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영화 '러빙 빈센트'

[한국스포츠경제 이성봉]  "나는 나의 그림을 꿈꿨다. 그러자 나의 꿈을 그리게 되었다"
(I dream my painting and then I paint my dream)

미술관에 가면 앉을 곳을 찾는다. 좋아하는 그림을 한참 동안 보기 위해서다. 좋은 그림은 오래 보고 있으면 머릿속에서 그림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움직이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그림은 오래도록 뇌리에 남는다. 내 마음에 담고 싶은 그림들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면 더불어 그림을 그린 화가도 사랑받으며 유명해진다. 빈센트 반 고흐가 그렇다.(이하 빈센트, 동생 테오 반 고흐과 구분하기 위해)

영화 ‘러빙 빈센트’를 만든 도로타 코비엘라 감독과 휴 웰치맨 감독은 미술관에 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었는지 머릿속에서 움직이던 그림을 눈 앞에 내놓았다. 영화는 빈센트 특유의 화풍으로, 세계 최초로 유화로만 제작된 애니메이션이다. 이 형식에 대해 각본과 연출을 공동으로 맡은 두 감독은 “그의 이야기를 가장 잘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진 = 영화 '러빙 빈센트'

"그의 이야기를 잘 전달하는 방법"

107명의 화가가 62,450개의 캔버스 유화를 그렸다. 화가는 전 세계에서 모인 4천여 명 중 오디션을 통해 뽑았다. 이들은 화가였지만 영화를 위해 애니메이터 교육을 받았다. 열정 넘치는 이들은 두 감독의 지휘 하에 빈센트의 기법을 재현했다. ‘러빙 빈센트’는 애니메이션이지만 영화와 애니메이션의 제작방식이 혼용되었다. 실제 배우들이 먼저 연기를 하고 이를 다시 유화로 그린다. 그림을 그리는 기간만 2년, 기획부터 제작까지 총 10년이 걸렸다. 이 프로젝트에 대해 코비엘라 감독은 “혼자 그린다고 생각하니 85년쯤 걸리겠더라”라고 말했다.
(여담으로, 영화를 제작하는 10년 사이에 두 감독은 2010년 결혼했다)

극장에 들어선 순간부터 관객들은 러닝타임 95분 동안 빈센트 전용 미술관에 갔다 온다. 빈센트의 그림들이 가로세로 67×49㎝에 이르는 캔버스와 동일한 비율의 화면 속에 물결치듯 일렁인다. 가만히 앉아서 ‘별이 빛나는 밤’을 시작으로 ‘자화상’, ‘피아노 앉은 가셰의 딸’, ‘까마귀가 있는 밀밭’을 지나 ‘아를의 노란 집’, ‘즈아브 병사의 반신상’까지 130여 점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영화 보기 전 미리 빈센트의 작품을 보고 간다면 영화 장면과 실제 작품이 일치될 때마다 감탄하며 즐길 수 있다.

 

사진 = 영화 '러빙 빈센트'

"그는 왜 죽었을까"

영화의 형식뿐 아니라 이야기도 흥미롭다. 영화에서는 '아르망 룰랭'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빈센트 작품 ‘우편배달부 조제프 룰랭의 초상’(1889) 속 모델인 조제프 룰랭의 아들이다. 빈센트는 매일 동생 테오와 편지를 주고받았다. 빈센트가 자살하고 1년 후, 마지막 편지를 전달하지 못한 우체부는 아들 아르망에게 편지를 테오 가족에게 전하도록 부탁한다. 아르망은 빈센트가 죽기 전에 지냈던 동네를 찾아간다. 빈센트 주변 인물들을 만나며 아르망은 그가 자살하지 않았을 거란 의문을 갖는다. 빈센트의 주치의 폴, 빈센트와 친구 이상의 관계였던 폴의 딸 마르그리트, 빈센트가 머물렀던 여관 주인의 딸 아를린 등 많은 사람들이 그에 대해 말한다. 하지만 이야기가 모두 다르다.

실제 빈센트 반 고흐는 왜 죽었을까. 그는 자살했다고 알려졌지만 반대의견은 늘 있었다. 빈센트 죽음에 대한 의혹은 영화의 중심이 되는 이야기다. 이 의혹은 2011년 스티븐 나이페와 그레고리 화이트 스미스가 공동 저술한 ‘화가 반 고흐 이전의 판 호흐’를 통해 널리 퍼졌다. 이 책에서는 메모광이었던 화가가 유서를 남기지 않은 점, 그림 상인 동생 테오의 기획 아래 전시회를 앞두고 있던 점, 평소 고흐가 자살에 부정적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점 등을 근거로 타살이라 주장한다.

 

사진 = 영화 '러빙 빈센트'

"여전히 살아 숨쉬는 불멸의 화가"

미스터리한 이야기도 매력적이만 극장을 나설 때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빈센트의 그림이다. 살아 숨쉬는 그림을 보고 나면 움직이지 않는 그림을 다시 찾는다. 영화에 등장했던 작품을 보면 감동은 배가 된다. 그림 속에 들어갔다 온 감정이랄까. 이 마음을 그대로 안고 네덜란드에 있는 ‘반 고흐 미술관’을 꼭 가보리라.

빈센트는 자신의 귀를 잘라 선물한 일화로 ‘광기의 화가’라고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27세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37세로 삶을 마감할 때까지 유화로만 900점, 소묘와 목탁화 등 다른 작품을 합치면 약 2000점의 작품을 남기며 불꽃같은 정열을 쏟아 부운 ‘태양의 화가’다. 비록 생전에 단 한 작품만 팔았던 ‘비운의 화가’지만 인류가 영원히 기억할 ‘불멸의 화가’다. 여전히 숨쉬는 작품을 남긴 그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그가 남긴 말을 적는다.

 

"당신의 마음에서 '너는 그림을 그릴 수 없어'라는 소리가 들린다면 
반드시 그림을 계속 그려라. 그러면 그 소리는 잠잠해질 것이다"
(If you hear a voice within you say 'you cannot paint' 
then by all means paint and that voice will be silenced.)

사진 = 영화 '러빙 빈센트'

이성봉 기자

관련기사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