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양지원] 영화 ‘해피 엔드’(1998년) ‘은교’(2012년)를 통해 인간의 심리를 섬세하고 정교하게 연출한 정지우 감독이 ‘침묵’으로 관객을 찾았다. 정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도 특유의 장기를 발휘했다. 임태산(최민식)이라는 돈, 권력, 사랑까지 모든 것을 다 쥔 남자가 하루아침 만에 모든 것을 잃은 뒤 겪게 되는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125분이라는 러닝 타임 안에 녹였다. 겉면은 법정스릴러지만 한 남자의 뜨거운 사랑과 부성애로 가득 찬 영화다.

- ‘침묵’의 연출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

“제작사 용필름 임승용 대표에게 원작 ‘침묵의 목격자’를 소개 받았다. 내가 대학교 2학년 때 실습으로 만든 영화와 아이디어가 비슷해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 뒤 최민식이 출연을 결정했다.”

-최민식의 연기는 한층 더 깊어진 것 같다. 법정에서 막말을 내뱉는 장면은 소름이 돋았다.

“그 장면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증인선서를 하면서 온갖 오만불손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나. 사실 디렉션을 하는 것도 난처한 장면이었다. 촬영을 하면서 ‘임태산스럽다’는 관용어를 자주 썼는데 딱 거기에 맞게 연기해주셨다.”

-거듭되는 반전이다. 관객들이 피로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렵게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내가 주워 들은 바로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 드라마가 방송 편성의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고 한다. 웬만한 반전은 관객들도 눈 하나 깜짝 안 할 것 같다.”

-류준열이 유나(이하늬)의 스토커 동명 역으로 나왔다. 관객들이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는 캐릭터인데.

“그래서 류준열에게 너무 고마웠다. 동명이 불쾌한 캐릭터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결국 동명의 협력으로 임태산의 큰 그림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류준열의 순수한 면이 덕후 역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 역할을 류준열에게 제안했는데 운 좋게 성사가 됐다. 류준열과 같이 작업하고 싶어 하는 감독들이 굉장히 많더라.”

-전작 ‘해피엔드’ ‘은교’와 마찬가지로 ‘침묵’에서도 나이 차가 상당한 남녀가 멜로 라인을 이룬다.

“내가 좋아하는 인생영화 중에는 나이 많은 여자와 어린 소년의 멜로드라마도 있다. 사실 성별과 나이에 상관없이 어떤 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차원에서 보면 나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부성애라는 코드 때문에 유나를 죽인 진범에게 면죄부를 준다는 느낌도 있다.

“만약 임태산의 비서 정승길(조한철)이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을 져야 됐다면 그렇게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임태산이 온 몸을 던진 얘기에 가깝다. 우리가 ‘부모는 자식을 구하기 위해 목숨이라도 건다’는 말을 하지 않나. 임태산은 자수성가한 재벌이고 자기애가 엄청나다. 그런 인물이 자신을 버리는 행동을 한다는 것은 굉장히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혼자 남은 유라 역시 죽느니 못한 삶을 살 것이다.”

-미라(이수경)는 임태산의 약혼녀 유나를 왜 그렇게 싫어했을까.

“처음부터 미라가 유나를 싫어한 건 아니다. 유나가 미라에게 ‘언니라고 불러도 돼’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그러다 임태산이 장소에 들어오자 아무 생각 없이 미라의 잡은 손을 놓는데 그게 미라 입장에서는 굉장히 서운했을 거다. ‘나랑은 아무런 관계도 아니라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절대로 중요한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으로 느끼는 시작이었을 거다. 유나도 천사 캐릭터는 아니지 않나. 이렇게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사람들인 거다.”

-유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아쉬운 결말일 듯하다.

“사실 돌이킬 수 없는 일이지 않나. ‘전설의 고향’처럼 한을 품고 돌아와서 진범을 잡을 수는 없으니까. 임태산의 환영에서 유나가 ‘괜찮아’라고 말한다. 임태산이 그 정도의 위로는 충분히 받을 수 있다고 본다. 임태산도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질 만큼 졌으니까.”

-정승길은 왜 미라에게 쌀쌀맞게 굴었을까.

“임태산의 최측근이었던 사람으로서 미라에게 화가 많이 났기 때문이다. 정말 가까운 보스가 모든 것을 잃지 않았나. 본인이 덮어쓰고 감옥에 가겠다는 계획도 진행 중이었는데 결국 일이 그르쳤다는 생각에 화를 참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이 영화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관객 분들이 영화의 내용은 충분히 즐겨주셨으면 좋겠다. 눈에 보이는 사진 한 장, 어느 사람의 말 한 마디가 그 사람의 실체일수도 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하니까. 하지만 이제는 어떤 것에 대해 알고 있다고 말하는 걸 늦추고 곰곰이 생각할 시대가 된 것 같다. 모든 것을 꿰뚫고 있다고 확신하기 전에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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