분할 수 있다. '아이 앰 히스 레저'는 성격, 행동, 말투, 예술성, 사랑, 친구 등 히스 내면의 바닷속으로 관객들을 안내한다. 그 안은 깊고도 넓어서 러닝타임 1시간 반을 가득 채운다.

영화 '기사 윌리엄'(A Knight’sTale, 2001)을 통해 주연배우로 발돋움한 히스는 이후 영화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토니 파커 역을 거부했다. 자신이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철저하게 혐오했다.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활약하며 자신의 예술성을 불태웠다. 그림을 그리고 틈이 나는대로 사진과 영상을 찍었다. 그의 절친이자 자신의 뮤직비디오 연출을 그에게 맡겼던 가수 벤 하퍼는 “연기자뿐만 아니라 감독까지 할 수 있는 재능이 있었다. 그는 아티스트였다”라고 회상했다. 히스가 '다크 나이트'를 선택한 이유는 크리스토퍼 놀란에게 영화에 대해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고 아이를 낳고 헤어지면서 변화를 겪는 히스까지. 관객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히스의 바다를 헤엄치다가 나온다.

이와 달리 '김광석'은 바다 위 배를 타고 이상호 감독의 안내를 따라 떠난다. 바닷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지만 그의 알려주는 길로 따라가다 보면 미쳐 보지 못했던 바다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김광석 사망 당시 수많은 의문을 만들어낸 “장난하다 죽었다”는 서해순 씨의 인터뷰와 그녀의 행적들, 범죄 전문가들의 분석, 친족들의 증언 등은 이상호 감독이 포착한 항해로다. 그야말로 길이다. 그래서 이 영화에 정답은 없다. ‘물음표’로 시작해 ‘물음표’로 끝난다. 영화는 현실 사회가 그 물음표에 답을 하기를 바라고 있다. 감독은 혼자서 들어갈 수 없는 깊은 바닷속에 들어가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사진 = 영화 '아이 앰 히스 레저'

“바닷 속 히스와 바다 위 김광석을 보고”

최근 '노무현입니다', '공범자들', '저수지 게임' 등 다큐멘터리 영화들이 놀라운 성취를 일구고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는 수익성이 높지 않아 2만 명이상 관객이 들면 흥행했다고 본다. '김광석'은 누적 관객 9만 6천 명을 넘어서며 돌풍을 만들어냈다. '아이 앰 히스 레저'는 그 정도 흥행은 어렵다고 본다. 국내 영화 팬들에게 다큐멘터리 영화는 이제 막 다가온 낯선 장르다.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위험을 감수하고 티켓을 구매하는 사람보다는 현실과 맞닿은 수면 위에서 살펴보는 정도가 대부분. '김광석'은 가수 김광석의 죽음을 다루며 현실과 영화의 접점에 서있다. '아이 앰 히스 레저'는 히스 팬들에겐 선물 같은 영화다. 하지만 조커는 알아도 히스는 모르는 대중들에게 구명조끼도 없이 깊은 바닷속에 빠져보라고 말하긴 어렵다. 배급사에겐 안타까운 말이겠지만, 그래도 배급하겠다고 마음먹은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사진 = 영화 '아이 앰 히스 레저', '김광석'

이성봉 기자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