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학창시절 친구와의 만남, 반가움은 꽤 긴 시간 동안 이어진 수다로도 모자라 결국 집에 돌아오자마자 과거를 소환하기에 이르렀다. 책상서랍 한 켠에 보관된 편지와 스티커 사진들 그리고 진열장에 꽂혀있는 사진첩들, 언제 봤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오래된 것들이 그래도 그 자리에 있어줘서 너무나 다행스럽다. 낡은 편지에는 별것 아닌 일에도 함께 웃고 울며 공감해준 친구의 따스함이, 작은 스티커 사진에는 마치 폭탄 맞은 것 같은 가발을 쓰고 세상 가장 행복한 웃음을 보였던 우리들의 유쾌함이, 먼지를 털어낸 사진첩에는 그 시절 추억이 촌스럽지만 정겹게 남아있었다. 잠시 노스탤지어에 빠져 드는 동안 쉼을 얻는다.

10~20대 청년층에서 불고 있는 ‘아날로그 감성’ 트렌드는 실로 가슴 벅찬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디지털 시대가 밀어내버린 아날로그 감성이 디지털 세대에 의해서 다시 살아나게 됐으니 말이다. 이 묵은 정서가 청년층에게는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신선함으로 다가 왔을 터. 골동품으로 취급되던 필름 카메라의 귀환이 반갑다. 피사체를 결정하는 것에서부터 애정을 담아 중요한 순간을 집중해서 기록하게 되는 필름 작업. 인화된 사진 한 장에는 그것을 받을 때까지의 ‘설렘’과 ‘기다림’이라는 정서가 오롯이 담겨있다. 그것이 바로 아날로그만의 ‘느림의 미학’이다.

청년들은 이 불편한 과정을 통해 그동안 디지털 문화로 익숙해진 ‘삭제’와 ‘수정’ 대신 ‘있는 그대로’와 ‘정성’이라는 새로운 키워드를 만난다. 이를 이미 경험한 4050 세대에게는 봉인해 두었던 추억거리를 해제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LP음반, 롤러장, 즉석사진 등 청년층에게는 새것, 중년층에게는 옛 것이 2017년 아날로그란 같은 이름으로 조우했다. 마치 누군가에게 탄생을, 또 누군가에게 환생을 의미하듯.

“우리 때는 말이야~” 언제부터인가 꼰대문화의 전형적인 화법으로 낙인 찍힌 이 말이 적어도 아날로그를 화두로 꺼낼 때만큼은 세대 차이를 이유로 눈치 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하루가 다르게 만들어지는 신조어, 서로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 마치 이방인인 것처럼 소통이 가능 할 것 같지 않던 세대 간 간극은 실로 오랜만에 같은 문화를 공유함으로서 좁혀질 수 있는 가능성을 열게 되었다. 아버지와 대학생인 아들이 필름카메라를 가지고 함께 출사를 다녀왔다는 한 블로거의 글에서 따뜻함이 전해진다. 즉석사진 부스에서 친구들끼리 수다 떨며 줄 서 기다리는 학생들의 모습은 꼭 어릴 적 나와 내 친구를 보는 듯 반갑다. 과거와 현재가 오버랩 되는 순간이다.

그동안 우리는 ‘빠르게’에 강박적으로 순응하는 것을 자연스러운 거라며 자위했던 건 아닐까? 인공적이고 차가운 것, 변형 가능한 디지털문화에 멀미가 날 즈음 만난 아날로그 감성은 기다림이 불가능한 시대가 만든 반작용의 결과다. 팍팍한 세상살이에서 찾아낸 인간미이고, 좋았던 추억과의 재회를 통해 얻는 위안이다.

디지털 실드를 이야기하며 아날로그 정서를 걱정했던 게 불과 몇 달 전인데 그건 기우였다. 여전히 우리는 사람냄새를 그리워한다. 그것이 바로 아날로그 감성의 본질이다. 세월이 한참 흘러 이제는 빛 바랜 사진 한 장, 거기에는 결코 수정할 수 없는 사람냄새로 가득하다.

●권상희는 동덕여대 방송연예과와 국민대 대학원 영화방송학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2002년부터 영화 드라마 연극 뮤지컬 방송진행 등 다양한 미디어를 경험했고, 고구려대학 공연예술복지학부 외래교수를 역임한 뒤 문화평론가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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