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이미 저성장, 고령화 시대를 겪은 일본을 따라가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일본에서 투자전략을 찾아야해요. 특히 유통, 소비 등 내수 관련 부문은 일본과 비슷하게 바뀔 수밖에 없어요.”

지난달 일본출장을 다녀온 대신증권 유정현 연구원의 말이다.

최근 증권업계에선 ‘일본 배우기’ 열풍이 불고 있다.

저성장, 저금리, 고령화 시대를 한국에 앞서 겪은 일본으로부터 수익을 낼 수 있는 투자전략을 찾기 위해서다.

각 증권사의 애널리스트들은 이런 기조가 갑자기 일어난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경제상황과 인구구조가 일본과 유사해지면서 수출주도형 산업구조로는 크게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워진 한국에서 꾸준히 있어온 흐름이라는 분석이다.

대신증권,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등 증권사들은 앞다투어 일본의 유통업체와 IT업계, 건설 부문을 꼼꼼히 돌아본 보고서를 내놨다. 증권가에서는 “한국의 증권사들이 일본을 찾아다니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며 “앞으로도 심화될 전망”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들은 고령화의 심화와 저성장이 맞물려 소비, 유통 등 내수 관련 부문이 일본과 비슷하게 바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1인 가구의 증가, 스고모리(둥지) 소비 등 일본 특유의 소비 패턴이 현실화되면서 소비 패턴을 바꾸고 있다. 독신자의 증가와 만혼 현상으로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있으며 외출을 삼가고 집에서 소비활동을 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트렌드에 맞춰 일본 탐방을 마친 애널리스트들이 공통적으로 꼽은 일본형 성장업종은 편의점이었다.

대신증권 유정현 연구원은 “편의점이나 드럭스토어처럼 생활점포 위주의 전망이 밝아보였다”며 “한국과 일본의 가장 큰 차이는 PB(자체상품)”라고 설명했다.

유 연구원의 설명에 따르면 이미 국내 업체들은 일본의 편의점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편의점 점포의 개수는 일본보다 더 많고 양적으로 포화됐지만 한국의 매출액은 일본의 25%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PB에서 기인한다. 일본은 고부가가치 PB 매출 비중이 30%가 넘는데 우리나라는 고작 10% 남짓이다.

이를 잘 활용하면 점포를 더 못열더라도 편의점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 증권업계 관계자들은 국내 증시에서 주목받을 일본형 성장업종으로 편의점업을 꼽았다. GS25를 운영하는 GS리테일 주가는 지난해 말 2만5,650원에서 12일 현재 5만5,300원으로 약 2배 가량 뛰었다. (사진제공=GS리테일)

 

한국투자증권의 정희석 수석연구원 역시 국내 증시에서 주목받을 일본형 성장업종으로 유통업 중에서도 편의점업을 꼽았다.

“각 채널별 역량을 확인한 이번 탐방에서 가장 긍정적인 부분이 편의점 업계였다”며 “실제로 국내에서도 편의점 주가는 상승세”라고 덧붙였다.

편의점 씨유(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은 지난해 말 7만6,500원이던 주가가 12일 현재 18만원으로 약 2.5배 가량 뛰었다.

GS25를 운영하는 GS리테일 주가도 지난해 말 2만5,650원에서 5만5,300원으로 약 2배 가량 뛰었다.

NH투자증권의 김병연 책임연구원은 “합리적인 소비, 가치소비로 양극화된 일본의 소비패턴이 한국에도 나타나고 있다”며 “tvN ‘집밥 백선생’이 유행하는 모습은 알뜰 소비를, 취미와 여행 등에 돈을 아끼지 않는 모습은 가치소비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어 “간편식 등의 인기로 편의점 주가가 올라가고 백화점, 대형마트의 매출은 떨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증권업계에서는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방송, 영상콘텐츠를 제공하는 업종도 유망한 것으로 보고 있다.

혼자 즐길 수 있는 여가활동이 증가하면서 주문형비디오(VOD) 등 콘텐츠 사업에 강점을 지닌 CJ E&M의 주가는 올해 들어 119% 올랐다. 1인 방송을 내보내는 인터넷방송 아프리카TV도 지난해부터 견조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자신을 위한 소비로 높은 삶의 만족도를 추구하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여행사, 고가 자전거 생산업체 등 고급 취미 관련주들이 상승세를 타고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일본형 성장주가 계속해서 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이 갖춰야 할 투자전략으로는 ‘새로움’과 ‘차이’가 꼽혔다.

유 연구원은 “소비가 전체적으로 크게 늘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상품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새로운 것에 사람들은 돈을 쓰기 때문에 상품구색이 과거와 달라야 성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또, “간편 가정식 시장이 커진다고 너도나도 뛰어들어 과열경쟁이 촉발됐다”며 “시장은 천천히 크기 때문에 부작용을 생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 연구원은 “한국과 일본이 유사성이 많지만 차이에 주목해야 한다”며 “일본의 사례를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려다가 두 나라의 차이를 간과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과 일본은 내수규모, 국민성, 사회전반의 분위기 등의 차이가 있다”며 “과거의 일본과 현재의 한국이 직면한 대내외적 환경이 다르고 정부와 기업들의 대응이 달라 항상 같은 패턴이 이어질 것이란 보장이 없다”고 덧붙였다.

김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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