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양지원] ‘약하거나 야하거나.’

국내 영화들에서 여성 캐릭터들이 소비되는 모습은 딱 두 가지다. 또 주연이 아닌 여성 캐릭터들은 대부분 주인공 남자 캐릭터들을 묘사하기 위한 설정으로 쓰인다. 이 과정에서 감독은 여성 캐릭터를 보호해야 하는 약한 대상 혹은 남성 캐릭터들의 성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역할로 활용한다.

김혜수를 내세우며 여성 누아르로 홍보한 ‘미옥’(9일 개봉)은 초반부터 과도한 여성 노출 장면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극중 재계 유력 기업이 된 범죄조직이 정재계 인사들을 별장으로 초대해, 예쁘고 몸매 좋은 젊은 여성들에게 성 접대를 받게 하는 장면이다. 물론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영화에서 베드신은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 문제는 영화를 연출한 이안규 감독이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어떻게든 선정적으로 보이려 작심한 듯한 과한 카메라 앵글이 보는 이의 불쾌함을 자아낸다. 카메라는 전라 노출한 여성들을 노골적으로 훑는다. ‘굳이 저렇게까지 묘사했어야 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성 접대를 받는 남성 중 한 명은 이유 없이 폭행을 휘두르기도 한다. 내 자식 같은 영화를 스스로 B급 영화로 만들어버렸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미옥'에서 웨이 역을 맡은 오하늬.

영화에서 상훈(이선균)을 짝사랑하는 웨이(오하늬)의 캐릭터 역시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다짜고짜 상훈의 몸에 올라 “나 하룻밤에 얼마짜린지 알지?”라며 성적으로 매력을 어필한다. 자신에게 아무 반응도 없는 상훈이 현정(김혜수)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혼란스러워하지만 어떤 서사와 감정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 채 허무한 끝을 맞는다. 현정을 제외하고 유일한 여성인 웨이는 관객의 시선을 끌 만한 힘이 없다. 성 접대신을 통해 과한 노출을 감행하며 상품적으로 소모됐을 뿐이다.

지난 8월 개봉한 ‘브이아이피’가 ‘미옥’처럼 여성 캐릭터들을 쓰고 버리는 상품으로 취급했다 흥행에서 ‘폭망’했다. ‘브이아이피’는 여성 캐릭터들을 사이코패스 김광일(이종석)의 잔혹함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로 활용했다. 프롤로그에서 미성년으로 보이는 한 여성은 나체로 김광일 일당에게 고문을 당한 뒤 희생된다. 이후에도 김광일의 잔혹한 취미생활에 희생되는 여성들은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눈물만 흘린다. 즉 남성의 완력에 무기력한 여성, 보호해줘야 하는 약한 여성들일 뿐이었다. 개봉 후 이런 장면들을 두고 영화의 ‘여혐 논란’이 식지 않자 이종석이 인터뷰마다 “김광일은 원래 여성들만 살해하는 인물이 아니다”고 줄기차게 해명했다. 그러나 스크린 속 김광일의 범죄 대상은 여성에게만 국한된 것으로 비춰졌다.

더욱이 ‘브이아이피’의 ‘여혐 논란’에 불을 지핀 것은 엔딩 크레디트다. 김광일에게 살해 당한 이들을 모두 ‘여자시체 역’으로 자막에 올랐다. 아무리 단역 배우라지만 ‘시체’라는 노골적인 표현과 함께 ‘여성’으로 구분했다. 관객들의 지적이 이어지자 ‘브이아이피’ 측은 급하게 ‘여자’ 역으로 수정했으나 논란은 식지 않았다. ‘브이아이피’의 감독이든 제작사든 여성을 바라보는 저급한 시선을 확인할 수 있었다.

56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한 ‘청년경찰’도 ‘여혐 논란’을 피해가지 못했다. 경찰대생 기준(박서준)과 희열(강하늘)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여성 대상의 흉악 범죄를 소재로 해 질타 받았다. 실제 사회 현상에 기인했다지만 여성 관객에게는 영화조차 공포로 다가왔다. 게다가 기준과 희열이 늦은 밤 호감 가는 여성의 연락처를 얻기 위해 뒤를 몰래 쫓는 장면 역시 공포감을 조성하기에 충분했다. 실제로 많은 여성들이 늦은 밤 자신의 뒤를 쫓는 남성을 목격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또 납치를 당한 여성들이 난자를 적출되는 과정에서도 적나라한 카메라 앵글을 사용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이 영화들의 공통점은 여성을 다루는 시각이 획일화됐다는 점이다. 성 상품화, 혹은 보호해야 하는 대상으로 활용될 뿐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여성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 개선이 필요하다. 김혜수는 ‘미옥’ 인터뷰에서 “남성이든 여성이든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에 개념이 없는 사람이 많다”고 일침했다.

사진=해당 영화 포스터 및 스틸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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