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김서연]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상담비서 ‘챗봇(Chatbot)’이 국내 주요 은행을 주축으로 빠르게 늘면서 ‘미투(Me Too)’ 전략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관련 시장 선점이 중요하다보니 상품이든 서비스든 어느 하나가 확산되기 시작하면 너도나도 급하게 진출함에 따른 것이다.

미투 전략은 한 상품이나 서비스가 시장에서 인기를 끌면 곧바로 경쟁사에서 이를 모방해 소비자를 유인하는 마케팅 기법이다. 주로 유통업계에서 많이 쓰이던 전략이나, 최근 몇 년 동안 디지털 금융이 화두가 된 금융권에서도 이른바 ‘베끼기 전쟁’이 촉발됐다. 지난 4월과 7월, 인터넷전문은행 K뱅크(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의 출범으로 치열하게 전개됐던 따라하기 경쟁이 챗봇을 시작으로 다시금 시작됐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KEB하나은행의 ‘핀고’는 특정 분야의 소비(예: 스타벅스) 금액도 쉽게 알 수 있다. 사진=KEB하나은행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신한·우리·KEB하나·농협·기업은행 등 국내 주요 은행들은 챗봇을 모두 도입했거나 도입할 예정이다. 지난 9월 은행권 최초로 고객과 실시간 상담이 가능한 ‘위비봇’을 내놓은 우리은행을 시작으로 KEB하나은행이 ‘핀고’를 이어 선보였고, 국민은행과 신한은행도 앞다퉈 챗봇 구축에 나섰다. 기업은행은 다음 달 금융상담 챗봇을 내놓을 계획이다. 농협은행은 지난해 11월 카카오톡 채팅을 통해 금융업무를 돕는 ‘금융봇’을 출시했다. 국내 6개 은행 모두가 챗봇 시장에 뛰어든 셈이다.

챗봇의 경우 고객을 대하는 민원창구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으며 등장했으나 답변율이 떨어지고 응답 수준도 높지 않다는 지적이 벌써 나오고 있다. 챗봇의 수준이 올라가고는 있지만 진정한 ‘민원창구’가 되기는 요원하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농협은행의 ‘금융봇’은 질문 가능한 카테고리가 ▲상품안내 ▲자주 묻는 질문 ▲이벤트 안내 ▲이용시간 안내 ▲올원뱅크 바로가기 등으로 정해져 있고, 그 안에서만 문의할 수 있어 다소 한정적이다.

비단 챗봇뿐이 아니다. 지난 2015년 하나금융그룹이 최초로 내놓은 모바일 멤버십 서비스 ‘하나멤버스’가 나오면서 신한금융의 ‘신한 판(FAN)’, 우리은행의 ‘위비멤버스’, KB금융그룹 통합 멤버십 플랫폼 ‘리브메이트’가 줄을 이었다. 은행권 자동차 대출 시장을 2010년 처음 개척한 신한은행의 뒤를 이어 나머지 은행들도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가장 큰 대출시장인 주택담보대출 시장 규모가 줄어들어 관련 시장으로 눈을 돌린 은행들이 어느 정도 성공을 보장받은 이 시장에 우르르 발을 들인 것이다.

자칫 ‘타행 따라하기’가 될까봐 ‘최초’ 타이틀을 먼저 붙이기 위한 눈치작전도 한층 치열해졌다. 지난 8월 이슈가 된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Individual Savings Account) 수수료 인하가 대표적인 사례다. 일임형 ISA 수수료 면제에 관해 아이디어 차원에서 지난 5월 처음 얘기가 나왔고 6월부터 준비를 했던 국민은행이 관련 이슈를 선점할 것이라고 애초 은행권은 봐왔다. 하지만 국민은행이 수수료 면제에 앞서 금융위원회의 유권해석을 받고 추가질의를 한 사이 신한은행이 ‘금융권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손실 난 일임형 ISA 계좌의 수수료를 면제한다는 것을 발표했다. 이 두 은행의 뒤를 이어 또 다시 타행들도 ISA 수수료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번 챗봇의 경우에도 ‘최초’라는 타이틀을 먼저 달기 위한 해프닝이 있었다. 농협은행과 우리은행이 각각 지난해 11월과 올해 9월 챗봇을 내놓으면서 ‘은행권 최초’라는 수식어를 붙여서다.

농협은행의 ‘금융봇’은 질문 가능한 카테고리가 ▲상품안내 ▲자주 묻는 질문 ▲이벤트 안내 ▲이용시간 안내 ▲올원뱅크 바로가기 등으로 정해져 있다(왼쪽). 상품안내를 눌렀더니 예/적금, 대출, 펀드 등 원하는 메뉴를 묻는 채팅창이 떴다. 사진=카카오톡 캡처

농협은행은 챗봇이 인공지능이 일상언어로 대답하는 ‘대화형 메신저’에 의의를 둔 듯 했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은행마다 기준이 다를 수 있다”며 “당행은 카카오톡 채팅을 통해 금융업무 상담을 하는가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우리은행의 경우에는 챗봇인 위비봇과 채팅을 시작할 때 즉답이 먼저 제시된다. 즉답 방식을 사용하면서도 고객이 선택해야 할 사항이 있으면 선택지를 줘서 두 방식으로 복합적으로 쓰고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농협은행은 보기 중에 고객이 선택하고 거기에서 파생된 질문들이 이어지는 방식으로 서비스가 되고 있다”면서 “당행은 이러한 시나리오 방식에 더해 즉답이 사용된다”고 말했다.

미투 전략이 계속 쓰이면서 은행의 이름만 달랐지, 비슷한 상품과 서비스 출시가 지나치다는 말이 나온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디지털 금융이 화두가 되면서 이른바 ‘따라하기’가 더 심해진 것 같다”며 “‘최초’라는 타이틀을 어느 은행이 먼저 다는지, 그 범위가 은행권인지 금융권인지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인터넷전문은행이 은행 간 경쟁을 더 심화시킨 것은 맞다”며 “첫 타자가 어느 정도 성공을 입증해보이면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시장에 안착할 수 있으니 타 업권뿐만 아니라 은행에서도 많이 쓰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같은 미투 전략은 결국 금융사나 금융소비자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부랴부랴 내놓다 보니 서비스나 상품을 출시한 뒤에 부작용이 발견되는 경우가 있다”며 “상품·서비스가 비슷비슷해지면 금융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할 수 있는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일단 뛰어들고 보자’는 전략에 다 같이 한 시장을 키워나가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타행과 같은 영역에서 차별화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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